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통합재정수지의 균형을 위한 수지 조정 노력이 필요하며, 총수입 변동이 없는 경우 총지출 기준 4조원 수준의 감액 조정 필요.”
쉽게 말해서 ‘정부 계획대로 살림을 꾸렸다가는 국고 운용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으니 지출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등 야당이 내놓은 예산 심의 방안이 아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표한 ‘2010년도 예산안 분석’ 보고서 내용의 일부다.
보고서는 정부의 2010년 예산안을 ‘함량 미달’로 평가했다. 재정을 지원할 필요성이 낮은 사업이 수두룩하고, 심지어 일부 신규 사업은 법적 근거마저 희박하다는 것이 국회 예산정책처의 의견이었다.
보고서는 논란을 빚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도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사업비용 분석이었다. 애초 정부는 4대강 사업에 배정된 2010년 예산이 3조5천억원이라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도 11월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년 예산안에) 한국형 녹색뉴딜 사업인 4대강 사업에 3조5천억원을 배정했다”고 말했다.
당황한 기획재정부 불편한 기색이 대통령의 발표는 단 하룻만에 ‘거짓말’ 논란을 빚게 됐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11월3일 발행한 보고서에서 4대강 사업에 배정된 2010년 예산은 3조5천억원이 아니라 5조333억원이라고 밝힌 것이다. 애초 정부가 4대강 예산이라고 밝힌 국토해양부 소관 예산 3조5천억원에 더해, 환경부 예산 1조2873억원 등 다른 부처에 분산돼 있는 4대강 관련 예산을 더 찾아낸 결과였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2010년 예산안의 허점을 하나하나 들춰내자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예산안 관련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보고서가 나온 지 이틀 만인 11월5일 류성걸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이 기자들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류 실장은 예산정책처가 내년 예산을 4조원가량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 사실을 거론하며 “이는 국회에서 확정된 예산이 아니라 당초 5% 성장률을 전제로 만든 정부 예산을 가지고 이야기한 것이라 적절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기획재정부의 실무 관계자들의 불만은 좀더 노골적이다. 기획재정부 예산총괄과 관계자의 말이다. “국회가 기본적으로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을 맡고 있으니 비판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예산정책처가 예산 분석 기능을 위해 출범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 그런 것인지 시간이 남아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세부 사업별 분석까지 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국책사업의 타당성과 문제점을 시시콜콜 지적하는 것이 내심 불편하다는 이야기였다.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에 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정부 예산안이 국회 심의를 거칠 때, 이 보고서가 국회의원의 ‘무기’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예산정책처 보고서 자체로는 어떠한 법적 효력도 없지만,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예산정책처 보고서를 근거로 질의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산정책처는 가깝게는 10월에도 ‘문제적’ 보고서를 냈다. 정부의 ‘부자 감세안’을 문제 삼는 내용이었다. 예산정책처는 10월26일 발표한 ‘2009년 세제개편안 분석’ 보고서에서 정부가 내년부터 시행을 예고하고 있는 소득세 세율 인하는 재정 건전성을 고려해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자 감세·슈퍼 추경 조목조목 꼬집어보고서가 주목한 소득세는 이른바 ‘부자 감세안’의 핵심이었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는 법인세와 소득세 세율을 2%포인트 내리는 감세안을 내놨다. 감세 규모는 2012년까지 5년간 26조4천억원에 달했다. 야당과 진보 진영이 강하게 반발했다. 재정 건전성을 해칠 우려가 있고, 감세 혜택은 일부 대기업과 고소득층에게 집중될 것이 분명했다.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는 이 가운데 소득세 부분은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놓은 것이다.
2009년 4월 당시 논란을 빚은 ‘슈퍼 추경’의 허구성을 조목조목 꼬집은 기관도 국회 예산정책처였다. 정부는 성장률 제고와 경기 활성화를 위해 당장 29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이 필요하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민주당 등 야당은 이를 깎아야 한다고 맞섰다.
