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 많은 눈이 내린 지난 12월8일 오후, 함박눈이 내리는 경기 이천시 영일울릉목장 앞은 공사 차량으로 분주했다. 공사명은 이천시 호법면 안평∼송갈 간 도로(시도 11호선) 확포장사업. 안평리와 송갈리를 가로지르는 비좁은 시골길에 길이 5.5km짜리 왕복 2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닦는 공사였다.
“사람도 차도 잘 안 다니는 길인데 거기에 돈을 쏟아가며 아스팔트 도로를 까는 이유야 뻔하죠. 그거 때문에 취재하시는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이명박 도로’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
길 끝은 ‘영일울릉목장’으로 바로 연결
호법면의 한 주민은 안평∼송갈 간 도로 공사에 대해 묻자 대뜸 ‘이명박 도로’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 주민은 “안평이나 송갈리에 사는 사람들이야 새로운 포장도로가 생기면 당연히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가장 혜택을 입을 사람은 뭐니뭐니 해도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안평∼송갈 간 도로를 찾은 이날, 해당 도로를 지나는 일반 차량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공사 탓으로만 보기는 어려웠다.
‘평범한’ 지방도로 공사 하나에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이 거론되는 까닭은 뭘까? 무엇보다 안평∼송갈 간 도로의 끝 지점이 앞서 언급한 영일울릉목장 입구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사진 참조). 영일울릉목장이 들어선 호법면 송갈리 586번지 일대의 땅은 이 대통령의 조카이자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아들인 이지형씨 소유다. 현재 목장은 이 대통령의 친척뻘인 이아무개씨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일울릉목장 앞 도로포장사업은 이 대통령 본인의 이해관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목장 안쪽에는 이 대통령의 선영이 있다. 이 대통령은 2008년 2월 취임 이후에도 성묘 등을 위해 매년 두세 차례씩 꼬박꼬박 영일울릉목장을 찾았다. 그동안 일부 구간은 대형 차량 한 대가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좁은 길이었는데, 성묘를 다녀야 했던 이 대통령에게 목장 입구까지 왕복 2차선 아스팔트 길이 뚫린다는 소식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성묘를 편하게 다닐 수 있어서 좋고, 목장 일대의 땅을 소유한 대통령 일가는 도로 확장 및 포장 이후 땅값 상승을 기대할 수 있어서 좋다.
문제는 대통령 패밀리를 제외할 경우 경기도와 이천시가 해당 도로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이유를 납득할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천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해당 지역 주민들로부터 도로를 확장해달라는 요구가 제기됐던 것은 맞다”면서도 “주민 요구를 떠나 차량 통행량이나 경제성을 따진다면 시급한 사업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함께 “최근 사업 승인이 떨어진 남서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남이천IC는 절대로 안 뚫릴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중부고속도로 남이천IC 사업은 중부고속도로 서이천IC에서 남쪽으로 10.4km, 일죽IC에서 북쪽으로 12.2km 지점인 이천시 모가면 어농리에 새롭게 고속도로 나들목을 설치하는 내용으로, 지난 10월26일 국토해양부와 한국도로공사로부터 사업승인이 떨어졌다. 사업을 신청한 이천시는 남이천IC가 중부고속도로의 교통체증 분산과 물류비용 절감,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입장이다.
남이천IC가 생기면 이 대통령은 영일울릉목장에 있는 선영을 찾기 위해 한참 떨어진 서이천IC를 이용할 필요가 없어진다. 남이천IC 예정지인 어농리는 영일울릉목장에서 중부고속도로 쪽으로 바로 옆에 붙어 있다. 게다가 공사 중인 안평∼송갈 간 도로가 남이천IC로 이어질 예정이다. 안평∼송갈 간 도로가 뚫리고 여기에 남이천IC까지 생길 경우, 이 대통령의 성묫길은 그야말로 탄탄대로가 된다.
이처럼 이천에서 진행되는 주요 도로공사와 고속도로 나들목 설치 사업이 모두 이명박 대통령 일가의 이해관계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다 보니, 지역에서는 사업 추진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이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비이락? 엠비이락?
