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민주당의 ‘통큰’ 행보 시작되나

4·27 재보선에서 경남 김해에 후보 안 내고 분당을에 손학규 출마하는 방안 검토…

2012년 민심 향한 전략적 고민 깊어져
등록 2011-02-09 15:45 수정 2020-05-03 04:26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하지만 너무 잦은 선거로 국력이 소모되고 있다. 한 해도 선거가 없는 해가 없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재·보궐 선거 등이 이어지고 그럴 때마다 정치적으로 갈라진 우리 사회의 골은 깊어만 가고 있다. 국정을 운영하는 데도 어려움을 주고 있다.”(2009년 8·15 경축사)
“올 하반기부터 2011년까지는 선거가 없는 해이다. 그렇기 때문에 1년 반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해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계획을 하고 기본을 튼튼히 할 수 있는 해다.”(2010년 5월9일 국가재정전략회의)
2월1일 새해 방송 좌담회 ‘대통령과의 대화-2011년 대한민국은’에서도 확인됐듯이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혐오증, 특히 선거 혐오증은 유별나다. 지난 1월3일 신년 특별연설에서도 정치 분야는 단 한 차례만 언급했다. 이 대통령이 “선거가 없는 올해는 일해야 하는 해인데 정치 문제로 논란거리를 만들 필요가 없다”며 참모진이 마련한 원고에서 정치 관련 대목을 대부분 뺐다고 한다. 그 자신이 정치의 꼭짓점에 있고 실제로는 선거 때문에 하지 못한 일도 없는데 유난히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시민들이 싫어하는 ‘여의도식 정치’와 자신은 무관한 듯 보이려는 의도로 읽힌다.

국회의원 3곳, 광역단체장 1곳 등 판 커져

4·27 재보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전략적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설 연휴 하루 전인 2월1일 오전 손학규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와 박지원 원내대표(네 번째)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서울역사에서 귀성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한겨레 탁기형

4·27 재보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전략적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설 연휴 하루 전인 2월1일 오전 손학규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와 박지원 원내대표(네 번째)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서울역사에서 귀성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한겨레 탁기형

그런데 2011년이 선거가 없는 해이기를 바랐던 그의 기대는 깨졌다. 1월27일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정치인들에 대한 대법원 선고로 오는 4월27일로 예정된 재·보궐 선거의 판이 커졌기 때문이다. 4·27 재보선은 △국회의원 3곳(경기 성남 분당을, 경남 김해을, 전남 순천) △광역단체장 1곳(강원도) △기초단체장 2곳(울산 중구·동구) △광역의원 3곳(울산, 충북, 전북) △기초의원 5곳 등 14곳에서 치러진다. 규모는 작지만, 수도권과 영호남, 강원·충청권 등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치르는 선거여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향한 민심의 흐름을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보선이 치러지는 주요 지역은 청와대 대통령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의원직을 사퇴한 임태희 실장의 지역구(분당을)를 제외하면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최철국 전 의원(김해을), 서갑원 전 의원(순천) 등 모두 민주당 소속이 당선됐던 곳이다. 그래서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처럼 한나라당 지지세가 강한 분당을 포함해 2곳 이상에서 한나라당이 선전할 경우 한나라당의 승리일 것 같지만, 사정이 그리 간단치 않다. 집권세력의 핵심들은, 김진선 전 지사가 내리 3선을 한 강원도와 김해 역시 ‘한나라당 땅’으로 여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와 2008년 총선에서 내주지 않아야 할 지역을 선거를 잘못 치러서 내주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재보선에서 최소한 2곳 가운데 1곳을 되가져오지 못하면 패배로 자평할 분위기다. 특히 강원도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1일 열린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식에 직접 참석하는가 하면, 연말 개각 인사 때 김진선 전 지사를 지역행정특보에 임명해 4·27 재보선을 염두에 두고 간접 지원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럼에도 강원도와 김해에서 민주당 혹은 야권 연대 후보에게 패한다면 적잖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순천을 제외한 지역에서 1곳만 져도 안상수 대표 사퇴론이 터져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렇잖아도 ‘안 대표 체제로는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재보선 패배는 조기 전당대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연말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낙마 사태로 불거졌던 당·청 관계에도 파장이 미치게 된다. 재선이 최대 과제인 의원들은 총선이 다가올수록 원심력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띤 재보선 성적표가 신통치 않으면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

