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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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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덕분에 나 무지 심한 일 당했다”

인천공항에서 입국 금지당한 일본 빈민활동가 마쓰모토 하지메…

“부자 나라 회의 G20은 ‘가난뱅이’들 생각을 하겠나”
등록 2010-10-14 15:45 수정 2020-05-03 04:26
일본 빈민활동가 마쓰모토 하지메. 한겨레 류우종

일본 빈민활동가 마쓰모토 하지메. 한겨레 류우종

지난 9월30일 일본 빈민활동가 마쓰모토 하지메가 인천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했다. 하룻밤을 공항에서 지낸 뒤 다음날 일본으로 강제 출국당했다. 마쓰모토 하지메의 이번 방문은 ‘2010 서울 청소년 창의서밋’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 행사는 서울시가 주관하는 행사다. 입국 거부 이유와 관련해 마쓰모토 하지메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에게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지난 4월 초 인터뷰 특강에 강사로 초청돼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무리 없이 입국했다. 마쓰모토 하지메를 도쿄에서 인터뷰했다.

입국 거부 과정을 들려달라.

지난 9월30일 오후 4시께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당연히 통과될 줄 알았다. 여권을 보여주는 수속과정에서 “어디서 묵는가” “누구의 초대를 받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물론 솔직히 대답했다. 청소년 창의서밋에 초대됐고, 숙소는 그쪽에서 정해줄 거라고. 그런데 “다른 방으로 옮겨서 이야기를 들어도 되겠느냐”고 하기에, 이상하다 싶었다. 사무실 같은 곳이었는데, 나 말고도 인도인·중국인 등이 꽤 있었다. 다들 한 30분 정도 조사받고 돌아가는데, 나는 2시간이 지나도 계속 “뭐하러 왔냐, 호텔 어디냐”며 똑같은 질문만 받았다. 한국에 들어가는 입국절차가 왜 이렇게 까다로운지 이해되지 않았다. 물어도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아 답답했다. 나중에서야 조사관이 “당신은 입국이 안 된다. 당신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말했다. 왜냐고 물으니 “그건 말할 수 없다”고 하더라.

그날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는 이미 없었고, 다음날 오후 5시 반 정도 비행기로 돌아가라고 했다. 철창이 있어 꼭 형무소 같은 방에서 하루를 묵었다. 방에 판자와 벤치가 있었는데, 그 위에서 잠을 잤다. 입국을 거부당한 인도인, 중국인 등 20~30명과 함께 ‘범죄인’ 취급받으면서. 다행히 공중전화가 있어 일본 친구들에게 연락해 매스컴에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한국 쪽에도 연락했다.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서였을까, 다음날 아침 10시 비행기로 돌아가게 하더라.

이후에 일본 국회의원이 외무성에 공식적으로 문의했다고 하던데.

사민당의 외무담당 하토리 료이치 의원이 일본 외무성에 내가 한국 입국이 거부된 이유에 대해 공식적으로 묻는 질의서를 보냈다. 답변서가 왔는데, ‘우리도 아직 파악이 안 된다. 한국의 블랙리스트 내용은 모른다. 외무성이 한국 외교통상부에 물어보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외무성 관계자는 “일본 국적인에 대한 한국 입국 거부사례는 흔치 않은 일”이라고 했다. 하토리 의원이 그동안 내가 한국을 방문한 기록과 한국에서 한 일 등을 정리하고 있다. 그 자료로 외무성과 다시 연락을 취할 것이다.

블랙리스트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다케우치 가즈하루(40)에게서 올해 초 일본과 한국 사이에 경찰 간 협조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한국에서는 G20, 일본에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열리는데, 이에 대한 ‘공동 테러 대책’이 세워졌고 명단을 교환했다고 한다(지난 3월15일 일본 경찰청장이 8년 만에 한국을 방문해 이같은 대책을 논의했다. 다케우치 가즈하루는 전화 통화를 통해 “(이런 연계 과정을 통해) 리스트가 작성되는 것은 당연히 추측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마쓰모토 하지메가 일본 경찰이 주목할 만한 위험인물인가라는 물음에는 “보안관계자들이 보는 이라는 잡지를 보면 마쓰모토가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2008년 G8 정상회의 때 내가 도쿄에서 시위를 했는데, 그때 일과 연관된 것 같다.

당시 어떤 활동을 했나.

‘야, 홋카이도라면 여행으로도 좋지’ 싶어 지인들과 갔다. 그때 트럭 위에서 디제이를 한 친구가 구속됐다. 정말 디제이만 했을 뿐인데 너무한다 싶었다. 7월12일 도쿄에 돌아와 고엔지에서 ‘사운드 데모’(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함께 부르는 시위)를 했다. 그리고 구속자를 석방하라고 외쳤다. 1시간30분 동안 데모하면서 300여 명이 모였다. 그야말로 마쓰리(축제)였다.

정상회담 때 왜 운동가들이 모여서 투쟁을 하나.

큰 국제회의라는 게 결국 부자 나라가 모여서 자기들끼리 결정해버리는 거 아닌가. 그러니 ‘가난뱅이’들 생각을 하겠는가. 그런 회의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런 회의는 그만두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기본적으로 부자들끼리 ‘나눠 갖기 잘하자’는 이야기고, ‘환경’ 얘기는 구색 맞추기 식으로 논의에 끼워 올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다 거짓말이면서.

G20 때 한국에 다시 올 건가.

불러주면 당연히 간다. 근데, 나 입국 될까? 만약 입국할 수 있으면 꼭 가서 한국 정부에 한마디해줄 거다. “덕분에 나 무지 심한 경우를 당했다”고.

도쿄(일본)=황자혜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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