“그게 참, 오비이락입니다. 마침 도로가 목장 앞을 지나니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러는 건데, 이천시를 취재해보면 아시겠지만 목장과는 전혀 관계없이 진행됐던 사업입니다.” 지난 12월8일 오후 과 만난 영일울릉목장 관리인 이씨의 친동생은 ‘오비이락’이라고 표현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으로 우연히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일 뿐, 이 대통령의 의지나 특혜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경기도와 이천시 역시 이 대통령과 전혀 무관한 사업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노영우 이천시 도로시설팀장은 “안평∼송갈 간 도로 확포장사업은 호법면 안평리에 들어선 광역자원회수시설(쓰레기소각장)에 대한 주민지원사업의 하나로 오래전부터 진행이 확정돼 있었다”며 “(도로가) 영일울릉목장 앞을 지나니까 (이 대통령이) 편리해지는 것은 맞지만, 원래 예정돼 있던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는 맞는 말이다. 경기도와 이천시는 2004년 주민기피시설인 광역자원회수시설을 호법면에 설치하는 대가로 이천 주민을 위해 모두 1300억원을 들여 도로 개설 등 주민지원사업을 진행하기로 약속했다. 안평∼송갈(5.5km), 유산∼매곡(7.5km), 동산∼매곡(4km), 동산∼주미(3km) 등 4개 도로 건설이 핵심이었다. 예산은 경기도와 이천시가 절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4개 도로 건설 사업 가운데 현재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사업은 안평∼송갈 도로가 유일하다. 총사업비 100억원 규모의 안평∼송갈 도로 확포장사업은 2008년 7월 착공했다. 12월 현재 공사는 70% 정도 진행됐으며, 2011년 7월30일이면 완공될 예정이다. 반면 안평∼송갈 도로보다 늦게 시작한 유산∼매곡 간 도로는 공사 진척도가 40%에도 못 미쳐 답답한 진행 상황을 보이고 있다. 호법면 관계자는 “공사 구간이 까다로운데다 일부 구간의 토지 보상이 아직 끝나지 않아 상대적으로 늦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해당 지역의 주민 처지에서는 이 역시 불만이다.
남이천IC, 수십 차례 거부하다 돌연 승인
그나마 유산∼매곡 구간은 삽이라도 뜨기 시작했으니 나은 편이다. 동산∼매곡, 동산∼주미 도로는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박영운 호법면 이장단협의회장은 “동산∼매곡, 동산∼주미 도로는 애초 약속한 대로 2차선 도로가 안 되면 폭 6m 도로라도 해달라는 것이 우리 요구인데, 시에서는 예산 부족과 담당자 인사 이동 등을 핑계로 미루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영일울릉목장으로 가는 길’의 경우 이 대통령 취임 직후 착수해 벌써 마무리 단계인 것과 대조를 보이는 대목이다.
국토해양부와 한국도로공사가 지난 10월 갑작스럽게 남이천IC 설치를 허가해준 과정도 석연치 않다. 이천시는 남이천IC 설치가 한나라당 소속 조병돈 현 시장의 선거 공약이었다는 점을 들어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조 시장의 공약이 아니더라도 이천시가 2003년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정부에 남이천IC 설치를 건의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정부는 이천시의 요구에 고개를 저었다. 인터체인지 간의 간격(서이천IC와 10.4km, 일죽IC와 12.22km)이 그다지 멀지 않고 교통량이 적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똑같은 지점에 똑같은 사업을 하겠다고 한 이천시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사업 승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전준태 한국도로공사 도로조사팀 차장은 “이천시에서 수년 전부터 남이천IC 설치를 요구해 경제성 평가를 꼼꼼하게 했다”며 “그동안 경제성이 낮은 것으로 나왔지만, 얼마 전 다시 해보니까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 조사와 비교할 때 경제성 평가가 다르게 나올 만한 사정 변경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못했다. “주변 지역의 발전 정도와 장래의 개발 계획을 평가했다”는 것이 답변의 전부였다.
이천=글 최성진 기자 csj@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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