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탄 ‘X파일’,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2탄… 위장전입·땅 거래·BBK 연루에 지지도 급락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게이트의 법칙’이란 게 있다. 게이트는 말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확산된다. 때론 진실이 아닌 경우에도 그렇다. 아니면 실제로 그런 일이 있어서다. 단지 가래로 막아야 할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호미로 막으려 들거나, 의혹을 부인하면서 내뱉는 말들이 새로운 의혹의 불씨가 된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한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가까이서 관찰하는 이들조차 도대체 의혹의 가짓수와 의혹의 시작과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하나가 나와 말끔하게 해소되기 전, 또 하나가 터져나온다.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한 의혹 하면, 지난해 말부터 숙명의 라이벌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쪽이 제기한 ‘검증’ 국면에서 비롯된 것으로 떠올리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이 전 시장이 박근혜, 고건 전 총리에 치여 3~4위를 달릴 때인 2004년 말, 2005년부터였다. 비로소 대선 주자로서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때다. 이명박 캠프의 기획본부장을 맡은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u>2005년 10월18일치 581호 표지 기사</u>에 글을 보내와 이 전 시장의 재산 형성과 병역 면제 의혹을 해명했다. 누구도 그런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적이 없었지만, 정 의원은 ‘이명박이 왜 대통령감인지 독자에게 설명해달라’는 원고 요청에, 몇 가지 의혹에 대한 해명으로 좁은 지면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2005년 캠프에서 보낸 ‘의혹 해명 원고’
정 의원이 글을 쓰기 전부터 이른바 ‘이명박 X파일’이 인터넷과 사람들의 입을 통해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장사꾼 출신인 이명박한테 누가 도덕성을 요구하겠냐?”며 그를 둘러싼 웬만한 의혹들은 그에게 ‘결정타’가 될 수 없다는 결론으로 모아졌다. 온갖 의혹들이 난무하긴 했지만, 어느 것 하나 구체적 근거로 뒷받침되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를 공론화하는 이들도 없었다.
상황이 달라졌다. 모두가 공개적으로 ‘이명박 X파일’을 얘기한다. X파일은 이제 종합일간지 지면과 공중파를 타고 있다. 박근혜,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노회찬도 없는 X파일이 왜 이명박에게만 있는 걸까? 그가 1등으로서 지나치게 견제를 받기 때문에 생겨난 음해와 음모의 결정체에 불과한 걸까? 아니면 그가 가장 부패가 심하다는 ‘건설업체의 사장 → 여의도 정치인 → 여의도 사업가 → 서울시장’을 거치면서 따라붙은 혹일까? 어느덧 잊혀지긴 했지만 지난 3월 의혹다운 의혹이 처음 공식적으로 제기됐다. 이 전 시장이 여의도 정치인 시절에 비서관을 지낸 김유찬씨와 한나라당 사람인 정인봉 변호사가 입을 뗐다. 이 전 시장은 90년대 국회의원 선거 및 선거법 위반 수사 당시 저지른 범인 도피(법원에서 사실로 확정됨) 혐의 등으로 다시 곤욕을 치렀다.
선거법 위반을 둘러싼 의혹들이 이명박 X파일 1탄이었다면, 2탄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그가 건설업체 사장이었을 때 있었던 ‘위장 전입’(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 제기), 충북 옥천 땅 거래 의혹( 제기)과 여의도에서 금융사업가로 변신했을 때 같이 사업을 벌였다가 금융 사기범으로 미국에서 체포된 김경준씨와의 연루 의혹이다. 위장 전입과 옥천 땅 거래 의혹은 기존 이명박 X파일엔 없던 새로운 내용의 증보판이다.
1탄도 그렇지만 2탄도 과거 말밖에 없던 의혹들이 실체적 근거와 함께 제기되기 시작했다. 위장 전입 의혹처럼, 이 전 시장이 공개적으로 나서 벌써 사과한 것들도 있다. 최근 이 전 시장과 관련된 의혹들에 대한 이 전 시장 쪽 해명과, 그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들은 이렇다.
의결권 명기된 약관은 위조다?
“BBK 건에 관해서도 저는 그 회사의 주식 한 주도 가져본 일이 없습니다. 이미 그 사항은 금융감독위원회나 검찰에서 범인 김경준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고, 김경준씨 본인도 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회사란 것을 진술한 바 있습니다.”(2007년 6월7일 이명박 기자회견)
이명박 X파일 2탄의 핵심은 BBK 관련 의혹이다. 정확히 말하면 옵셔널벤처스 주가 조작 사건 및 횡령 사건이다. 내용은 복잡하다. 의혹의 뼈대는 이 전 시장이 김경준씨가 옵셔널벤처스의 주가를 조작하고 회삿돈을 빼돌린 것과 관련이 있는지 여부다. 김씨는 현재 한국 법무부의 요청으로 미국에서 ‘범죄인 인도 청구’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전 시장의 주장은 관계가 단절된 이후 일어난 김씨의 불법 행위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이고, 의혹 제기자들은 관련이 있다는 증거들을 내놓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송영길·박영선 의원은 6월11일 대정부 질의에서, 김현미·김영주 의원은 6월2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김경준씨의 미국 법정 기록 등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이 전 시장에 대한 의혹들을 제기했다. 한나라당 예비후보 경선에 열린우리당이 뛰어든 새로운 모양새다. 이명박 캠프의 반박과 해명 이후 김경준에 대한 수사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된 김영주 의원의 보도자료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을 잘 정리해놨다.
