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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대통합 정당을 위한 시민회의가 뜬다

야 4당 인사와 시민사회 세력이 모여 ‘진보의 재구성’ 모색… 고착화된 양당구조 바꿀 초석 될까
등록 2010-06-25 14:54 수정 2020-05-03 04:26

진보의 재구성이 시작됐다. 민주당을 제외한 야 4당과 진보적 시민사회 세력이 뭉쳐 단일한 진보대통합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등 야 4당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회민주주의연대 등 진보·개혁 성향의 시민사회단체 핵심 인사가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가칭·이하 시민회의)를 구성한 사실이 확인됐다. 시민회의의 출범은 6·2 지방선거 전후 야권에서 물밑 논의만 무성했던 진보의 재구성과 관련한 첫 번째 구체적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7월 발기인대회, 11월 대통합추진대회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 진보정당 운동은 2008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이후 침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6·2 지방선거에서 야 5당이 이룬 부분적 선거 연합의 성과는 대부분 민주당 몫이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대회 모습(맨위·한겨레 김진수 기자)과 2008년 분당 직후의 노회찬·심상정(가운데·한겨레 강재훈 기자). 6월2일 밤 송영길 민주당 인천시장 당선자가 지지자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아래·한겨레 김종수 기자).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 진보정당 운동은 2008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이후 침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6·2 지방선거에서 야 5당이 이룬 부분적 선거 연합의 성과는 대부분 민주당 몫이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대회 모습(맨위·한겨레 김진수 기자)과 2008년 분당 직후의 노회찬·심상정(가운데·한겨레 강재훈 기자). 6월2일 밤 송영길 민주당 인천시장 당선자가 지지자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아래·한겨레 김종수 기자).

시민회의에 참여하는 주요 인사는 김헌태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노혜경 전 국정홍보비서관, 신필균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이부영 동북아평화연대 공동대표, 이삼열 전 숭실대 교수, 이상이·최병모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이상현 2010연대 운영위원,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이정우 경북대 교수, 이학영 YMCA 사무총장, 장유식 변호사,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등이다. 시민회의 출범의 물꼬를 튼 사람은 이 가운데 이부영, 이상이, 이수호, 주대환 등 네 명이 꼽힌다.

시민회의 준비위원 등의 자격으로 활동하는 이들 30여 명의 시민사회 인사와 별도로 정당에서는 최순영 민주노동당 최고위원과 김성진 인천시당 위원장, 정종권 진보신당 부대표, 김영대 국민참여당 최고위원,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이 참여하고 있다.

7월 말 200~300명 규모의 대표적 진보 인사를 주축으로 발기인 대회를 예정하고 있는 시민회의는 11월께 진보대통합 추진대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이상현 2010연대 운영위원은 “6·2 지방선거에서 가동돼 일정 성과를 거둔 ‘5+4 회의’는 이제 진보대통합 논의에 맞게 ‘4+1 연석회의’로 전환될 것”이라며 “6·2 지방선거 전후로 진보·개혁 정당이 야권 연대 운동의 성과를 딛고 제3지대에서 진보대통합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시민회의는 늦어도 19대 총선을 1년 앞둔 2011년 4월까지는 진보대통합 정당을 건설할 계획이다. 시민회의는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등 진보 정당과 시민사회 세력을 통합으로 견인하고 실현 가능한 공동의 정책 어젠다를 제시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정치적 상황에 따라 직접 통합 진보 정당의 핵심 주체로 합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시민회의가 진보대통합 정당을 추진하게 된 이유는 뭘까? 1차적 배경에는 6·2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자리잡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시도별 광역의원 정당득표율을 보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39.59%, 34.57%를 차지했다. 민주노동당은 7.26%, 진보신당 3.13%, 국민참여당 6.26%였다. 민주당을 뺀 나머지 진보·개혁 정당의 지지율을 합하면 16.65%로 민주당이 얻은 득표율의 절반에 육박한다.

함께 비교해봐야 할 다른 수치도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윈지코리아컨설팅이 6월12~13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다.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진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대다수(60%)는 여권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단순한 견제 심리’라고 응답한 사람도 26.1%였다. ‘민주당이 잘해서’라고 응답한 사람은 3.5%에 불과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6월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8.5%는 대통령이나 여당이 싫어서 야당 후보를 지지했다고 말했다. 두 조사를 종합해보면, 야당을 찍은 유권자는 야당이 좋아서라기보다 정부·여당의 실정에 따른 반감 때문에 야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는 이야기다.

