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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386은 변절자들인가

등록 2008-04-25 00:00 수정 2020-05-03 04:25

김성식·김용태·신지호·정태근 등 운동권 출신 여당 당선자들, 그들이 ‘386’ 이름 앞에 손사래 치는 까닭은

▣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4월9일 치러진 18대 총선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386세력의 좌우 교체다. 통합민주당의 386세대 의원들은 무더기로 낙선한 반면, 한나라당에는 새로이 ‘우파 386’이 수혈됐다.

민주당의 허리를 이루고 있던 386 그룹의 퇴조는 드라마틱했다.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정치권으로 대거 흡수된 이들은 이번 선거에서 대부분 퇴장했다. 특히 1~3기 전대협 의장 출신인 이인영·오영식·임종석 의원이 줄줄이 낙선의 쓴맛을 봤다. 각 대학 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이기우(성균관대)·김태년(경희대)·우상호(연세대) 의원도 모두 재선에 실패했다. 386 출신 가운데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3선에 성공한 송영길 의원과 강기정·조정식·백원우·이광재·최재성 의원 정도다.

유신철폐 시위 주도, 골수 사회주의자…

이들의 빈자리는 우파 성향의 한나라당 386이 채웠다. 맏형 격인 김성식 당선인을 비롯해 강승규·권영진·권택기·김영우·김용태·신성범·신지호·정태근·조해진·진성호 당선인 등이다(표 참조).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1980년대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운동권’ 출신이다.

김성식 당선인이 대표적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인 그는 1978년 유신 철폐 시위를 주도하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1986년에는 이른바 ‘제헌의회(CA)파’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또 한 차례 옥고를 치렀다. 제헌의회파는 해방 이후 최초의 반국가단체로 불렸다. 이후 운동권에서 범PD(평등파) 계열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던 김 당선인은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등과 함께 민중당을 창당했다.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정태근 당선인 역시 옥살이를 한 운동권 출신이다. 김민석 전 민주당 의원과 고진화 의원, 허인회씨 등과 함께 삼민투에서 활동하던 정 당선인은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 사건으로 3년 가까이 복역했다. 김성식·정태근 당선인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젊은 피’를 경쟁적으로 영입할 때 원희룡·고진화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에 들어왔다.

연세대 경제학과 81학번인 신지호 당선인은 19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노련)을 거쳐 1991년 사회주의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로 발전한 노동운동 조직의 울산 지역 책임자를 지냈다. 노회찬 진보신당 의원, 조승수 전 민주노동당 의원 등과 함께 활동하며 골수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던 그는 1992년 공식적으로 ‘전향’했다. 지난해 말까지 한나라당 외곽 조직인 ‘자유주의연대’ 대표를 지내며 ‘이념투쟁’을 주도한 공로로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얻었다.

한국방송 기자 출신인 신성범 당선인도 1980년대 운동권 출신이다. 서울대 인류학과 82학번인 그는 학내의 이른바 ‘언더서클’이던 ‘대학문화연구회’(대문)에서 박종운씨 등과 함께 활동했다. 박종운씨는 서울대의 ‘언더짱’으로 불린 인물이며, 심상정 진보신당 의원과 김민석 전 의원, 고문사건으로 숨진 박종철씨 등이 대문 출신이다.

이번에 국회로 진출한 ‘우파 386’의 막내 그룹에 속하는 김용태 당선인은 민중당에서 활동했다.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김문수 경기지사,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 김성식 당선인 등이 당시 그와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민중당이 해산된 뒤에는 학교로 복귀해 서울대 경실련 대학생회를 이끌었다. 이번 서울 성동구을에서 당선된 김동성 당선인이 이 모임에서 김 당선인과 함께했다.

이 밖에도 고려대 대학원학생회장 출신인 권영진 당선인과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권택기 당선인 역시 나름의 학생운동 경력을 가진 인물들이다.

사실 정치권에서 쓰이는 386은 원래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를 일컫는 용어였다. 한때 ‘젊은 피’의 상징이던 386도 이제는 다들 40대 중·후반에 접어들었다. 엄밀히 따진다면 386은 철 지난 표현일지도 모른다.

“좌파 386 시대 끝” 선언한 보수 언론

우파 386으로 분류되는 당사자들부터 386이란 단어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 권택기 당선인은 “386이란 용어는 자기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활용됐던 세대 차별적 개념이었다”며 “그동안 386 출신이 선명성 투쟁을 통해 우리 사회를 분열 구도로 몰아갔다면 이제 우리는 세대 통합에 나서야 할 입장”이라고 말했다. 권영진 당선인 역시 “386이란 그 시대정신을 말하는 것일 뿐, 특정 세대나 정치적 실체를 가리키는 개념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며 “나이도 이제 다들 40대 중·후반이라 386이라고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신지호 당선인은 “한때는 386 출신이라는 사실을 정치적 훈장처럼 내세웠던 사람도 있었지만 민주화운동 경력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며 “386이란 용어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386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386이라는 이름표 앞에서 이들이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이유는 그동안 386 출신에게 덧씌워진 부정적 평가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4월9일 총선이 끝나자마자 몇몇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좌파 386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선언이 이어졌다.

“386 정치의 퇴조는 시대 흐름에 맞지 않아서다. 지난 4년간 이들의 정치 행태와 방식에 대한 거부와 반감의 결과다. ‘싸가지 없다’는 386식 언어는 낡은 정치를 깨는 파격으로 한때 받아들여졌다. 그런 어휘의 반복은 역겨움을 준다.”

