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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야대 지방권력, 충돌이냐 균형이냐

야당이 다수인 지방의회에 포위당한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무상급식 등을 둘러싼 정책충돌 예고
등록 2010-06-18 18:59 수정 2020-05-03 04:26
6·2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가 재선에 성공했다. 4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여소야대 시의회는 물론 21명의 야당 구청장들로부터 견제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 6월4일 오전 당선증 교부식에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오른쪽)와 만난 오세훈 당선자. 한겨레 김경호 기자

6·2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가 재선에 성공했다. 4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여소야대 시의회는 물론 21명의 야당 구청장들로부터 견제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 6월4일 오전 당선증 교부식에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오른쪽)와 만난 오세훈 당선자. 한겨레 김경호 기자

민선 4기 서울시의회에서 생긴 일이다. 취임한 지 채 반년이 되지 않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의회에 대중교통 요금 인상안을 내놓았다. 시내버스와 지하철의 기본요금을 올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시의회는 재석 의원 60명이 참석한 가운데 본회의를 열어 찬성 27명, 반대 27명, 기권 6명으로 ‘부동의’ 의사를 밝혔다. 서울시의회는 의견청취 표결에서 찬반이 같을 때 부동의로 처리한다.

시장의 거부권도 넘을 야당 의원 70%

서울시의회의 ‘반란’이었다. 2006년 7월 출범한 민선 4기 서울시의회의 구성은 그야말로 한나라당 일색이었다. 전체 시의원 106명 가운데 102명이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열린우리당 등 야당 소속 시의원은 4명에 불과했다. 오세훈 시장의 교통요금 인상안에 시의회가 제동을 걸자 서울시 관계자는 “이런 결과가 나올지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반란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2월 서울시가 내용이 거의 같은 요금인상안을 다시 내놓았다. 시의회에서 이를 문제 삼은 사람은 이수정 민주노동당 의원 등 몇몇에 지나지 않았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 가운데 오세훈 시장의 정책에 개별적으로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회를 가리켜 ‘오세훈 시장의 거수기’라는 지적이 나왔다.

7월1일 새롭게 출범하는 민선 5기 서울시의회의 역할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전체 시의원 106명 가운데 민주당 소속이 79명으로 압도적이다. 한나라당은 27명이다. 지난 4년간 오 시장이 한나라당 일색의 시의회로부터 든든한 지원을 받았다면, 이제는 견제와 감시가 기다리고 있다. 사안에 따라 서울시장과 시의회가 정면으로 충돌할 소지도 있다.

첫 번째 쟁점 현안은 서울광장 개방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서울시는 허가제라는 이유를 들어 서울광장을 관리해왔다. 기본적으로 ‘선착순’ 원칙을 적용해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 서울시 설명이지만 시민사회의 생각은 다르다.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행사를 막기 위해 서울시가 자의적 기준을 적용해왔다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 시의원 당선자가 민선 5기 서울시의회가 처리해야 할 1호 안건으로 서울광장조례 개정안을 꼽는 이유도 서울광장 문제가 갖는 상징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강희용 당선자(동작 제1선거구)는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하는 서울시의 잣대가 지나치게 자의적이었다”며 “누구나 광장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민선 5기 서울시의회의 제1호 안건으로 서울광장 조례개정안을 상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광장 조례개정안이 서울시의회를 통과한다 해도, 오세훈 서울시장에게는 거부권이 남아 있다. 시장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조례개정안은 다시 시의회로 넘어가게 되지만 만약 시의원의 3분의 2가 다시 의결하면 이때는 시행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 소속 시의원이 70%가 넘는 상황에서 오세훈 시장으로서는 거부권을 행사하기 쉽지 않다. 서울시도 절대적 ‘여소야대’ 의회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서울광장 조례개정 움직임과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시의회가 현행 조례를 개정하겠다면 우리가 이를 막을 도리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광장 개방 문제가 전초전이라면 한강르네상스 사업 등 오세훈 시장의 역점 사업은 ‘메인 이벤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는 당장 2011년 이후 한강르네상스 사업에 5717억원, 한강 지천(안양천·중랑천) 뱃길 조성에 2355억원을 투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올해 하반기 시의회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민주당 생각은 다르다. 이미 서울시장 선거 때부터 민주당은 오 시장의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대표적인 전시성 사업으로 지적해왔다.

지방권력 분점 시대

지방권력 분점 시대

다수의 구청장도 한강르네상스 반대

강희용 당선자는 “거리와 강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정해져 있는 서울시 재원을 그런 데에 먼저 쓰겠다는 발상이라면 동의할 수 없다”며 “친환경 무상급식 등 시민의 요구를 좀더 폭넓게 수렴해 예산 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오세훈 시장이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려면 시의회는 물론 기초단체장의 협조도 필수적이다. 이 역시 낙관하기 어렵다. 서울 25개 구청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이긴 곳은 4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21곳에서는 모두 민주당이 이겼다. 25명의 한나라당 구청장과 함께 일했던 지난 4년이 오 시장에게 천국이었다면 앞으로의 4년은 반대가 될 수 있다. 민주당 소속 김성환 노원구청장 당선자는 한강 지천 뱃길 사업과 관련해 “할 일 없이 중랑천에 배를 띄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노원구의 의견”이라고 못박았다. 김 당선자는 노원구를 비롯해 도봉·강북·중랑·동대문·성동구 등 중랑천 통과 지역의 구청장과 함께 ‘중랑천 협의체’(가칭)를 만들어 한강 지천 뱃길 사업에 대해 제고를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친환경 무상급식 문제는 오세훈 시장뿐만 아니라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도 고민을 안겨줬다. 2009년 당선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무상급식 확대 공약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됐던 것이 김문수 지사와 경기도의회였다. 진보 성향의 김 교육감과 달리 김 지사나 한나라당이 절대다수였던 도의회는 무상급식을 포퓰리즘 정책으로 몰아붙였다.