야권 연대의 중요한 시발점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제1야당인 민주당을 포함해 민주노동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등 야권은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야권 연대로 선전했으나 이어진 7·28 재보선에서 패배해 승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이후 진보개혁 세력의 재구성을 위한 논의는 분분했으나 구체적인 성과는 없었다. 2012년 권력 재편기를 앞둔 마지막 전국 단위 선거에서 밑돌을 놓지 못하다면 야권의 집권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진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4월 재보선은 지난해 말 여당의 예산·법안 날치기에 대한 심판은 물론, 내년 정권 교체를 위한 야권 연대의 시발점이란 점에서 야권에 아주 중요한 선거”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관심은 광역단체장과 국회의원을 뽑는 4곳으로 집중되겠지만, 그 파장과 영향력을 고려하면 여야가 사활을 걸고 맞붙을 수밖에 없다.

4곳 중에서 어느 정도 후보군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관심이 집중되는 지역은 경남 김해을과 강원도다. 김해을은 한나라당 강세 지역이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야성’을 드러낸 적이 있어 야권이 연합할 경우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곳으로 꼽힌다. 지난해 7월 서울 은평을 재보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단일화할 당시 민주당은 ‘이번에 단일 후보를 내지 못한 정당이 향후 재·보궐 선거에서 단일 후보를 낼 수 있도록 우선 배려한다’는 야권의 합의문에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였지만, 최근 변화의 기운이 감지된다.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노 전 대통령의 비서 출신인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이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한다면 승산이 높다고 본다”며 “김 국장이 민주당 후보로 나서주면 좋겠지만 특정 정당에 적을 두지 않고 다른 야당의 후보들과 후보 단일화를 위해 경쟁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국민참여당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농업특보를 지낸 이봉수 경남도당 위원장이 나섰고, 민주노동당에서는 김근태 경남도당 부위원장이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이 밖에 이상업 전 국정원 2차장, 곽진업 전 국세청 차장 등이 거론된다.

한나라당에선 김혜진 전 대한체육회 감사, 길태근 전 대통령비서실 정무행정관, 김성규 김해시 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 수석부회장, 황석근 한국폴리텍7대학 동부산캠퍼스 학장이 예비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차출론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강원도지사 선거의 경우 한나라당에서는 후보 경쟁이 시작됐지만 민주당은 아직 잠잠한 상태다. 엄기영 전 문화방송 사장이 이재오 특임장관 쪽의 지원을 받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선거에서 이광재 전 지사에게 패배한 친박근혜계 이계진 전 의원도 출마를 검토 중이다. 민주당에선 조일현 전 의원이 출마 뜻을 밝힌 가운데, 문화방송 사장을 지낸 최문순 의원(비례대표)도 후보군에 이름이 오르내린다. 민주노동당은 배연길·엄재철 전·현직 도당위원장이 출마를 준비 중이나 야권 연대에 더 적극적이다.

분당을에서 거물급 맞붙을 가능성

의외로 분당을이 가장 뜨거운 선거구로 떠오를 수도 있다. 현재는 강재섭 전 대표, 박계동 전 국회 사무총장 등 ‘왕년의 거물’급 후보들의 경쟁이 치열한데,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 가운데 한 명인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직접 출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전남 순천은 민주당 성향 예비후보들의 움직임이 활발한데, 민주노동당이 야권 연대의 틀로 민주당의 양보를 압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