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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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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 터진 뒤에 방귀 뀐다?



‘청와대 대포폰’ 수사 부진한 가운데 터진 ‘청목회’ 사건…

야당은 국정조사 요구 거세고, 한나라당에서도 재수사 요구 나와
등록 2010-11-18 18:01 수정 2020-05-03 04:26

청와대 직원은 국무총리실 직원에게 대포폰을 건네고, 이 대포폰은 불법사찰의 증거를 없애는 데 쓰이고, 이를 수사하는 검찰은 청와대 직원을 커튼 뒤에 숨기고, 이를 엄정히 판단해야 할 법원도 청와대를 감싸고, 청와대는 대포폰을 건넨 직원을 조사조차 하지 않고….
끝이 없다. 도대체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의혹의 ‘윗선’, 혹은 ‘몸통’이 누구이기에 청와대, 검찰, 법원이 모두 들고일어나 이 난리법석일까.
 
검찰은 ‘법원 비협조’ 핑계

»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 박기춘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 전현희 민주당 대변인(오른쪽부터)이 11월8일 국회 의안과 직원에게 민간인 불법사찰과 대포폰 사건 등과 관련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고 있다.연합 김병만

»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 박기춘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 전현희 민주당 대변인(오른쪽부터)이 11월8일 국회 의안과 직원에게 민간인 불법사찰과 대포폰 사건 등과 관련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고 있다.연합 김병만

한나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최근 청와대 정무수석실 소속 인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재수사는 절대 못한다. 재수사를 하면 이영호(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가 들어가야 하고, 이영호가 들어가면 박영준(지식경제부 2차관)이 들어가야 한다. 근데 이 사람들이 그냥 들어갈 사람들이냐? 그 순간 곧바로 레임덕이다. 재수사는 절대 못한다.”

이 발언이 정말 청와대 인사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청와대는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의혹의 ‘몸통’을 ‘박영준 차관 이상의 인물’로 보고 있다는 말이 된다. 적어도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실무급 7명의 기소에 그친 검찰 수사가 의혹의 실체를 밝히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청와대도 인정한다는 얘기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쪽은 이런 이야기가 거론되는 것 자체를 꺼리는 기류인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이 민간인 사찰 관련 내용을 당시 민정수석에게도 보고한 파일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는 등 ‘수사 대상’과 무관하지 않은 탓이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민정 라인이 재수사 문제에 가장 강경한 것 같다. 자기들이 관련돼 있어서 그런지 아예 언급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고 전했다.

검찰은 ‘최선을 다했지만 법원이 도와주지 않아 수사를 못했다’며 책임을 법원에 떠넘기는 모양새다. 지난 7월 이영호 전 비서관이 불법사찰을 지시했거나 보고를 받았는지 확인하려고 전자우편 계정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범죄 혐의에 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이를 기각했다는 것이다. 또 불법사찰 의혹과 청와대의 핵심 연결고리인 ‘대포폰’과 관련해, 지원관실 장아무개 주무관에게 대포폰을 빌려준 최아무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의 휴대전화 통신사실 확인자료 요청을 법원에서 기각당했다. 법원은 이 역시 “범죄 혐의와 연관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해 기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당 “몸통 덮으려는 기획수사”

설사 검찰의 항변대로 법원이 ‘수사 방해’를 했더라도, 검찰에 박수를 보낼 일은 없을 것 같다. 10월26일 불법사찰 수사기록을 법원에 제출할 때 검찰이 이영호 전 비서관, 최아무개 행정관의 진술조서 등 청와대와 관련된 부분은 대부분 누락시켰기 때문이다. 증거인멸 의혹과 관련한 수사기록에서도 장아무개 지원관실 주무관에게 대포폰을 전달한 이를 ‘최아무개씨’라고만 적었다. 이 기록만으로는 ‘청와대 행정관’이라는 소속과 지위를 확인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이런 검찰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 11월8일 민주당·자유선진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 의원과 무소속 유성엽 의원을 포함한 야권 의원 112명은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과 ‘대포폰 게이트’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국정조사 요구서에서 “이명박 정부가 불법 민간인 사찰을 은폐하기 위해 대포폰을 지급한 것으로,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정조사가 미진할 경우 특별검사까지 도입한다는 데 합의한 상태다. 전현희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대포폰과 관련해선 검찰도 수사 대상이며, 이들이 재수사를 한다고 해서 제대로 진실을 규명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검찰을 못 믿겠으니 국회가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런 불신에 기름을 부은 건 ‘청목회 수사’다. 야당은 ‘정기국회 보이콧’ 카드까지 꺼내들며 국회 긴급현안 질문을 요구해 이를 관철시켰다. 11월10일 열린 긴급현안 질문에서 야당은 일제히 청목회 수사가 대포폰 사건을 덮으려는 게 아니냐고 성토했다. 김창수 자유선진당 의원은 “검찰이 국회의원 사무실은 마음대로 뒤지면서, 백주대낮에 대포폰을 지급한 청와대 행정관은 소환조사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의원조차도 “청목회 사건이 청와대가 개입된 기획·사정 수사라는 주장이 나온다”(김정권 의원)며 우려를 드러냈다. 다음날 민주당 의원총회에선 박지원 원내대표가 청와대를 직접 겨냥해 화살을 날렸다. 그는 “대포폰 몸통으로 지목받는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과 함께 이 사건을 피해보려고 청목회 사건을 기획했다고 본다. 청와대가 우리를 국민에게 혐오감을 주는 국회의원으로 만드는 데 일단 성공했다고 자위할 수 있지만, 민간인 사찰, 대포폰 게이트 등 검찰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 (우리를) 의도적으로 망신주려고 한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들이 더 큰 망신을 당할 것”이라며 ‘독설’을 쏟아냈다.

어쨌거나 국정조사가 이뤄지려면 국회 본회의에서 절반 이상의 의원이 동의해야 한다. 가능할까. 현재 한나라당 의원은 절반이 넘는 171명으로 민주당 등 야권 의원 127명보다 훨씬 많다. 물론 한나라당은 국정조사 요구가 정치 공세라며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재판 중인 사안에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원희룡 사무총장도 재수사 요구

하지만 마냥 야당의 요구를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명분도 없고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다. 더구나 대포폰 사건처럼 원래 문제를 덮으려다 더 큰 일이 불거져 악재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안에선 ‘검찰 재수사론’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11월12일 남경필 최고위원은 “곧 열리는 정책의원총회에서 검찰 재수사 문제를 검토하라고 요구하겠다. 재집권을 하려면 지금 이 문제를 털고 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 문제와 관련해 특별한 공개발언을 하지 않던 원희룡 사무총장도 11월11일 불교방송 인터뷰에서 “새로운 증거가 나왔다면 새로운 수사를 해야 한다. 증거가 나왔는데 일부러 덮고 가면서 다른 사건을 한다는 것은 수사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안 맞는다”고 주장했다. 대포폰이라는 추가 증거가 나온 만큼, 검찰이 재수사를 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개혁 성향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도 곧 모임을 열어 검찰 재수사를 촉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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