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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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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용해 족쇄 풀려는 자위대

연평도 도발·센카쿠 분쟁을 구실로 방위력 증강 노리는 일본…

한반도 긴장이 일본 우익의 숙원 풀어주는 선물이 될까
등록 2010-12-22 16:46 수정 2020-05-03 04:26

“1항.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구히 이를 방기(폐기)한다. 2항.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전쟁과 무장 포기를 명시해 흔히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일본헌법 9조다. 1945년, 더글러스 맥아더를 사령관으로 하는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2차 대전 패전국 일본을 상대로 헌법 개정을 강요했다. 일본 자체 개정안을 거부한 연합군은 1946년 2월13일 이른바 ‘맥아더 초안’을 제시하고, 이에 기초해 일본 안이 작성돼 평화헌법이 만들어졌다. 일본이 자국 군대를 ‘국군’이 아니라 ‘자위대’로 이름 붙인 까닭이다.

수동적 방위에서 능동적 방위로

여기서 ‘보통국가론’이 제기된다. 일본도 다른 나라처럼 정식 군대를 갖고 외교·군사 활동을 펴자는 주장이다. 1990년 대표적 보수 정객인 오자와 이치로는 ‘비정상적’ 평화헌법 체제를 깨고 패전의 굴레를 벗어나 군사적으로 정상국가로 나아가자고 주장했다. 태평양전쟁의 악몽을 겪은 주변국으로서는 경계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일본 자위대 재편 계획 등이 주목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방위정책의 기본 문서인 ‘신방위계획대강’(방위대강)의 개요가 공식 발표를 앞두고 최근 알려졌다. 그동안 일본은 소련의 공격을 상정해 최소한의 방위 기반을 갖춰 본토를 골고루 방위한다는 ‘기반적 방위력’ 개념에 따라, 무력공격을 받았을 경우에만 군사력을 행사하는 수동적 방위 전략인 전수(專守)방위 전략을 채택해왔다. 그러나 이번 방위대강의 핵심은 ‘기반적 방위력’ 개념에서 벗어난 ‘동적 방위력’ 개념의 도입이다. 안보 상황에 맞게 중국과 북한 등의 위협이 있는 곳에 전력을 집중하고 기동력 있게 대처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육상자위대를 줄이고 해상·항공자위대를 강화해, 해상자위대 잠수함을 16척에서 22척으로 늘리고 항공자위대의 차기 주력전투기(FX) 도입도 앞당길 계획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패트리엇(PAC3) 미사일도 기존 3곳에서 6곳으로 확대 배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내용은 때마침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발언과 맞물려 우려를 키웠다. 간 총리는 12월10일 일본인 납치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피해자 등을) 구출하기 위해 직접 자위대가 나서서 상대국(한국)의 내부를 통과해 행동할 수 있는 룰은 정해져 있지 않다”며 “만일의 경우 (납치자) 구출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몇 가지 논의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간 총리의 발언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바로 헌법 9조를 두고 한 지적이다. 은 간 총리의 발언에 대해 “해외에서의 무력 행사를 금지한 헌법 9조나 자위대법은 전투 지역에서의 자국민 구출을 상정하고 있지 않다”며 “(간 총리의 발언은) 한반도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한국을 경유해 북한에 자위대를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뜻으로, 헌법 해석을 크게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헌법 9조는 일본의 현 방위대강에도 반영돼 있다. ‘2004 방위대강’에서 일본은 국방의 기본 방침으로 △전수방위 △타국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군사대국이 되지 않는 것 △비핵 3원칙(핵무기를 보유·제조·반입하지 않는다) 등을 명시했다.

테러와의 전쟁 통해 활동 영역 넓혀와
자위대 국제평화협력활동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자위대 국제평화협력활동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려 속에도 자위대는 그동안 꾸준히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일본에 자위대의 시초를 제공한 것은 헌법 9조를 강요한 미국이다. 1949년 소련의 원폭실험 성공, 같은 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등은 미국이 극동 전진기지로서 일본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만들었다. 1950년 7월 맥아더 사령관은 미군 출국에 따른 일본 내 경찰력 부족을 채운다는 이유로 경찰예비대 7만5천 명 창설, 해상보안청 8천 명 증강을 지시했다. 같은 해 8월 경찰예비대가 설치돼 자위대의 시초가 됐다. 이후 경찰예비대와 해상보안청은 1952년 보안대(11만 명)와 해상경비대(7500명)로 각각 개편됐고, 1954년 7월1일 자위대법에 따라 현재의 자위대로 통합돼 명칭을 변경했다.

냉전 기간 일본의 안보정책은 미국에 군비를 의존하며 안보우산을 제공받아 군사력 확장은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자위대는 1992년 캄보디아 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안을 만들어, 2차 대전 이후 금지된 자위대 해외 파병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또 2001년 대테러 전쟁 및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대응한 ‘테러대책 특별조치법’ ‘이라크 부흥지원 특별조치법’ 등을 통해 자위대 활동 영역을 확대했다. 일본이 1990~91년 걸프전 당시 130억달러의 막대한 지원을 하고도 국제사회에서 ‘군인이 아닌 수표책’(Checkbook Diplomacy)으로 전쟁을 수행한다는 비난을 받은 것도 전략 수정의 계기가 됐다. 2008년 11월 현재 일본 자위대는 아이티 등 약 20개국에 약 3만 명이 파견돼 국제평화 협력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일본은 국제사회 테러대응과 대미지원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군사적 보통국가화의 일환이라는 경계어린 시선은 여전하다.