야당의 반사이익이란 사실 민주당 몫이었다. 진보신당과 국민참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선거 결과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민주노동당조차 서울과 경기 등 핵심 지역에서는 거의 얻은 게 없었다.

민주당 절반의 지지율, 10%대 지분

민주당을 뺀 나머지 진보·개혁 정당을 지지하는 밑바닥 표심이 확인됐고 여권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성과는 대부분 민주당 몫이었다. 소선거구제와 단순다수대표제 아래에서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이 끊임없이 양당체제로 쏠리는 경향, 이른바 ‘뒤베르제의 법칙’이 그대로 나타났다.

시민회의 관계자의 말이다. “정당득표율만 따지면 민노당 등 야 4당은 민주당이 얻은 전체 의석의 절반 정도는 얻었어야 맞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실제로는 85% 이상의 성과를 민주당이 가져갔다. 이런 불균형한 결과만 놓고 봐도 야 4당의 정치적 위상이 미약하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야 4당의 취약한 정치적 위상에 대해서는 각 당 내부적으로도 뼈저리게 받아들이고 있다. 오병윤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은 민주노동당의 한계로 ‘인물의 부재’를 꼽았다. “민노당에는 노동자·농민이라는 조직이 있다. 하지만 대중적 스타가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런 점에서 진보신당이 부럽다. 노회찬·심상정이라는 인물이 있다.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지식인 그룹도 많다. 유시민 전 장관이 있는 국민참여당도 비슷하다.” 새 지도부 선출을 앞둔 민주노동당이 ‘이정희 대표 체제’ 쪽으로 무게가 기울고 있는 것도 ‘인물’에 대한 갈증과 무관하지 않다.

진보신당과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도 지방선거가 끝난 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후유증을 겪고 있다. 특히 진보신당에서는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와 단일화를 강행한 심상정 전 대표의 선택에 대한 찬반 양론이 뜨겁다. 국민참여당은 여전히 독자 정당으로 인정받기보다 민주당의 ‘흡수합병’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는 진보대통합정당 창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민회의 출범의 물꼬를 튼 사람은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와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이부영 동북아평화연대 공동대표 등이다(왼쪽부터).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는 진보대통합정당 창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민회의 출범의 물꼬를 튼 사람은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와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이부영 동북아평화연대 공동대표 등이다(왼쪽부터).

산술적 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

애초 각각의 약점을 안고 있는 야 4당이 이를 해소하지 않은 채 ‘5+4 회의’에 참여한 결과, 선거 연합은 대등한 협상이 아니라 인물과 조직, 지명도 등 모든 면에서 월등한 민주당 쪽으로 끌려가는 협상이 됐다는 것이 시민사회 그룹의 반성적 평가다.

이상현 2010연대 운영위원은 “지방선거 선거 연합 과정에서 진보·개혁 정당이 근본적 한계를 노정했다는 반성이 많았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이 좀더 대등한 연합, 시너지 효과가 있는 연대를 하기 위해서라도 진보대통합 정당이 필요하다. 시민회의의 출범은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회의가 생각하는 통합의 범주와 내용도 눈길을 끈다. 시민회의에는 6월 현재 김성진 민주노동당 인천시당위원장과 정종권 진보신당 부대표, 김영대 국민참여당 최고위원,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 등 민주당을 제외한 야 4당 주요 인사가 결합해 있다. 진보대통합 정당이 창당한다면 현실적으로 야 4당이 핵심 주체가 될 수밖에 없지만, 현재로서 이들의 지위는 각 정당의 대표가 아니라 ‘대표성 있는 개인’ 자격이다. 각 정당으로부터 협상 권한을 공식적으로 위임받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5+4 회의가 출범할 때와 비교해보면 이해가 쉽다. 5+4 회의가 공식화 하기 전까지 회의에 참여한 정당 대표자는 개인 자격이었다.

시민회의는 진보대통합이란 야 4당의 산술적 결합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진보대통합이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과거 회귀적 재통합을 뜻하는 게 아닌 것처럼 민주당을 제외한 야 4당만의 통합을 목표로 하지도 않는다. 진보대통합은 진보·개혁 세력의 외연을 크게 확장해야 한다. 시민사회 세력의 결합은 필수적이다. 노동자 조직도 과거 민노당처럼 민주노총 상층부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았던 광범위한 노동자 그룹과 결합해야 한다. 여기에 촛불시민 등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조직화 서명도 추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과거 민주노동당이 유럽식 노동자 대중정당을 모델로 삼았다면 진보대통합 정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넓은 대중조직, 더 강력한 대중운동을 에너지로 삼겠다는 계산이다.

