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에 ‘쇄신과 화합’ 논의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온다. 이명박계와 박근혜계의 갈등이 4월 재보선 참패를 불러왔다는 분석 탓이다. 쇄신과 화합이란 화두를 먼저 꺼낸 박희태 대표와 소장파는 물론 두 계파 의원들도 갈등을 치유해야 모두가 산다는 처방엔 공감하지만, 화합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여기는 이는 많지 않다. 특히 5월21일 치러질 원내대표 선거와 곧 매듭을 지어야 할 당협위원장(옛 지구당위원장) 임명 문제는 양쪽이 신뢰의 기반을 쌓을지, 아니면 메울 수 없을 지경으로 골이 깊어질지를 가르는 중대한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차기 원내대표 선거는 박희태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의 ‘추인’을 받아 내놓은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 카드를 박근혜 전 대표가 두 차례 거부하면서 복잡한 국면을 맞았다. 박희태 대표는 미국을 방문 중인 박 전 대표를 설득하려고 김효재 비서실장을 급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박 전 대표는 “당헌·당규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사전에 어떤 조율 시도도 하지 않았던 이명박 대통령을 향한 뿌리 깊은 불신이 더 근본적인 이유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명박계는 당장 “대통령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며 격앙됐다. 이명박계의 공성진 최고위원은 “대통령과 당 지도부가 ‘특사’까지 파견하면서 화합을 위해 애썼는데 이렇게 됐다. 이젠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부터 당-청 간 소통 능력을 의심하며 ‘김무성 원내대표론’을 반대했던 이명박계의 다른 의원은 “만약 김무성 원내대표를 선출한다 해도, 박 전 대표는 아예 ‘나와 무관한 일’이라며 선을 긋고 나설 것”이라며 ‘불가론’을 반복했다.
박 전 대표를 더 설득해야 한다는 게 아직은 전반적인 분위기지만, 당이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받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진다. 남경필 의원은 “사태의 원인은 청와대의 정치력 부족과 박 전 대표의 책임감 결여”라며 “(양쪽이 한발도 물러서지 않아) 대통령과 박 전 대표 모두가 지는 ‘루즈루즈 게임’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개혁 성향의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의 주장대로 김무성 의원이 추대가 아닌 경선에 나선다 해도, 이미 출마할 뜻을 밝힌 이명박계 안상수·정의화 의원과 ‘합리적인 노선 경쟁’이 아닌 ‘감정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경선 벌어지면 양쪽 감정 폭발 우려아직은 수면 아래에 있지만, 당협위원장 임명 문제는 계파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뇌관이다. 한나라당은 애초 4월12~30일 당원협의회별로 운영위원회를 열어 당협위원장을 선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친박연대나 친박 무소속 연대 소속으로 당선돼 한나라당에 복당한 의원들과 이명박계 원외 당협위원장 사이에 ‘교통정리’가 안 된 당협 18곳 때문에 재보선 이후로 논의를 미뤄둔 상태다.
당협위원장은 지역 조직관리 책임을 맡기 때문에 다음 총선에서 재기를 노리는 이명박계 원외 위원장들로선 박근혜계 쪽에 쉽게 내주기 어려운 자리다. 이명박계의 ‘공천 학살’로 억울하게 당에서 쫓겨났다고 여기는 박근혜계 의원들 처지에선 현역 의원이 당협위원장을 맡는 관행에 왜 제동이 걸려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두 진영은 내년 지방선거 공천에서 필연적으로 ‘지분 경쟁’을 벌여야 하기에, 기초의원 공천 등에 큰 영향을 주는 당협위원장 자리 문제는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명박계의 한 원외위원장은 “당헌·당규 어디에도 현역 의원이 당협위원장직을 맡는다는 규정이 없다. 지난 총선에서 공천을 준 데는 4년 동안 해당 지역의 당 책임자를 임명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근혜계의 한 재선 의원은 “친이-친박 갈등을 치유해야 한다고 떠들어봐야, 당협위원장 문제가 상식적으로 정리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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