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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대오 진보신당 탄력받을까

노회찬 단독체제의 미래에 관심 쏠려… 정책연대 통한 외연 확대 숙제로
등록 2009-04-10 14:32 수정 2020-05-03 04:25

진보신당의 선택은 ‘노회찬’이었다. 진보신당 대표직에 단독으로 출마한 노 대표는 3월29일 당대회에서 98%(6513표)의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었다. 정종권, 이용길, 박김영희, 윤난실 등 4명의 신임 부대표도 선출됐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지도 체제의 변화다. 그동안 5명의 공동대표제를 유지해왔던 진보신당은 노회찬 대표 선출과 함께 단일지도 체제로 전환했다. 노 대표는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 등 주요 당직자들에 대한 임면권을 갖는다. 전국위원회를 소집해 주재하는 권한도 행사할 수 있다. 김종철 진보신당 대변인은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에는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도 당원 투표로 선출했다”며 “진보신당이 명실상부한 단일지도 체제를 선택함으로써 당대표가 좀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진보신당이 3월29일 오후 서울 송파구민회관에서 열린 당대회를 통해 노회찬 전 의원(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을 단독대표로 선출했다. 노회찬 단일지도 체제에 대한 당 안팎의 평가는 일단 긍정적이다.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진보신당이 3월29일 오후 서울 송파구민회관에서 열린 당대회를 통해 노회찬 전 의원(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을 단독대표로 선출했다. 노회찬 단일지도 체제에 대한 당 안팎의 평가는 일단 긍정적이다.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집단지도 체제는 타협의 산물

노회찬 단일지도 체제에 대한 당 안팎의 평가는 일단 긍정적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주간(정치학 박사)은 집단지도 체제에 대해 “정파 간 갈등을 피하기 위한 타협의 산물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복수의 대표가 당을 함께 지휘한다는 사실은 곧 ‘진정한 대표’의 부재를 뜻한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진보 정당은 누구도 리더를 갖고 싶어하지 않았다. 정파 갈등이 권력 분점 형태로 나타난 것이 집단지도 체제다. 현실을 변화시켜야 할 진보 정당이 집단지도 체제를 고집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당 대표에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준 뒤,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건강한 조직이다. 단일대표 체제를 선택한 것은 늦게나마 잘된 일이다.”

노회찬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기대도 적지 않다. 노 대표는 ‘어록’을 가진 몇 안 되는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다. 노 대표의 어법은 단순한 언어유희에 그치지 않는다. 현실을 정확히 포착해 가장 적절한 비유를 구사하면서도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는 것이 그의 어법이 갖는 힘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2004년 4월 총선을 10여 일 앞두고 열린 한국방송 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선거가 가까워지고 있는데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직후였던 터라 각 당에서 나온 출연자의 신경은 예민했다. 지역주의에 이어 ‘이미지 정치’에 대한 공방에 이르자 출연진은 사회자의 통제를 벗어났다. 당시 김형오 한나라당 의원과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원, 박준영 민주당 선대본부장, 그리고 김학원 자민련 의원 등의 발언이 중구난방으로 이어졌다. 사회자가 절규했다. “잠시만요, 이렇게 다 말씀하시면 토론이 진행이 안 됩니다. 그만해주세요. 제 말씀 좀 들어보세요.” 상황을 정리한 것은 노 대표의 한마디였다. “밖에서는 국민들을 괴롭히더니 안에서는 사회자를 괴롭히십니까.”

노 대표의 언어는 진보 정치와 대중 사이에 놓인 심리적 장벽을 걷어내는 구실을 했다. 물론 말을 ‘너무’ 잘하는 사람에게 늘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그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말만 잘한다’ ‘말은 잘하는데 콘텐츠가 빈약하다’는 비판이다. 때로는 자신이 내뱉은 말의 함정에 갇힌 적도 있었다.

3월22일 진보신당 지도부가 ‘토건 상징의 망령과 삽질 운하의 집착’이 씻기기를 기원하며 청계천 물에 삽을 씻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종찬 기자

3월22일 진보신당 지도부가 ‘토건 상징의 망령과 삽질 운하의 집착’이 씻기기를 기원하며 청계천 물에 삽을 씻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종찬 기자

2004년 5월 민노당 사무총장 시절 노조를 상대로 강연하며 “최상의 품질” “30년 구독자” 등의 표현을 썼던 일은 적잖은 문제가 됐다. 민노당의 견해와 반대되는 위치에 있는 와 만나면서 당 지도부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노 대표는 당시 강연 이외에도 대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의 오찬, 미국 보수 진영의 싱크탱크라 할 수 있는 헤리티지재단 방문 등 ‘튀는 행보’를 거듭하며 불필요한 논란을 낳기도 했다.

