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등 5개 야당과 4개 시민사회단체가 국민에게 약속했던 야권 선거 연합 협상이 4월20일 끝내 결렬됐다. 2월16일 5개 야당이 공식 협상을 시작한 지 두 달여 만이고, 이 지난 1월 이른바 ‘5+4 회의’의 선거 연대 움직임을 처음 보도(793호 표지이야기 ‘넘어가세, 대연합으로’ 참조)한 지 넉 달 만이다.
공식 협상 시작 두 달여 만에선거 연합 협상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박석운 2010연대 공동운영위원은 4월20일 “이미 대사를 그르쳤다”는 말로 짧게 상황을 전했다. 박 운영위원은 “오늘로서 선거 연합 논의는 완전히 종결됐다”며 “연합 논의가 성사되지 못한 기본적 책임은 민주당에, 결정적 책임은 국민참여당에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사회가 이날 야권 협상의 최종 결렬을 선언하자 민주당과 참여당의 상호 비방전이 불을 뿜었다. 민주당이 먼저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시민사회 진영에 경기도지사 후보 단일화 방식 협상을 위임한 유 후보가 애초 약속과 달리, 시민사회가 민주당과 협상해 마련한 절충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유 후보는 3월26일 국민참여당 소속 기초단체장 예비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시민단체에 합리적이고 공정한 후보 단일화 방법을 제안해주실 것을 요청한다”며 “저와 국민참여당에 불리한 것이라 할지라도 아무 이의 없이 받아들이고 결과에 승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민주당 협상대표인 김민석 최고위원은 4월20일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은 (비주류와 호남 의원 등의) 격렬한 내부 반발을 뚫고 결단했지만 국민참여당이 연대 전선을 흐트려뜨리고 있다”며 “또다시 문제는 유시민 후보가 됐다”고 말했다. 경기도지사 후보 단일화 방식과 함께 이번 협상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호남 지역 기초단체장 양보 문제가 민주노동당과의 쌍무협상으로 일정한 보완만 하면 되는 상황이어서, ‘유시민 변수’만 빼면 야권연대가 사실상 완결됐다는 것이 김 최고위원의 주장이다.
유시민 예비후보는 민주당의 ‘말 바꾸기’ 공세에 강하게 반발했다. “불리해도 받아들이겠다”는 발언은 합의안이 최소한의 상식에 기초했을 때 성립하는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시민사회에 단일화 방식 협상을 위임한 것은 시민단체가 국민 앞에 그 방안을 책임 있게 제시해달라는 뜻이었다. 자기들끼리만 있는 공간에서 어떻게든 합의는 성사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보면 시소처럼 결국 몸무게 많이 나가는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런 식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나온 방안이 아니라, 시민단체가 명예를 걸고 국민에게 내놓을 방안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이것을 시민단체 안으로 내놓으리라고 상상도 못했다.”
유 후보와 국민참여당이 지적한 후보 단일화 방안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시민사회가 민주당과 합의한 경기도지사 경선 방식은 ‘여론조사 50%, 도민참여경선 50%’였다. 유 후보는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여론조사를 주장하며 여론조사를 사실상 무력화했다. 여론조사란 경기도민이 진짜 원하는 야권 후보를 가리자는 것인데, ‘김문수 대 김진표’ ‘김문수 대 유시민’ 이런 가상 대결 여론조사를 하면 의미가 없다. 도민참여경선도 마찬가지다. 유권자 모집단과 표본집단을 일치시키기 위해 보통 10년 단위로 끊어서 20대·30대·40대, 이렇게 하지 않나. 그런데 민주당은 ‘19~39살, 40~59살, 60살 이상’ 이렇게 3단계로만 맞추자고 한다. 남녀 할당도 안 하겠다고 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는다.”
민주당 386그룹과 유시민의 반목
반면 김진표 민주당 경기도지사 예비후보 쪽에서는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당이 이미 합의를 끝낸 상황에서 뒤늦게 문제제기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국민참여당 주장처럼 하려면 아예 10년 단위가 아니라 1년 단위로 하면 더 정확할 것”이라며 맞받아쳤다. 경선 선거인단 표본집단을 3단계로 나눈 것은 시간과 비용의 문제를 고려한 선택이라는 주장이다.
중앙당 차원의 연대 협상이 좌초된 이상, 야권의 선거 연합은 이제 지역별 논의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진보신당이 각각 한명숙·노회찬 예비후보를 내놓은 서울, 그리고 김진표·유시민·심상정(진보신당) 예비후보가 각축을 벌이는 경기에서는 후보자 간 협상 등 정치적 결단을 통해 막판 단일화를 모색하는 방법밖에 없다. 물론 전망은 밝지 않다.
경기의 경우 선거연합 협상이 깨지자마자 춘천에서 칩거 중이던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까지 나서서 중재해보겠다며 힘을 보태고 있다. 손 전 대표는 4월22일 유시민 후보와 김진표 후보를 차례로 만나 단일화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는 두 후보와의 면담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모두 단일화 의지가 강하다. 그것이 시발이고 희망의 단초”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두 후보가 처한 상황을 살피면 단일화에 대한 ‘희망의 단초’보다 ‘부정적 변수’가 더 도드라진다. 우선 민주당과 유시민 후보 사이를 가로막는 애증의 깊이가 생각보다 깊다. 표면적으로는 경기도지사 단일 후보 선정을 위한 경선 규칙 때문에 발생한 파열음이지만, 속내에는 ‘상대 후보는 절대 안 된다’는 계산이 숨어 있다.
