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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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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화 발목 잡은 ‘정파 패권주의’

민주노동당·진보신당 울산 북구 재선거, 조합원·비정규직·주민 비율 놓고 갈등
등록 2009-04-03 11:55 수정 2020-05-03 04:25

진보 정당을 두 조각 냈던 자주파와 평등파의 해묵은 ‘정파 패권주의’가 4월 울산 북구 재선거를 앞두고 민주노동당·진보신당 후보 단일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뢰’는 두 당의 지지 기반인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의 총투표(일종의 경선)와 비정규직 노동자 의견의 반영 비율이다.

민주노동당 강기갑(맨 오른쪽) 대표와 김창현(왼쪽에서 두번째) 후보, 진보신당 노회찬(맨 왼쪽) 대표, 조승수(왼쪽에서 세번째) 후보가 3월24일 울산 현대자동차 문화회관에서 두 당 후보 단일화 회담에 앞서 손을 모으고 있다. 사진 연합 이상현

민주노동당 강기갑(맨 오른쪽) 대표와 김창현(왼쪽에서 두번째) 후보, 진보신당 노회찬(맨 왼쪽) 대표, 조승수(왼쪽에서 세번째) 후보가 3월24일 울산 현대자동차 문화회관에서 두 당 후보 단일화 회담에 앞서 손을 모으고 있다. 사진 연합 이상현

의견 좁히지 못하고 김창현 후보만 등록

두 당은 3월24일 울산지역본부 조합원, 비정규직 노동자, 울산 북구 주민 등의 의사를 물어 김창현 민주노동당·조승수 진보신당 후보간 단일화를 이루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각각의 의사 반영 비율 등을 놓고 세 차례 실무 협상을 벌이고도 두 당은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울산지역본부는 ‘총투표 후보 등록 시한’을 3월26일 밤 12시로 못박은 터였다. 26일 오후 협상이 결렬되자, 울산지역본부는 두 후보를 불러 예정에 없던 회동을 이날 밤 11시40분터 1시간 가까이 진행했다. 하지만 끝내 양쪽은 의견을 좁히지 못했고, 김창현 후보만 27일 총투표 후보로 등록했다.

두 당이 최종적으로 내놓은 조합원과 비정규직, 북구 주민의 의사 반영 비율은 민주노동당 56 대 24 대 20, 진보신당 35 대 35 대 30이었다. 조합원과 비정규직 반영 비율은 김창현·조승수 후보가 각각 울산 지역 자주파와 평등파 조직을 ‘할거’하고 있다는 점과 맞물려 있다.

앞서 울산 전체 조합원 4만5천 명을 상대로 한 총투표를 하기로 결정되기까지 울산지역본부는 내부에서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자주파로 김창현 후보와 가까운 울산지역본부 지도부는 처음부터 “노동자 직접 참여 확대”를 주장하며 총투표를 요구했다. 하지만 하부 단위인 현대자동차 노조와 전교조, 공무원노조는 “울산 북구 후보를 결정하는 데 왜 울산 전체 조합원이 투표를 하느냐”며 반대했다. 이들 조직은 평등파로, 조승수 후보 지지세가 높다. 투표 참여 범위를 북구로 한정하면 이곳에서 구청장·국회의원을 지낸 조 후보에게 유리한 반면, 울산 전체로 넓히면 울산 동구를 중심으로 조직력이 높은 김 후보가 유리하다는 사정이 논란의 배경이었다.

비정규직 반영 비율도 마찬가지다. 울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반민주노총’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반영 비율이 높으면 민주노총에 기반한 민주노동당보다는 진보신당에 유리하다는 얘기다. 또 비정규직을 상대로는 자주파 특유의 조직 선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두 당은 날카롭게 맞설 수밖에 없는 셈이다.

‘분당의 상처’를 상기시켜 정파 갈등을 부추기는 발언도 쏟아졌다. 김창현 후보는 3월13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시대착오적인 종북주의 논란을 제기한 것에 대해 조 후보가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3월24일과 25일엔 잇따라 “진보 정당을 분열시킨 장본인이 다시 일어서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진보신당은 “후보 단일화 의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다. 민주노동당이 그토록 강조하는 진보 진영의 단결과 대의를 위해서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자주파와 평등파의 갈등이 또다시 심화되면서, 2000년 총선 때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점점 커진다. 당시 민주노동당 울산 북구 후보 경선에선 평등파 이상범 후보가 현대차 노조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어 유리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실제 당원 투표에선 자주파의 표 결집으로 최용규 후보가 승리했다. 현대차 노조와 민주노동당은 선거 결과를 놓고 내홍을 겪었고, 최용규 후보는 윤두환 한나라당 후보한테 500여 표 차이로 뒤져 민주노동당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2000년 총선 ‘분열 악몽’ 반복될라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후보 단일화 결렬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과거에 보였던 정파 패권주의의 연장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암울하다. ‘반이명박 전선’을 넓히고 내년 지방선거까지 바람을 일으키려면 이번 재선거가 중요하다면서 어떻게 누구도 조금 양보해 돌파구를 마련할 생각을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두 당은 지도부가 ‘정치적인 결단’만 한다면 얼마든지 단일화 논의를 재개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인다. 문제는 4월15일까지 팽팽한 양쪽의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느냐다. 4월14~15일 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석이 아쉬운 두 당은 ‘공동의 적’ 한나라당을 꺾을 뾰족수를 찾을 수 있을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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