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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경부운하 상관없이 한강 구상은 추진”

등록 2008-02-01 00:00 수정 2020-05-03 04:25

임기 3년차가 된 오세훈 서울시장… “일이 재미있을뿐 전임자는 의식하지 않는다”

▣ 진행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 정리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임기 3년차가 된 오세훈 서울시장은 요즘 걸음걸이가 달라졌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힘이 ‘빡’ 들어가 있다는 얘기다. 시청 공무원들은 직전 시장과 현 시장의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이명박 전 시장은 청계천과 교통체계라는 두 가지 목표에 올인하고 나머지 일들은 알아서 굴러가게 한 반면, 오 시장은 온갖 분야에 훨씬 더 많은 아이디어를 요구하고 벌인 일은 수시로 챙긴다는 것이다. 시장실에 471개 단위사업 추진상황도를 만들어놓고 점검할 정도다. 전임자의 ‘치적’을 의식해 일을 무리하게 벌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오 시장은 “지난 1년 반은 일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매진했고,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서 직원들이 바빠진 건 사실”이라며 “전임자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고 했다.

임기 한 번(4년)은 너무 짧고 두 번(8년)도 모자란다는 오 시장을 1월22일 오후 서울시청 3층 시장 접견실에서 만났다. 그는 간혹 질문을 넘겨짚었고, 말을 끊어야 다음 질문을 할 수 있었다. 할 일도, 할 말도 많아 보였다.

동대문 ‘흔적 복원’에 주목해달라

오전에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간담회 참석차 시청을 다녀갔다. 오 시장은 당선자와 ‘말이 잘 통하는 사람’으로 꼽힌다. 독자적 시정을 펼치는 데 부담은 없나.

=시정의 중심은 매력 있는 도시 만들기다. 투자, 관광, 살기에 매력적이려면 문화가 중심에 서야 한다. 정부와 같이 하면 시너지가 생기는 일들이 많다. 당선인이 서울시장을 했다는 백그라운드는 나로선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을 덜 수 있어, 일하기 좋은 조건이다.

2010년까지 관광객 1200만 명이 서울을 찾게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올 한 해 해외홍보비로만 400억원 이상이 책정됐다. 전년 대비 800% 증액됐다. 효과가 분명하지 않은데,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게 아닌가.

=광고홍보비 안 쓰고 관광객 수를 올리겠다는 것은 공부 하나도 안 한 학생이 일등 하겠다는 것과 같다. 〈CNN〉을 틀면 말레이시아로 오라는 광고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우리 광고를 본 적 있는가? 1200만은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 잡은 목표다. 가장 일자리 창출이 높은 것이 관광산업이다. 참모들이 우려스럽다고 했지만, 자신 있다. 무리한 수치를 세우지 않았다면 시청 전 실국이 이렇게까지 움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국 지인들이 오면 어디에 데려가고 싶은가?

=질문 의도를 알겠다. 준비도 안 됐는데 무슨 홍보냐 하는 얘기들도 있는데, 관광에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유럽의 통곡의 벽에 가면 정말 벽만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서울은 수도로 몇백 년이나 이어져왔다.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세일즈를 못했다. 한두 군데 손대는 게 아니라 스토리텔링과 어우러져 서울의 브랜드 이미지를 총체적으로 높일 계획이다.

동대문 운동장은 어느 곳보다 이야기가 많고 근현대사 공간의 기억이 분명한 곳이다. 최근 철거를 강행했다. 시장의 문화재 마인드에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다.

=‘흔적 복원’이라는 것이 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파크가 만들어지면 그 안에 스포츠인을 회상할 수 있는 곳이 생긴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추억을 되살리도록 공간이 배치된다. 원래 성곽이 있던 흔적까지 복원할 것이다. 이런 부분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극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리모델링해야 한다고 하는데, 시민들이 판단하리라 믿는다. 동대문 의류 봉제업도 밀라노 같은 고부가가치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결국 패션 디자인이다. 선택이 아닌 필수다. 도쿄라는 삭막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은 롯폰기를 생각해보라.

비용은 왜 애초보다 두 배로 뛰었나. 욕심을 부린 건가?