민주당에서는 유 후보를 잠재적 경쟁자로 여기는 386그룹이 당의 핵심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 송영길·안희정·김민석 등 광역단체장 예비후보는 당 최고위원을 맡고 있다. 원외인 우상호·오영식 전 의원은 각각 대변인과 공천심사위원회 간사로 있고, 최재성 의원은 경선관리본부장을 맡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은 최근 “야권 선거 연합 협상은 유시민이 갑자기 경기도로 건너오지만 않았어도 순조롭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 모든 문제의 시작과 끝에 유시민이 있다”며 협상 실패의 책임을 유 후보에게 돌렸다.
연대 협상이 결렬된 직후 유 후보를 앞장서서 비판한 쪽도 민주당 386그룹이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4월20일 기자간담회에서 유 후보에게 맹공을 가한 데 이어 다음날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경선 완주로 당의 명색을 연명하려는 것인가. 유시민 펀드가 대박 났다는데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탐이 났는가. 경기도 문제는 유 후보의 사퇴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유시민 후보와 국민참여당 역시 민주당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유 전 장관은 최근 사석에서 국민참여당 창당 이유를 밝히며 민주당에 대한 강한 혐오를 드러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정동영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 나가면서도 이런 정당에 몸담고 있다는 사실에 모멸감을 느꼈다. 국민참여당을 창당한 것은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절망적 시도다.”
지방의원 배분까지 합의한 곳도유 후보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 참여한 바 있다. 당시 신당 경선은 ‘박스떼기’로 불린 불법 선거인단 모집 시비 등으로 온갖 잡음을 빚었다. 경선의 승자는 조직력에서 앞선 정동영 의원이었지만 대선은 현 야권의 참패로 끝났다. 유 후보는 그때 정동영 선대위에서 국민통합위원장을 맡았다.
천호선 국민참여당 최고위원도 시민사회와 민주당이 합의한 경기도지사 후보 단일화 방식 내용이 알려진 뒤 강력히 반발했다. 천 최고위원은 “이건 결국 유시민 후보를 매장시키려는 것이고 유시민에게 더 이상 정치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며 “유시민 후보가 지더라도 여론조사에서는 앞서야 유시민에게도 앞날이 있을 텐데, 여론조사까지 엇비슷하게 나오게 방식을 정해버리면 김진표 후보가 무조건 이기는 룰이 된다”고 말했다.
최근 천안함 침몰 사건과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암살을 목적으로 침투했다는 간첩 검거 사건 등 안보 관련 이슈가 잇달아 등장하는 사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북한 관련 뉴스가 터지면 진위를 떠나 안보 이슈를 집중 적으로 제기하는 보수 언론의 속성상 국민 여론의 상당 부분도 이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있다. 여론의 관심이 멀어지면 후보 단일화 논의도 속도를 내기 어려워진다.
김진표-유시민 두 예비후보가 팽팽히 맞서는 경기도와 달리 야권의 지역별 연대는 상당히 진척된 상태다. 중앙당 차원의 ‘5+4 회의’가 그동안 주로 서울과 경기, 호남 연대에 집중해왔다면, 인천·대전·경남·부산 등의 선거 연합 협상은 지역별로 전개됐다. 이 가운데 인천과 대전은 이미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배분까지 끝냈을 정도로 성과를 보였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 역시 “시도당별로 합의된 연대를 존중하고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밝혀 남은 전망도 썩 어둡지 않다.
‘마지막 단추’인 경기도지사 후보 단일화 문제가 풀리려면 결국 김진표-유시민 두 후보 쪽의 정치적 결단과 시민사회의 강력한 압박이 요구된다. 하지만 선거 연합 협상 결렬 이후, 그동안 협상에 참여했던 시민사회 진영도 경기도지사 단일화 문제에서 한 발짝 물러선 양상이다. 4월23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기자회견을 자청했지만 이날 시민사회는 경기도지사 문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백 명예교수는 “포괄적 연합이 안 되더라도 지역별 연합, 선거별 연합 또는 전국적 연대가 가능한 당끼리의 연합 등 온갖 연대 방식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며 “지역 단위에서 자발적으로 이룩된 연합에 대해서는 각 정당도 추인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5월3일 이후 달라진 조건에 맞춰시민사회가 현 단계에서 경기도지사 후보 단일화 문제에 직접 개입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유시민 후보와 국민참여당이 강력히 반발하는 경선 규칙 합의안을 만들어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 진영의 실무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양쪽 모두에게 합의안을 존중하라고 촉구하는 것 외에 다른 역할을 하기 어렵다”며 “다만 선거법상 5월3일 이후에는 도민참여경선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그때 되면 달라진 조건에 맞춰 다른 방안을 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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