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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의 유지 ‘민주대연합’ 상록수로 부활할까

10월 재보선 ‘안산 상록을’ 야권 후보 난립 속 임종인 전 의원 출사표에 진보 정당들 지지 의사
등록 2009-09-04 14:49 수정 2020-05-03 04:25

가능할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대연합’을 유언으로 남겼다.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남북 평화를 지키기 위해 민주당을 포함한 야 4당과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유지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거 직전까지 ‘민주대연합‘을 강조했다. 야권과 시민사회에서도 민주대연합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8월27일 과거 재야에서 활동했던 인사가 주축이 된 ‘민주통합시민행동’(민주통합)이 발기인대회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 대회에 참석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와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등이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축사를 듣고 있다(왼쪽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거 직전까지 ‘민주대연합‘을 강조했다. 야권과 시민사회에서도 민주대연합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8월27일 과거 재야에서 활동했던 인사가 주축이 된 ‘민주통합시민행동’(민주통합)이 발기인대회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 대회에 참석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와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등이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축사를 듣고 있다(왼쪽부터).

재야 인사 중심 ‘민주통합’ 깃발 올려

민주대연합을 향한 대장정은 이미 시작됐다. 과거 재야에서 활동했던 인사가 중심이 된 ‘민주통합시민행동’(민주통합)이 깃발을 올렸다. 민주통합은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언인 민주대연합을 위해 출범한 조직이다. 이창복 전 의원과 이해동 목사, 최영도 전 민변 회장, 효림 스님 등 DJ와 인연이 깊은 인사들이 공동준비위원장을 맡았다. 정치권에서는 이해찬·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임채정 전 국회의장, 김근태·설훈·장영달 전 의원 등이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민주통합은 8월27일 발기인대회를 열고 “민주대연합의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징검다리를 건너 깃발 아래 모여야 할 핵심 주체는 민주당 등 야 4당이다. 정치권 외곽과 시민사회가 민주대연합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바람을 잡아도, 야 4당이 소극적이라면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오는 10월 재보선이 지니는 의미는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DJ 서거 이후 치러지게 될 첫 번째 선거인 10월28일 재보선에서 민주당 등 야권이 ‘반한나라당 연합전선’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민주대연합 전체의 성패와 맞닿아 있다.

8월28일 현재 국회의원 재선거 실시가 확정된 지역은 경남 양산과 강원 강릉, 경기 안산 상록을 등 세 곳이다. 9월30일까지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확정받는 지역구 국회의원이 생긴다면, 그 지역구도 10월 재선거에 추가된다.

재선거 지역으로 추가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은 경기 수원 장안이다. 이곳 박종희 한나라당 의원은 산악회 야유회에서 명함을 돌리고 향응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돼 서울고법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선고 공판이 9월10일로 예정돼 있다. 서울 금천도 안형환 한나라당 의원이 8월21일 항소심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으며 재선거 유력 지역으로 떠올랐다. 2심까지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문국현 창조한국당의 대표도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문 대표의 지역구는 서울 은평을이다.

재선거 확정 지역 가운데 민주대연합 논의와 맞물려 가장 주목을 끌게 될 지역은 경기 안산 상록을이다. 강원 강릉과 경남 양산은 전통적으로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인데다, 양산의 송인배 전 청와대 시민사회조정비서관을 제외하면 야권에서 내놓을 뚜렷한 후보가 아직 없다.

안산 상록을의 사정은 다르다. 수도권 유일의 재선거 지역이라는 상징성에다 17대 총선까지 민주당 계열 후보가 내리 세 차례 당선됐을 만큼 개혁 지향성이 강한 지역이어서 야권 후보가 넘치고 있다. 민주당에서만 김재목 지역위원장과 김영환 전 과학기술부 장관, 이영호 전 의원, 윤석규 전 청와대 행정관 등 4명이 이미 출마 의사를 밝혔다.

개혁성 내세워 시민단체와 연대 방침

여기에 임종인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최근 출사표를 던지며 민주대연합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무소속 상태인 임 전 의원의 출마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임 전 의원의 득표력이다. 17대 총선 당시 이곳에서 당선된 바 있는 임 전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15.4%의 지지를 얻었다. 수도권에 출마한 무소속 후보로는 적지 않은 표를 얻은 셈이다.

임 전 의원의 득표력보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출마를 둘러싼 진보 정당의 움직임이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등 진보 양당은 최근 안산 상록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독자 후보를 내는 대신 임 전 의원을 진보연합 후보로 밀기로 했다. 17대 국회에서도 여당인 열린우리당보다 민주노동당과 더 가깝다는 평가를 들었던 임 전 의원의 개혁성을 인정한 것이다.