일본의 자위대 강화에는 중국과 북한의 위협이 중요한 구실이 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올해 방위대강 개정을 위해 2009년 1월7일 ‘안정 보장과 방위력에 관한 간담회’를 총리 자문기관으로 설치한 뒤 같은 해 8월4일 ‘가쓰마타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 내용을 보면 △중국의 군사력 증강 및 불투명성: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의 역할 수행 촉진 △북한의 예측 불가능성 및 모험주의의 위험성: 미사일방어(MD)에 의한 거부적 억지, 적기지 공격에 의한 보복적 억지, 선제공격 검토 등을 밝히고 있다. ‘일본 방위백서 2010’에도 중국에 대한 우려가 잘 드러난다. 백서는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있는 중국” “중국의 높은 국방비 신장과 한층 진행된 군사력 현대화” “건국 60주년 군사 퍼레이드에서는 선진적인 장비품이 등장해 중국군의 기계화 및 정보화의 진전을 국내외에 과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2004 방위대강은 일본 주변 정세와 관련해,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특수부대 등’으로 북한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올해 방위대강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과 중국의 동중국해 진출을 막기 위해 자위대를 집중 배치하는 재편 계획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말 자위대는 적이 아닐까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지난 12월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 AFP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지난 12월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 AFP

지난 9월 중-일 사이에서 벌어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은 일본에 중국의 위협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켰다. 일본은 센카쿠열도 인근 해상에서 중국 어선이 일본 순시선을 잇따라 충돌한 사건이 발생한 뒤 해당 중국 선장을 체포했지만, 중국의 강경한 태도에 결국 석방하며 ‘백기투항’했다. 한 국책연구소 소속 안보전문가는 “일본의 방위력 증가는 기정사실이고, 보통국가를 주장해온 연장선에서 보면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센카쿠 분쟁과 천안함 사건 및 연평도 도발이 일본의 방위력 증강에 좋은 구실이 된 측면이 있다”며 “일본의 해군력 증강은 우리도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고 독도를 둘러싼 영토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이 북한의 연평도 도발 등 불안한 한반도 주변 정세를 틈타 군사력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한편, 지나친 경계를 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의 방위대강은 2004년 12월에 발표된 것으로, 2009년 말까지 재검토하도록 예정돼 있었다. 일본 자위대는 곧 공식 발표될 방위대강에서 해군력을 증강하는 대신 육상자위대 전차 보유 목표 대수를 약 600대에서 400대로, 화포도 600문에서 400문으로 줄일 계획으로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일본의 방위 예산은 최근 7년 연속 감소 추세에 있다.

권태환 국방대 교수는 “이번 방위대강 개정은 안보환경 변화에 따라 수정 필요성이 있었고,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싸고 미국과 갈등을 빚으면서 미국이 없는 안보에 대한 대비를 일본이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 데 따른 것”이라며 “미-일 동맹 강화나 북한 위협 대처 등은 한국과 입장을 같이하는 부분이 상당히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권 교수도 “일본이 평화헌법에 대한 변화를 원한다면 테러 및 해적 대응 등 비전통적 부분에서 먼저 한국민 등의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조처를 병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이 올해 천안함 사건 이후 열린 한-미 연합 해상훈련과 연평도 포격 뒤 미-일 해상공동연습 등 상대국 군사훈련에 옵서버로 처음 참가한 것은 신뢰구축 조처로 평가된다.

평화헌법 폐지를 향한 우파의 집념

와카미야 요시부미 칼럼니스트는 12월16일치 에 ‘자위대는 적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이승만 시대도 아니고 자위대를 적대시하려는 생각만큼은 이제 거두어줬으면 좋겠다.” 전후 반세기가 지났으니 얼핏 설득력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불안정한 민주당 정권에서 자민당 정권으로 다시 넘어간다면, 언제든지 헌법 9조를 수정·폐지할 가능성은 도사리고 있다. 일본 우파는 그동안 수차례 헌법 9조 폐지를 요구해왔고, 2007년 5월 자민당 정권은 헌법 개정을 위한 준비 단계로 국민투표법을 통과시켰다. 공포 뒤 3년이 지나 국민투표법이 본격 시행된 지난 5월에는 자민당에서 헌법 개정안 제출 움직임이 있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센카쿠 요시토 관방장관이 간 총리의 발언을 12월13일 해명하면서 “(자위대 파견은) 상대가 있는 일이고, (한-일 양국 간의) 역사적 경위도 있다. 그렇게 간단한 얘기가 아니다”라고 한 대목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하종문 한신대 교수(국제학부)는 “일본이 여러 가지 역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과거사에 대해 스스로 면죄부를 만드는 상황에서 자위대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주변국이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며 “북한 문제가 자위대 강화나 장기적으로 헌법 9조 개정의 구실이 되고 있는 만큼, 일본이 북한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위대는 적이 아니다’라지만, 경계를 늦출 수 없는 것은 과거사에 대해 그나마 통 큰 사죄 한번 제대로 한 적 없는 일본이 짊어져야 할 죗값이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참고 문헌
‘일본의 신방위정책 전망과 한국의 안보-방위대강 개정을 중심으로’ 김두승·송화섭, 한일군사문화연구, 2010
‘천황과 헌법과 자위대’ 최상용, 아세아연구, 1991
‘일본 방위백서 2010’ 일본 방위성,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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