=정확히 1700억원이 늘었다. 스페이스 마케팅을 하려면 설계 단계부터 국제적인 이목을 끄는 게 좋겠다고 봤다. 국내외 공모를 해 선정된 것이 자하 하디드라는 여류 건축가의 설계였다. 보는 순간 ‘이거다’ 싶더라. 전세계 누구도 보지 못했던 형상을 보게 될 것이다. 공원을 걷다 보면 어느 틈에 건물 꼭대기에 올라와 있는 식이다. 시드니는 오페라하우스를 지은 것의 몇십 배를 뽑아먹었다. 1700억원 더 들어가는 게 배는 아프지만 아깝진 않다.

입 열게 하느라 같이 남산 가서 뛴다

일을 많이 벌이는데, 핵심 사업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직원들이 전보다 바빠졌다는 얘기는 하더라. 핵심 사업의 유무, 사업의 가짓수는 시민들의 별 관심사가 아닐 것이다. 4년이든 8년이든 퇴임 뒤 그 시장이 일을 많이 해서 시민들이 쾌적해졌다는 얘기를 들으면 행복할 것이다. 그걸 ‘창의시정’이란 말로 진행해왔다.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더 기분 좋을까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예산을 절감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1년 반을 투자했다. 솔직히 강제로 끌어왔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체내화되는 것이다.

내부 언로는 어떤가. 불만은 어떻게 듣나.

=매주 같이 뛴다. 공연 보고 호프 타임도 가졌지만, 나 혼자 원맨쇼 하다 끝나더라. 어떻게 하면 입을 열게 할까 궁리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실국별로 돌아가면서 남산에 가서 뛴다. 땀 흘린 뒤 한잔하면 솔직한 얘길 한다. 지난해 3% 퇴출제는 자극을 주려고 만든 제도인데, 조직 전체의 긴장, 시장에 대한 적대감 같은 게 있었다. 그런 얘기가 뛰고 나면 걸러지지 않고 바로 나온다. 그럼 나도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 내가 인사권을 행사하는 대상자만 1만5천 명이다. 직접 대화에 한계는 있지만 노력 중이다.

시장이 기침하면 멀리서는 감기몸살, 심하면 사망한다는 얘기가 있다. 산하기관에서 줄줄이 인원감축안이 나왔다.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는 10%, 20% 줄인다는 숫자도 나왔다.

=지하철 1~4호선을 관리하는 메트로는 1km당 75명이 근무한다. 5~8호선 관리하는 도시철도는 40명. 개통되는 9호선은 20명이다. 이 수치가 뭘 말하겠나. 적자는 결국 세금으로 보전한다. 물론 근무환경을 개선해줘야 하는 직원들도 있다. 그쪽에 예산을 더 주고 기능이 쇠퇴한 곳은 통폐합하는 게 경영이다. 메트로 인원감축안 발표는 시가 했기 때문에 따라간다가 아니라 공공혁신의 첫 단추를 꿴 것으로 본다.

임기가 정해져 있는데, ‘관리’보다는 혁파하고 뒤집는 데 몰두하는 건 아닌가. 오 시장이 떠나면 다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는 얘기도 있다.

=노조에서는 ‘인기몰이’라는 표현을 한다. 성과를 내려고 공무원을 희생시킨다고. 시장을 서울시 조직의 장이라고 생각하는 마인드다. 민선 시장은 시민의 대표다. 섭섭할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바람직한 일의 형태를 맛보는 것은 업무 추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 오세훈 시장이 한 달에 한 번씩 여는 창의발표회. ‘학습하는 조직 만들기’를 주제로 한 1월24일 발표회에서는 야생동물의 생태를 연구해 기린의 먹이를 높이 매달아주는 방식으로 동물과 관객의 만족도를 높였다는 사례를 발표한 서울대공원 동물기획과가 높은 점수를 얻어 200만원의 특별포상을 받았다. (사진/서울시청 제공)

이번주에도 창의발표회가 있다. 실·국·본부·사업소에서 아이디어를 내면, 시민평가단과 함께 평가한 뒤 포상도 하고 토론을 거쳐 정책으로도 채택한다. 1년 반 동안 4만7천 개의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처음 6개월간은 시장이 안 보인다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인사, 감사, 교육, 훈련, 승진 시스템을 바꾸는 데 골몰했다. 6급에서 5급으로 가는 게 공무원들에겐 가장 신난다. 어떻게 승진하나 보니 시험 과목이 민법총칙 이런 거다. 객관식 한두 문제로 등락이 갈린다. 21세기 창조산업으로 승부하는 때에, 서울시 고위 공무원이 되는 데 민법 한두 줄 얼마나 외우느냐로 가른다? 이런 걸 그동안에는 아무도 손대지 못했다. 전문 실력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되도록 했다. 액션, 러닝 과정을 2, 3배수로 해서 리더십을 판단하도록 했다. 이런 걸 후임자가 되돌릴 수 있을까?