진보신당은 노회찬 대표가 8월19일 트위터 네티즌과 가진 모임에서 임 전 의원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데 이어 26일 안산 지역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였다. 민주노동당에서는 아직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비슷한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의 핵심 당직자는 “임 전 의원에 대한 지지 여부는 9월19일 당 중앙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될 것”이라며 “지금까지 논의된 결과는 안산에서 무리하게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것과, 이 경우 진보개혁 진영의 후보와 연대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표현은 그렇게 하지만 결국 임 전 의원을 지지하겠다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10월28일 치러질 경기 안산 상록을 국회의원 재선거는 민주대연합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8월28일까지 출마 의사를 밝힌 야권 후보는 5명에 이른다. 왼쪽부터 김재목 민주당 상록을 지역위원장, 김영환 전 과학기술부 장관, 윤석규 전 청와대 행정관, 이영호·임종인 전 의원. 사진 왼쪽부터 연합,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한겨레 자료, 연합 조보희,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10월28일 치러질 경기 안산 상록을 국회의원 재선거는 민주대연합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8월28일까지 출마 의사를 밝힌 야권 후보는 5명에 이른다. 왼쪽부터 김재목 민주당 상록을 지역위원장, 김영환 전 과학기술부 장관, 윤석규 전 청와대 행정관, 이영호·임종인 전 의원. 사진 왼쪽부터 연합,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한겨레 자료, 연합 조보희,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임종인 전 의원은 진보 양당의 지지는 물론 창조한국당과 시민사회 세력의 지지도 함께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강조한 민주대연합의 ‘적자’는 자신이라는 것이 임 전 의원의 주장이다. 임 전 의원은 8월27일 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민주주의나 남북관계 문제와 달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자본시장통합법, 비정규직법 등 주요 사회경제적 이슈에서는 이명박 정부와 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도 서민경제 보호를 강조한 만큼 민주대연합은 ‘묻지마 반MB 연대’에 그칠 것이 아니라 서민경제에 대한 분명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10월 경기 안산 상록을 재선거가 임종인 전 의원이 그린 구도대로 치러진다면 민주대연합 논의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임 전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민주당 예비후보들도 저마다의 명분과 논리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김재목 안산 상록을 지역위원장은 정당정치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재선거 출마와 이에 앞선 공천 논의는 기본적으로 정당의 틀 속에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태도다. 김 위원장은 “임종인 전 의원이 민주당의 지지를 받아 재선거를 치르고자 한다면 조건 없이 당에 들어와 공천 경쟁을 하면 된다”며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에 고유의 정체성이 있는 것처럼 민주당에도 나름의 정체성이 있는데, 자신이 후보가 되기 위해 이런저런 논리를 갖다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각을 세웠다.

윤석규 전 청와대 행정관은 굳이 민주대연합 후보를 따진다면 정통성이 있는 쪽은 오히려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대연합이라면 시민사회 세력과 야권의 각 정파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후보를 말하는 것일 텐데, 이 모든 영역을 두루 거친 사람이 바로 나”라고 말했다. 윤 전 행정관은 1990년대까지 서울과 안산YMCA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했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청와대 시민사회국장을 지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 캠프 상황실장을 지내기도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안희정 전략공천 검토

민주당 지도부의 의중도 중요하다. 임종인 전 의원과 안산 상록을 재선거에 대한 민주당 지도부의 태도는 임 전 의원의 기대와 사뭇 다르다. 정세균 대표와 가까운 윤호중 수석사무부총장은 8월27일 “무소속 후보와 별개로 한나라당에 맞설 수 있는 경쟁력 있는 후보를 찾는 데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방침”이라며 “임 전 의원의 무소속 출마는 민주당의 공천 작업에 변수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임 전 의원의 출마와 관계없이 후보를 내겠다는 뜻이다.

임 전 의원의 출마를 바라보는 민주당 지도부의 시각이 냉랭한 것은 민주당과 임 전 의원의 ‘악연’ 때문이다. 과거 열린우리당 해체 당시 그가 지도부와 상의 없이 가장 먼저 탈당계를 제출하며 독자 행보를 걸었던 이력을 거론하는 사람이 민주당에는 아직 많다.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는 “임 전 의원이 개혁적이라는 사실은 높이 평가하지만, 정당의 일원으로 그가 보인 행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만지작거리는 ‘전략공천’ 카드도 민주대연합의 변수다. 정세균 대표 등 당내 주류의 의중은 안희정 최고위원을 전략공천 해야 한다는 쪽으로 모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는 “안산 상록을에 친노 후보를 내세워 당선시키는 것 자체가 민주대연합의 한 성과라고 볼 수 있다”며 “안 최고위원을 안산에 전략공천 한다면 당 외곽에서 신당 창당 분위기를 몰아가는 친노 신당 흐름을 일정 부분 제어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 논산에서 오랫동안 정치적 기반을 다져온 안희정 최고위원은 안산 상록을 출마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안 최고위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충남 논산) 지역위원장 자리를 버리고 명분이 없는 자리에 갈 생각은 없다”며 “내가 나가지 않으면 안 될 명분이 있지 않고서는 움직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정파의 예비후보들 출마 의욕

안산 상록을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 각기 다른 정파 및 계파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점도 ‘교통정리’ 과정에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우선 임종인 전 의원은 진보 진영을, 안희정 최고위원은 친노 그룹을 등에 업고 있다. 또 다른 민주당 예비후보인 김재목 지역위원장은 손학규 전 대표의 측근으로 꼽히는 반면, 윤석규 전 행정관은 당내 비주류인 천정배 의원과 가깝다. 15·16대 때 안산 상록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김영환 전 장관은 구민주계 출신이다.

더욱 묘한 것은 이들 대부분 지역에서 나름의 지지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8월11일 -모노리서치가 여야 후보군 8명을 놓고 실시한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야권에서는 김근태·김재목·안희정·임종인 등 4명의 대상자가 엇비슷한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12.3%, 김재목 위원장이 11.4%, 안희정 최고위원이 11.2%, 임종인 전 의원이 11.1%였다. 김영환 전 장관과 윤석규 전 행정관은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다만 김영환 전 장관은 민주당 후보 적합도를 묻는 조사에서 10.9%를 기록해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경쟁력을 나타냈다.

진보 양당의 지지를 업고 민주대연합 후보로 나서기를 희망하는 임종인 전 의원으로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닌 것이다. 임 전 의원은 “사회경제적 정책과 관련해 민주당과 생각이 달라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10월 재보선에서 확실하게 MB 정부를 심판하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이 이번에는 민주개혁 세력의 맏형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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