이 상황에서 예산정책처는 ‘2009년도 추가경정 예산안 분석’ 보고서를 내 “해외 사례에서 보듯 재정 확대가 민간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성장의 저해 요인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재정으로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정부 주장대로 29조원 규모의 추경을 투입해 끌어올릴 수 있는 경제성장률은 0.8%포인트에 불과하다고 봤다. 정부의 전망치는 1.5%포인트 증가였다. 정부가 추경 효과를 두 배 가까이 부풀렸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날선 분석 보고서에 정부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반면, 여야 국회의원의 평가는 상대적으로 긍정적이다. 정부의 예산결산과 재정운용에 대한 분석을 예산정책처에 의뢰하는 국회의원도 점차 늘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은 올해 예산정책처에 예산결산 관련 조사·분석을 모두 55차례 의뢰했다. 같은 당 이성헌 의원과 신학용 민주당 의원은 47건을 맡겼다.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과 민주당의 천정배, 조영택 의원도 예산정책처를 자주 찾는 편이다.
신학용 민주당 의원은 “국회가 자체적으로 예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행정부의 예산권 남용을 적절히 견제할 수 있는 곳은 예산정책처”라 “최근 예산정책처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은 10월 말 국회 국정감사가 끝난 뒤, 예산정책처에 감사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의원은 편지에서 “과거 16대 국회 때는 국회에 예산정책처의 기능을 하는 기관이 없어서 모든 것을 혼자 준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며 “18대 국회에 들어와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예산정책처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여야로부터 두루 칭찬을 받는 이유는 우선 전문성 확보에 있다. 2004년 3월 설립될 당시 50명 수준이던 인력이 11월 현재 97명까지 늘어 차관급인 예산정책처장을 중심으로 예산분석실과 경제분석실 등 2실1국17개팀의 조직이 완성됐다. 경제학 및 행정학 박사급 인력이 이 가운데 36명으로 다수다. 공인회계사 출신도 2명이 활동 중이다. 나머지 인원도 대부분 입법고시 출신이거나 석사급 인력이다.
정치적 중립성 시비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사실도 예산정책처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정부 부처 관계자는 “예산정책처가 독립된 전문가 그룹이다 보니 오히려 비슷한 기능을 하는 국회 예산결산위원회보다 실무 협의가 까다로운 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쉽게 말해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산정책처의 정치적 중립성이 논란이 된 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누가 처장이 되느냐 하는 문제가 관건이었다. 국회법 제22조를 보면 “(국회 예산정책처) 처장은 국회의장이 국회운영위원회의 동의를 얻어 임면한다”고 돼 있다. 국회 동의를 얻는 절차가 있기는 하지만 처장 인사에 국회의장의 입김이 일정 부분 반영될 수밖에 없다.
‘정치 개입’ 전력 씻고 객관적 분석에 집중2004년 초대 예산정책처장을 지낸 최광 전 처장은 ‘정치 개입’ 논란을 빚어 면직 처리된 경우다. 김영삼 정부 때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최 전 처장은 2004년 한나라당 출신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임명했다. 여당은 민주당이었지만 국회 다수당은 한나라당이었다. 최 전 처장은 예산정책처장 자리에 있으면서 각종 강연 및 보수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반시장적이며 사회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최 전 처장 시절 예산정책처는 행정수도 이전 비용을 부풀려 계산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최 전 처장은 같은 해 11월 면직됐다.
예산정책처는 이후 ‘정치적 판단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예컨대 4대강 사업의 타당성과 예산 책정의 적정성은 분석할 수 있지만, 4대강 사업의 시행 여부를 직접 판단하거나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 예산정책처의 기본 입장이다. 송병철 국회 예산정책처 경제예산분석팀장은 “객관적 팩트에 근거해 개별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의견은 내지만 사업을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등의 판단은 할 수 없다”며 “정치적 선택과 판단은 정치의 영역일 뿐, 예산정책처는 분명한 분석과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는 역할에 그친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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