쌍손 들어 환영한 건 아냐

오 시장은 녹색 넥타이를 매고 당선됐다. 경부운하 같은 논란이 뜨거운 주제에 대해, 대통령 인수위에서 얘기가 나오자마자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와 같이 가면 시너지가 있다’고 환영하는 태도를 보였다. 너무 앞서간 거 아닌가. 넥타이는 푼 건가.
=오해 없길 바란다. 당선인이나 인수위에서도 무조건 밀어붙이지 않고 1년 정도 찬반 양론을 다 들어보고 차근차근 하겠다고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서울시가 추진 중인 한강 르네상스는 본래 목표가 생태계를 되살리고 수상교통 등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한강 규모의 강 중에 한강만큼 활용이 안 된 강이 있을까? 그런데 우연히도 경부운하 사업이 된다면 한강 르네상스의 부가가치가 높아질 수 있겠다는 뜻이다.
한강 르네상스는 경부운하 계획이 엎어져도 진행되는 건가.
=전혀 상관없다. 한강 르네상스는 경부운하와 근본 출발점을 달리한다. 저활용했던 한강을 시민 생활의 중심에 둔다는 구상으로, 이용을 극대화하겠다는 거다.
경부운하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가.
=(잠깐 망설이며) 여러 인터뷰에서 받은 질문 중 제일 곤란한 질문이다. 난 기본적으로 자연은 잘 활용하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본다. 언제부턴가 자연을 그대로 놔두는 것만이 최대의 선이라는 주장이 전면에 나서게 됐는데 그게 능사는 아니다. 나도 경부운하가 꼭 최선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 하느냐에 달렸다. 취임 뒤 한 달도 안 돼 한강 르네상스 계획을 발표하니 환경단체에서 나를 ‘자칭 환경시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생태계를 복원한다 해도 개발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경제성을 따져서 합리적이고 해야 할 사업이라 해도 자연 파괴라고 몰아붙이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 경부운하도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토론과 검증을 거쳐 시행된다면 한강 구상과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는 취지다. 쌍손 들어 환영한 것은 아니다.
인수위에서 용적률 10% 일괄 상향 조정안을 발표한 일이 있다. 용적률은 시 소관이다. 오 시장은 뉴타운 4차 지정도 무기한 유보할 정도로 부동산 정책의 속도 조절을 해왔고, 디자인 가이드라인도 강조하는데,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인수위의 10% 상향 조정안은 최종 정리된 견해가 아니다. 용적률을 일괄적으로 올리는 것은 반대한다. 다만, 그걸 인센티브로 하는 것은 좋겠다. 1층에 영유아 보육시설이나 노인 전용 복지·문화센터를 넣는다든가 공원·도로·학교 등을 더 넣거나, 디자인이 뛰어나거나 신재생 에너지를 쓰는 건물 등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한 방법 아니겠는가. 그렇게 얘기하니 인수위에서 바로 이해하고 검토하겠다고 했다. 초과이익 환수 시스템도 철저히 지켜나갈 생각이다.
시청사 앞에서 재개발 지역민들이나 노점상들이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
=정책으로 하겠다. 일방적으로 단속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지레 겁먹고 비명을 지르는 면이 있다. 노점상도 시범거리를 만들었다. 보행자 불편, 난립·위생 문제 등을 해결하고, 도시 경쟁력과 이미지 등을 고려해 서울시의 표준 디자인으로 일정 금액의 점용료를 내고 장사하게 했다.

8년도 부족하다, 딴 맘 안 먹겠다

서울시장 자리를 대선의 발판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대선 욕심은?
=다음 시장 선거에는 반드시 나설 것이다. 창의시정이 안착되는 데 8년도 부족하다. 근본적 시스템의 변화를 이제 겨우 시작한 단계다. 그 외에 딴 맘은 안 먹고 있다.
전임 시장에 대한 부담은 정말 없나.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요만큼도 의식하지 않는다. 날 아끼는 사람일수록 ‘그런 건 당장 (성과가) 눈에 안 보이는데’ 하면서 전임 시장과 비교해 내가 하는 일을 걱정해준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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