‘대중적 진보 정당’이 시민회의가 바라는 진보대통합 정당의 위상이라면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진보대통합 정당의 미래 비전에 해당한다. 이미 시민회의와 일부 결합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보편적 복지’ 등 역동적 복지국가론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왔다. 진보의 재구성을 주장해왔던 시민사회 세력과 역동적 복지국가론을 연구해왔던 어젠다 그룹이 시민회의에서 진보대통합 정당 건설에 합의한 셈이다. 그 시점은 지난 3월이었다.

콘텐츠는 역동적 복지국가론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복지국가를 지향하려면 진보대통합이라는 경로를 통한 진보의 재구성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말했다. 진보의 재구성이 곧 역동적 복지국가론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사회적 수단이라는 말이다.

시민회의는 현재 조직팀과 담론팀으로 나뉘어 조직팀(팀장 이수호·간사 이상현)에서 발기인 조직화 방안 등을 맡고 담론팀(팀장 신필균·간사 노혜경)에서 복지국가론과 지속 가능 어젠다 등 진보대통합 정당의 주요 콘텐츠를 가다듬고 있다. 시민회의가 구상하는 진보대통합 정당의 밑그림은 이르면 7월 말 발기인대회를 전후로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이상현 시민회의 조직팀 간사 인터뷰
“5+4를 딛고 4+1로”
이상현 2010연대 운영위원. 한겨레 자료

이상현 2010연대 운영위원. 한겨레 자료


이상현 2010연대 운영위원은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가칭·이하 시민회의)에서 조직팀 간사를 맡고 있다. 민주노동당 대변인을 거쳤고 박석운 공동대표 등과 함께 2010연대를 이끌어왔다. 지방선거 이후 2010연대는 시민회의 합류를 위해 조직을 전환한 상태다. 이 위원은 6·2 지방선거 이후 진보 진영에 넘겨진 화두를 ‘연대를 넘어 통합으로, 5+4를 딛고 4+1로’라는 말로 정리했다.

-시민회의가 출범한 배경은.
=6·2 지방선거가 야권의 승리로 끝났는데도 민주당을 제외한 네 야당의 존재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민주당은 물론 네 야당도 지지하지 않는 시민이 여전히 많다. 진보대통합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는 지방선거 이전에도 있었지만 지방선거에서 진보·개혁 정당의 근본적 한계를 확인한 뒤 급물살을 탔다.
-진보대통합을 주장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도 잘 안 되고 있다.
=우리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둘만의 통합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따져봐도 두 당의 통합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두 당은 물론 국민참여당과 창조한국당,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광범위한 시민사회 세력이 합류하는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경우 분당의 이유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의 정파적 행태를 크게 경계하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통합이라고 하면 진보신당 당원의 상당수는 흡수합병을 떠올린다. 그래서 1+4(시민회의와 네 야당) 연석회의가 나서서 주체의 혁신, 담론의 혁신을 통해 대통합의 기반을 닦겠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위축된 까닭을 ‘정파 연합당’이라는 태생적 한계에서 찾는 사람도 있는데, 대통합이라면 더 많은 정파를 묶겠다는 것 아닌가.
=주체의 혁신, 담론의 혁신 과정을 거치면 민주노동당의 전근대적 정파 구도는 소멸할 것으로 본다. 의제나 담론을 중심으로 새로운 의견 그룹이 출현할 수는 있겠지만 과거처럼 인맥에 바탕을 둔 후진적 정파는 발 붙이기 어려울 것이다.
-시민회의의 진보대통합 정당 구상이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논의가 있었나.
=없었다. 네 야당 관계자가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정치인이 먼저 깃발을 들기는 어렵다. 각 당 내부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진보·개혁적 시민사회 세력이 선차적으로 결집하려 한다.
-진보신당에서는 심상정 전 대표의 진보대연합 구상에 동의하지 않는 당원도 많다.
=1+4가 출범한다 해도 모든 정당이 일거에 해소돼 합류하는 모양새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각 당 내부의 역학 관계에 달렸다. 하지만 진보신당도 내부적으로는 통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당원이 많다. 심 전 대표의 경기도지사 후보 사퇴 과정에 대한 반대와는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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