6·2 지방선거를 통해 상황이 반전됐다. 서울은 물론 경기도에서도 광역단체장을 제외한 모든 지방권력의 판도가 바뀌었다. 경기도의회에서는 전체 124석 가운데 민주당이 76석을 가져갔다. 기초단체장 역시 31개 시·군 가운데 민주당이 이긴 곳이 19곳이나 됐다. 한나라당은 10곳을 차지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당선 직후 친환경 무상급식 실시 계획을 자신 있게 밝힌 것도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곽 교육감 쪽 박상주 대변인은 “시의회에 예산 심의 및 의결권이 있기 때문에 친환경 무상급식 실시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며 “소득수준을 기준으로 하위 30%에게만 무상급식을 하겠다는 (오세훈 시장의) 공약은 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남기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서울시 구청장 당선자들이 6월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정 공동운영 방안 등을 밝히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민주당 소속 서울시 구청장 당선자들이 6월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정 공동운영 방안 등을 밝히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단체장 예산 편성권 vs 의회 예산 의결권

오세훈 시장과 김문수 지사가 끝까지 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막으려 한다면 수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산 심의와 의결은 지방의회의 몫이지만 편성 및 결정권은 광역단체장에게 있다. 진보 교육감이 친환경 무상급식 실시를 강행할 경우 광역단체장은 예산 편성권으로 대응할 수 있다. 곽노현 교육감 등은 교육청과 자치단체가 예산을 반반씩 부담하는 ‘매칭펀드’ 방식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자치단체 분담 몫도 다시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가 반반씩 부담하게 되면 큰 부담 없이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는 계산이지만 오 시장이나 김 지사가 끝까지 이를 거부하면 광역단체의 예산 지원 없이 사업을 추진해야 할 판이다.

김문수 지사는 6월10일 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남·과천 등 재정이 괜찮은 곳은 시장 치적으로 돈을 내서 할 수 있다. 이제 민주당 기초단체장이 늘었으니까 하는 데는 하는 거다. 그런데 형편 안 되는 시·군이 그러면 나중에 자기들 필요한 돈을 우리(경기도)한테 또 달라고 그럴 것이다.” 방식이야 어떻든 무상급식 재원 마련에 협조할 생각이 없다는 이야기로 풀이된다.

곽 교육감 등은 광역단체장이 이렇게까지 나오면 우선 기초단체 예산만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김선희 친환경무상급식연대 사무처장은 “서울의 경우 21개 기초자치단체에서 무상급식 공약에 찬성하는 구청장 후보가 당선돼 무상급식이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다”며 “다만 서울 강남과 서초·송파·중랑 등 여전히 선별 급식을 주장하는 후보가 당선된 지역에서는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인천시는 중앙정부와 갈등할까

인천시장 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 송영길 당선자가 이겼다. 수도권에서는 유일한 야당 광역단체장이다. 송 당선자의 경우 오세훈·김문수 당선자와 달리 지방의회의 견제에서 자유롭다. 이번에 새롭게 당선된 전체 시의원 33명 가운데 23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에서도 각각 1명을 배출했다. 한나라당 시의원은 6명에 불과하다. 기초단체장 구성도 비슷하다. 전체 10석 가운데 민주당(6석)과 민주노동당(2석)이 8석을 차지했다. 한나라당은 1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송영길 당선자는 대신 오세훈·김문수 당선자와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지방정부 내부의 환경이 우호적인 대신 중앙정부나 이웃 광역단체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송 당선자는 여권의 잠재적 대권주자인 오세훈·김문수 당선자와도 경쟁해야 한다.

경인운하로 더 잘 알려진 경인아라뱃길 사업이 송 당선자에게 첫 번째 도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추진 중인 아라뱃길 사업은 한강과 서해를 잇는 운하를 만들어 내륙의 교통난과 물류비 절감을 꾀한다는 목표로 진행돼왔다. 한국수자원공사가 2009년부터 공사를 시작했으며, 5월까지의 전체 공정률은 26%다. 2011년 9월까지는 공사를 마친다는 것이 정부 계획이다.

아라뱃길 사업에 대한 송 당선자의 원래 입장은 ‘적극 찬성’이었다. 아라뱃길 공사 구간인 인천시 계양구 주민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였다. 송 당선자의 입장이 바뀐 것은 지방선거 직전이었다. 인천 야권연대 및 후보단일화 과정을 거치며 그는 “재검토 뒤 문제가 있으면 (아라뱃길 사업의) 주 사업지역의 광역단체장으로서 정부에 중단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경인운하 백지화 수도권 공동대책위원회’의 ‘선 건설 중단, 후 전면 재검토’ 요구보다 낮은 단계의 약속이지만, ‘개발’보다 ‘환경’에 좀더 무게를 둔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아라뱃길 사업이 한반도 대운하의 첫 단추라는 데 환경단체와 송 당선자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송 당선자가 아라뱃길 사업 중단을 결정할 경우 1차적으로는 중앙정부와의 마찰을 피할 수 없다. 송 당선자 쪽에서는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이라도 광역단체장이 하나하나 문제 삼고 나서게 되면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기 어렵다”며 “인천시장직 인수위원회가 꾸려진 만큼 보고를 받은 뒤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보겠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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