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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려다니는 민주당, 뾰족수 없나

‘반MB 대통합론’에 희망 걸지만 친노 신당 쪽선 “호남 기득권 포기부터” 시큰둥
등록 2009-07-16 15:12 수정 2020-05-03 04:25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과거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 본인을 가리켜 ‘복과 운이 따르는 복장(福將)·운장(運將)’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개인 기량으로 국면을 돌파하는 맹장·용장이라기보다는, 최악의 국면에서는 항상 주변에서 힘을 보태줘 승기를 잡아가는 스타일이라는 뜻이었다. 겸손의 표현이었지만, 정 대표 본인의 개성을 있는 그대로 소개한 말이기도 했다. 당 의장 때도 그는 권위와 무게 대신 수평적 리더십을 강조했다. ‘미스터 스마일’이란 별명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7월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취임 1주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7월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취임 1주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정 대표는 2008년 7월6일 다시 민주당 대표를 맡았다. 그사이 정권이 바뀌었고 세상도 달라졌다. 정치는 그에게 ‘야성’을 요구했다. 정 대표는 미스터 스마일이란 별명을 지우기 위해 언론사 카메라만 나타나면 굳은 표정을 지었다. 최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연 정 대표는 ‘침과대단’이라는 표현을 소개했다. ‘창을 베고 자며 아침을 기다린다’는 뜻이었다.

정 대표의 임기 전반기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평가는 엇갈린다. 대선과 총선 패배로 흔들리던 당의 기둥뿌리를 튼튼히 했다는 부분은 성과로 꼽힌다. 무엇보다 본인이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가장 오래 당 대표 자리를 지켰다. 그전까지 최장수 기록은 8개월간 버틴 김근태 전 의장이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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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지지율 도로 제자리로

4·29 재보선 승리도 일정 부분 정 대표 공이라는 평가다. 물론 민주당의 텃밭 호남을 정동영·신건 두 무소속 후보에게 내주기는 했지만, 수도권인 인천 부평 국회의원 재선거와 시흥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이겼다. 민주당이 최근 선거에서 약세를 보인 수도권 진입에 성공한 것은 의미 있는 대목이었다. 2008년 말 언론 관련법 등 ‘MB 악법’을 1차적으로 저지한 것도 정 대표 쪽에서는 성과로 꼽는다.

반면 민주당 스스로 국민적 기대를 끌어모으는 데 여전히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한계로 지적된다. 민주당 지지율은 2009년 초까지 1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잠시 급등하기도 했지만 최근 거의 제자리로 돌아왔다. 안부근 디오피니언 소장은 “대선을 중시하는 우리 국민의 특성상 정당 지지도는 인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뚜렷한 대권 주자가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반짝 지지율이 오래가기는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진보개혁 진영이 민주당과 정 대표에게 여전히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민주당의 전략 부재 탓이다. 소수 정당이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제1야당임에도 정국을 주도적으로 헤쳐나갈 만한 전략도 전술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답답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민주당은 하반기 정국의 주도권을 완전히 여권에 내줬다. 진정성 논란이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 강화와 친서민 행보는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이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에 대해 연일 공세를 퍼부었지만, 이는 오히려 이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주목도만 높여줬다. 청와대가 만든 ‘친서민 프레임’ 속에 민주당이 갇힌 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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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최근 민주세력 대통합론을 띄우며 제2창당에 버금가는 통합과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사회와 학계 인사 영입도 활발히 추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엄기영 문화방송 사장, 신경민 앵커 등이 영입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왼쪽부터) 한겨레 자료.

민주당이 최근 민주세력 대통합론을 띄우며 제2창당에 버금가는 통합과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사회와 학계 인사 영입도 활발히 추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엄기영 문화방송 사장, 신경민 앵커 등이 영입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왼쪽부터) 한겨레 자료.

전략 부재 탓 여당에 주도권 내줘

민주당은 국회에서도 한나라당에 끌려다녔다. 한나라당은 언론 관련법 강행 처리를 공공연히 주장하며 동시에 비정규직법도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비정규직법은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불가 방침을 거듭 나타냈고,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강행 처리에 대해서는 이견이 나왔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때그때 한나라당이 제기하는 쟁점 법안에 수세적으로 대응하기만 했다. 한나라당이 압박 수위를 높이자, 민주당이 국회 등원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이른바 5대 선결조건은 슬그머니 묻혔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민주당이 정국의 주요 변수로 기능하려면 스스로 정치 이슈를 개발해 띄워야 하는데, 여권이 제기하는 정책 이슈만 좇아가다 보니 민주당은 자연스레 ‘반대만 하는 야당’ 이미지에 갇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정세균 지도부가 지금의 수세적 국면을 반전시킬 카드로 모색하고 있는 것은 ‘반MB 민주세력 대통합론’이 거의 유일하다. 정 대표는 7월5일 기자간담회에서 MB 정부의 일방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민주개혁 진영의 연대와 통합을 강조했다. 제2창당에 버금가는 통합과 혁신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이를 위해 2010년 지방선거 이전까지는 시민사회와 친노 진영을 아우르는 대연합을 이뤄낸다는 복안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시민사회 진영의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언론계의 엄기영 문화방송 사장과 신경민 앵커, 학계에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유종일 전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등이 영입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명숙·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유시민·김두관 전 장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친노 인사도 연대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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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민주세력 대통합도 정 대표 구상대로 완성되기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우선 무소속 상태인 정동영 의원의 복당 문제가 걸림돌이다. 정세균 대표는 민주세력 대통합을 설명하며 정 의원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당내 중진 의원은 “민주세력 대통합을 이야기하면서 정동영 의원 복당 문제를 건너뛸 수는 없다고 본다”며 “친노 및 시민사회 진영과 연대하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되면 정 의원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노 신당 “올 안 창당 목표로”

민주세력 대통합이 쉽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상대가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손잡을 대상으로 보는 쪽에서 민주당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친노 신당’을 준비하는 쪽이 그렇다. 친노 신당 핵심 관계자는 7월9일 과의 인터뷰에서 창당 작업이 이미 본궤도에 올랐다고 주장했다. 이미 창당 발기인 모집도 거의 끝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아직 창당 로드맵이 합의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9월까지 창당준비위원회를 꾸려 연내 창당을 목표로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며 “내년 지방선거에서 가능한 한 많은 후보를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친노 신당 쪽에서는 창당 과정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민주세력 대통합론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인정했다. 친노 신당 관계자는 “민주세력 대통합 작업이 이번에 처음 시도되는 것이 아닌데, 영남에 근본적 신뢰를 줄 수 없었던 이유는 정작 민주당은 호남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친노 신당 쪽에서도 수도권에서는 민주당 등과 폭넓게 연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친노 신당 핵심 관계자는 “민주세력 대통합론이 아니라 대연합론이라면 검토해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수도권에서는 민주당 등 진보개혁 진영과 손잡을 수 있다. 하지만 영남과 호남 등 특정 정당이 독점한 지역에서의 선거연대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친노 신당과 별개로 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김두관 전 장관의 행보도 관심사다. 7월10일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까지 정치적 발언을 삼간 친노 인사들이 이후 어떤 발언을 내놓느냐에 따라 정세균 대표의 민주세력 대통합론의 진로도 결정될 전망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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