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완벽합니까?”
“또 봐야죠. 그래도 이제 안 고치려 합니다.”
12월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 직후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과 기자들 사이에 오간 문답의 한 토막이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는 국가위기관리센터를 국가위기관리실로 확대·강화한 위기관리 체계 개선안을 의결했다.
더 이상은 안 고친다?
새로 만들어진 국가위기관리실의 기능과 역할에 관한 질의와 응답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이제 완벽한가”라는 기자의 질문에는 가시가 숨겨져 있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를 포함해 안보 컨트롤타워 ‘개선’은 이번이 네 번째. 안보 관련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손대왔는데 앞으로는 개선하지 않을 만한 체계를 갖췄느냐는 질문이었고, 이에 김 비서관의 대답은 “안 고치려 한다”였다.
문제는 네 번의 손질로 이전 정부에 비해 안보와 위기관리 능력이 더 나아졌느냐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인 2008년 2월 노무현 정부 당시 위기관리 사령탑 구실을 했던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사무차장 수석비서관급)를 폐쇄하고 위기정보상황팀으로 축소시켰다. 팀장은 2급 선임행정관, 실무진은 15명 안팎이었다.
그해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위기정보상황팀을 위기상황센터로 격상시킨다. 센터장은 외교안보수석이 겸임했고 상황팀장도 비서관급으로 올렸다. 올 3월 천안함 침몰 사건이 터지자 대통령 안보특보를 신설하면서 국가위기관리센터를 만들었다. 11월 연평도 포격 이후에 이를 국가위기관리실로 다시 격상시킨 것이다.
신설된 국가위기관리실은 수석비서관급 실장을 포함해 모두 30명 규모로, 국가위기관리비서관실·정보분석비서관실·상황팀 등 3개 조직으로 이뤄진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의 위기정보상황팀에 비하면, 실장을 수석비서관급으로 격상하고 산하에 정보분석비서관 등을 신설했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부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와 유사하다. 네 번의 손질 끝에 돌고 돌아 원래 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물론 청와대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김 비서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를 없앴다가 결국 돌아간 것 아니냐’는 지적에 “국가안전보장회의 시행령 어디에도 사무처를 둬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이명박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밑에 사무처를 두는 것이 헌법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에 관한 시행령이 없는 것은 맞다. 그런데 국가안전보장회의라는 기구의 성격과 사무처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의 논리가 지나치게 형식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시민통제 실현한 NSC 사무처
국가안전보장회의는 국가 안전보장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대통령 직속의 자문기관으로 외교안보 분야 최고위급 회의체다. 헌법에 국가안보에 관한 대외·군사정책과 국내 정책의 수립에 관해 국무회의의 심의에 앞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도록 돼 있다. 의장은 대통령이 맡는다.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대통령이 의장이며 ‘국가안보’에 관한 여러 정책을 장관들이 참석하는 국무회의 심의에 ‘앞서’ 논의하는 ‘최고위급’ 회의체인 만큼 매우 중요한 기구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김대중 정부 이전에는 거의 문서상의 조직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사무처를 만든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는 기구 성격에 맞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임동원 당시 외교안보수석이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을 겸했다. 육사를 졸업하고 소장으로 예편한 군 출신임에도 이후 그는 외교와 남북관계 전문가가 됐고 김 전 대통령과 만나 ‘햇볕정책의 전도사’가 됐다. 그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통일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김대중 정부 외교안보통일 분야의 명실상부한 사령탑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임동원’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었다. 북한을 연구한 학자 출신의 이 전 장관도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사무처장에서 이름 변경)을 맡아 외교안보통일 정책을 관장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에 더해 사무처 산하에 위기관리센터를 만들었다. 안보의 개념을 종래의 국가적 안보뿐 아니라 인위적 재난이나 자연 재난 같은 포괄적 재난으로까지 확장해 부처 간 벽을 넘어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김대중 정부 이전에는 없던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가 생기고 점차 기능이 강화되면서 옥상옥 논란을 부르기도 했지만, 사무처가 제 기능을 했기 때문에 군에 대한 시민통제(civil control)라는 국가안전보장회의의 본원적 기능을 유지하면서 1·2차 서해교전 같은 우발적 충돌 상황에서도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 흔적 지우기’ 차원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를 폐쇄했다가 3년이 지나 그 기능을 상당 부분 회복해놓고도 사무처 복원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위기관리실이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와 구별되는 대목은 평시에는 외교안보정책을 외교안보수석실이 맡고 위기가 발생했을 때 상황 관리와 단기 조처는 국가위기관리실이 전담한다는 것인데, 통제 기능의 이원화가 오히려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통령의 냉전적 사고가 근본적 불안”
사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국가위기관리실 신설에 대해 엉뚱한 진단과 처방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위기관리 조직을 격상하고 컨트롤타워를 강화하는 것은 시행착오 끝에 제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지만, 현재의 위기관리 능력 저하가 기구나 제도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통일학부)는 “대통령의 의지와 제도 그리고 정책이라는 삼박자를 갖춰야 함에도 현재는 이명박 대통령의 시대착오적인 냉전시대의 사고로 인해 남북관계의 위기가 항구화·일상화된 것이 핵심 문제”라고 말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도 “북한 붕괴론에 기대 아무 대책 없이 기다리기만 하다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데, 위기 상황시 단기 처방을 전담한다는 국가위기관리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평가했다.
남경필·정두언 의원 등 한나라당 중진들 사이에서도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가운데, 우리 군은 연평도 포격 훈련에 이어 12월23일엔 전면전을 가정한 육군과 공군의 대규모 합동훈련을 벌였다. 그리고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동부전선 최전방을 방문해 “기습공격을 받으면 가차 없이 대반격을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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