4월12일치 기사의 한 대목이다. 부분적으로 일리 있는 지적이긴 하지만 감정이 실려 있다. 김대중 정부 이후 10년간 386세력에 대한 보수 세력의 비판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단적인 사례가 있다. 2000년 4·13 총선이 끝난 뒤 당시 새천년민주당 소속 386 정치인들이 광주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하필이면 그날이 5·18 전야였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보수 언론은 경쟁적으로 뭇매를 가했다. ‘용서받지 못할 386의 탈선’ ‘낮엔 참배 밤엔 술판-두 얼굴의 위선’ ‘위선자들-항의 빗발’ ‘386 도덕성 위기’ 등의 보도가 쏟아졌다. 물론 386 정치인들이 빌미를 제공한 것은 잘못이지만 이들에게 가해진 ‘도덕성 위기’ 등의 지적은 비약이었다는 반성이 이들 신문 내부에서도 제기됐다. 또 2004년 4·15 총선 직후에는 열린우리당의 386 의원 30여 명이 청와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을 불렀다는 사실이 문제로 지적됐다. 비판을 주도한 쪽은 역시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이었다.

이처럼 386 정치인들은 지난 10년간 ‘싸가지 없고’ ‘이념 과잉의’ ‘무능한’ 집단으로 끊임없이 매질을 당했다. 그렇다면 새로 등장한 우파 386은 어떤 지향을 갖고 정치권에 들어섰을까.

경제·실용 강조, ‘무능한 386’ 아니다?

이들은 좌파 386이 이념지향적 행태를 보였다면, 자신들은 경제발전과 민생현장을 강조하겠다고 다짐한다. 김용태 당선인은 “과거사를 청산하고 비리 사학을 바로잡겠다는 생각은 옳았지만, 머릿속 이념만 강조한 채 현실을 무시했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며 “누가 민생현장 중심에 있었는지가 좌파 386의 몰락과 우파 386의 등장을 설명하는 핵심”이라고 말했다. 권영진 당선인도 경제와 실용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은 일하는 국회, 서로 대화하고 타협하는 국회를 원하는데, 좌파 386은 철저히 투쟁하는 국회로 끌고 갔다”며 “경제나 실용 등 국민이 바라는 어젠다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들 사이에도 개인적 온도차는 있다. 김영우 당선자는 “참여정부가 사회발전을 이루겠다는 의욕은 많았지만 경험이나 현실적 준비는 충분하지 않았다”며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원리를 추구하더라도 서민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에 과거 386세력을 포함한 많은 이들과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이들이 한나라당 내 권력 지형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가 주목해볼 부분이다. 우파 386으로 지목되는 이 10여 명의 ‘젊은 피’는 거의 대부분 친이명박계에 속한다. 강승규·권택기·김영우·김용태·정태근·조해진 당선인은 이명박 정부를 만든 ‘안국포럼’ 초기 멤버들이다. 나머지 김성식·권영진·신지호·진성호 당선인도 대선 당시 선거대책위원회에서 핵심으로 활동했다. 이른바 ‘MB 직계’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한나라당 안에서 강력히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서울에서 당선된 이들은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친박근혜계와 사안에 따라 정면으로 맞붙을 가능성도 있다. 이 우파 386 내부에서는 벌써 “한나라당의 중심은 영남이 아니라 수도권”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총선 이후 친박 힘빼기의 선봉에 나선 모양새다.

안국포럼 멤버들은 이미 4월14일 당선 이후 첫 회동을 가졌다. 모임에 참석한 정태근 당선인은 “언론에서는 영남에서 친박이 득세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한나라당이 영남당을 탈피했다는 사실에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보고, 당내 화합은 물론 호남 등을 아우르는 국민 통합에 나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MB 직계 모임 등의 형식은 아니겠지만 현안에 대해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당의 변화를 요구하는 모습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파 386은 MB계”, “단순한 변절자들”

우파 386의 등장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다양하다. 한나라당 핵심 당직자는 “과거 386 정치인들이 가치를 중심으로 묶인 정치그룹이었다면 이른바 우파 386은 아직까지 MB계라는 인식이 강하다”면서도 “일단 복잡한 역학관계 속에서 계파 논리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우파 386 선배 그룹에 속하는 원희룡 의원은 “세대 교체는 자연의 법칙이기도 하지만 국민이 참신한 젊은 정치세력을 바란 것이 수도권에서 젊은 신인이 대거 당선한 배경”이라며 “자신들이 MB 정권을 만들었으니 그 권력도 곧 자기 것이라는 착각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백원우 민주당 의원은 “보수 진영에서는 ‘이념지향적인 좌파 386이 경제성장보다 과거청산에 매달려왔다’고 비판하지만 사회 운영 원리로서의 민주화는 여전히 중요하다”며 “우리가 정통 진보세력이라면 우파 386은 좌파에서 우파로 변절한, 혹은 전향한 정치세력일 따름”이라고 말했다.

우파 386이 됐든, 그냥 40대 중반의 초선 의원이 됐든, 이들은 자신과 함께 1980년대를 살아온 선배 386 정치인들에 이어 또 한 차례 ‘세대’로서 시험대에 올랐다. 엇갈리는 평가 속에서 스스로 어떤 정치적 세대로 자리매김할지는 이들의 정치력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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