진보신당의 한 당원협의회 위원장은 “노 대표가 그동안 탁월한 정치적 감각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당 전체를 책임지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노회찬 리더십’이 어떤 것이냐 하는 궁금증과 기대가 있다”며 “지금까지의 노회찬이 홀로 빛나는 존재였다면 이제는 당 전체를 빛내야 하는 위치에 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 대표 쪽에서는 그가 이미 2002∼2004년 민노당 사무총장을 맡아 당을 이끌며 리더십을 검증받았다고 강조했다. 오재영 대표 비서실장의 설명이다. “2004년 4월 총선 때 민노당이 원내 진출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2002년부터 일관된 전략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2002년 지방선거 때 지방의원 출마를 독려해 정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비례대표 지방의원을 배출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당시 노회찬 사무총장 등 지도부의 역할이 컸다. 내년 지방선거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진보신당이 단일지도 체제를 선택함으로써 분명한 청사진을 갖고 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본다.”

노회찬 대표의 첫 번째 과제는 4월 말 울산 북구 국회의원 재선거다. 울산에서 조승수 후보를 당선시키고 오는 10월 서울 은평을 재선거에서 한 석을 추가한 뒤 내년 지방선거에 승부를 건다는 것이 진보신당이 꿈꿀 수 있는 최상의 전략이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1차 관문은 울산 북구에서 조승수 후보를 진보 정당의 단일화 후보로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여론조사에서는 조승수 후보가 민노당의 김창현 후보를 앞서고 있지만 단일화 방식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예선’이 더 힘들 수도 있다. 심상정 전 대표의 출마가 거론되는 10월 은평을 재선거도 한나라당이 이재오 전 의원 카드를 뽑아든다면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제2창당 작업 큰 진전 없어

올해 재선거에서 2석을 확보하는 것과 함께 당의 외연 확대도 중요한 과제다. 진보신당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 제2창당 추진을 본격적으로 선언한 바 있다. 진보신당은 그때부터 민주노총과 이주노동자 노조, 전국빈민연합(전빈련) 등 대중조직은 물론 사회당, 노동자의 힘 등 진보 정치 세력과 연대를 모색해왔지만 아직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노회찬 대표는 4월1일 과의 인터뷰에서 제2창당 방식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제2창당 범주를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그동안 연대의 대상으로 여겼던 노동운동 부문이나 사회당 등과의 연대는 그대로 유지하되, ‘서민 복지동맹’ 등 정책 연대부터 시작할 것이다. 복지나 비정규직 문제, 사교육과 의료 시스템 문제 등에 관한 해법이 일치하는 세력끼리 정책 연대부터 시작해서 서로의 신뢰가 확인되면 정치 연합까지도 갈 수 있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아예 살림을 합치는 단계까지 갈 수도 있다.”

2009년 4월 울산 북구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진보·개혁 진영의 선거 연합은 ‘후보 단일화’라는 결과물로 나타났다. 울산 지역 노동자단체 등 시민사회의 단일화 압력이 밑거름이 됐다. 2009년 3월25일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가운데)과 후보 자리를 양보한 김창현 당시 민주노동당 후보(왼쪽)가 현대차노조 대의원대회장을 들러 지지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

2009년 4월 울산 북구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진보·개혁 진영의 선거 연합은 ‘후보 단일화’라는 결과물로 나타났다. 울산 지역 노동자단체 등 시민사회의 단일화 압력이 밑거름이 됐다. 2009년 3월25일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가운데)과 후보 자리를 양보한 김창현 당시 민주노동당 후보(왼쪽)가 현대차노조 대의원대회장을 들러 지지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

노 대표는 실제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 그동안 진보신당이 적극적 연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던 세력과도 상당 부분 논의가 진척됐다고 귀띔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을 지낸 최병모 변호사와 이상이 제주대 교수,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등이 주축이 된 지식인 모임이다.

노 대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주당과도 같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당 안에서도 비정규직 문제나 교육 문제에 대해 우리와 뜻을 같이하고 이를 가장 중요한 정치적 방향타로 생각하는 그룹이 있다면 손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진보 정당이 기성 정당과의 연대나 협력에 소극적이었던 과거 경험에 비춰보면, 노 대표의 발언은 대단히 전향적이다.

4월말 울산 재선거 첫 관문

진보신당이 제2창당 작업에 공들이는 이유는 그 성과가 내년 지방선거 결과를 좌우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진보신당의 기본 전략은 두 가지다. 16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최대한 선전하는 것과, 기초의원 선거에 100명 이상 출마해 50명 이상 당선시킨다는 목표다.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르려면 기존 당 조직만으로는 버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광역단체장 선거 가운데 노 대표가 거점으로 꼽는 지역은 서울과 경기, 부산이다. 서울은 이미 노 대표 본인의 출마가 확정적이고, 부산에는 2002년·2006년 두 번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김석준 부산시당위원장이 버티고 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심상정 전 대표의 이름이 여전히 거론되고 있다. 진보신당은 4월부터 광역단체장 후보를 내세워 인지도 상승을 꾀할 계획이다.

제2창당과 올해 치러질 두 차례의 재보선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만 있다면, 이는 대중으로부터 인정받은 노회찬 대표의 정치력이 진보신당에 굳게 뿌리를 내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시작은 4월 재보선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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