① MB가 LKe뱅크(LK는 이명박과 김경준의 영문 이니셜) 공동 대표이사 재임 시절, LKe뱅크 계좌가 BBK 주가 조작에 총 44회에 걸쳐 동원된 사실.
② 김경준이 미국으로 도피하기 전 횡령한 옵셔널벤처스 회삿돈 384억원을 10개의 개인 및 법인 계좌로 송금하는데, 184억원을 BBK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기업으로서 MB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부기공(현 다스·MB의 큰형과 처남이 대주주), 심텍(MB의 대학 동문), 오리엔스(MB의 대학 동문)에 송금.
이러한 근거들로 김영주 의원은 “옵셔널벤처스 주가 조작 및 횡령 사건과 이명박 후보가 무관하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보도자료의 제목을 뽑았다. 는 이명박 전 시장이 심텍이 자신의 재산에 대한 가압류에 들어가자, 김경준씨에게 친필 서명이 들어간 문서를 통해 대응 방안을 알려달라고 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또 그가 문제가 된 BBK의 의결권을 갖는다는 약관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 전 시장 쪽은 김경준씨가 위조된 약관을 금감원에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김현미 의원은 BBK, LKe뱅크, LKe증권중개 등 세 회사의 정관 20조 2항에 똑같이 이명박 전 시장이 의결권을 행사한다고 나와 있다는 증거를 추가로 제시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열린우리당이 제시한 자료 입수의 불법성을 지적했지만, 박영선 의원은 미국에서 진행 중인 재판의 기록은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캠프는 의혹 제기 초기엔 약관이 위조됐다고 하는 등 각론에서 대응했으나, 이젠 총론에서 대응할 뿐이다. 이명박 캠프의 은진수 법률지원단장은 과의 통화에서 “검찰과 금융감독원이 이명박은 관련이 없다고 밝히지 않았냐?”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주가 조작 사건은 끝나지 않은, ‘기소 중지’ 상태로 살아 있다. 송영길 의원은 검찰이 이 전 시장을 소환 조사조차 안 했다면서, 검찰과 금감원의 조사가 부실하다고 주장한다. 은진수 단장은 “아무리 1등 후보라지만 객관적 증거를 갖고 검증을 해야지, 할 만큼 했으면 이제 그만해라”고 말했다.
“숨겨놓은 땅은 한 평도 없다”더니
위장 전입 의혹은 비교적 간단한 사안이다. 6월12일 김혁규 의원이 위장 전입 의혹을 제기하자, 이 전 시장 쪽은 24차례 주소 이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위장 전입 의혹은 부인했다. 장광근 이명박 캠프 대변인은 “김 의원이 입증 자료를 내지 못하면 법적·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도 본인이 직접 나서서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변해 헛소리를 한다”고 김 의원을 비난했다. 하지만 5차례의 위장 전입이 있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이 전 시장은 “자녀 교육 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공소시효가 지나긴 했지만 명백한 주민등록법 위반이었다. 서혜석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사립초등학교는 주소지와 상관 없이 추첨을 통해 입학이 결정된다”며 “이 전 시장의 해명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투기 의혹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
부동산과 관련한 의혹은 덩어리가 크다. 이 전 시장은 충북 옥천군의 임야 37만5천여 평을 77년에 매입해 1년7개월 뒤 그의 처남 김재정(58)씨한테 넘긴다. 옥천 땅은 박정희 정권 시절 행정수도 후보지였다. 이 전 시장 쪽은 주민들의 요구로 땅을 샀고, 농협에서 대출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 전 시장이 마을을 관광지로 만든다고 해서 팔았고, 농협엔 이 전 시장의 이름으로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다. “땅 한 평도 남의 이름으로 숨겨놓은 것이 없다”는 게 이 전 시장의 해명이지만, 처남과의 땅 거래는 의심스럽다. 그는 서울 양재동의 지하 1층, 지상 5층짜리 건물이 들어선 땅과 빌딩도 94년 처남과 자신의 형이 대주주로 있는 대부기공(현 다스)에 넘겼다. 부동산 의혹과 관련해 처남이 중심에 등장하지만, 이 전 시장 쪽은 당 검증위원회가 처남 재산의 공개를 요구하자 프라이버시라며 거부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는 의혹들은 ‘도덕성에 대한 기대치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이 전 시장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히고 있다. 지지율이 흔들리고 있다. 40%대의 지지율은 30%대로 내려왔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6월2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37.8%를 기록해 박근혜(26.1%) 전 대표와의 지지율 격차가 11.7%포인트로 줄어들었다. 5월 같은 조사에선 이 전 시장이 26.5%포인트를 앞섰다.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에선 올 들어 처음으로 박 전 대표에 역전당했다. 지지 후보 변경의 이유로 응답자들의 49.9%는 ‘도덕성’을 꼽았다. 한귀영 KSOI 연구실장은 “6월 들어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한 의혹 폭로 건수도 많을 뿐만 아니라 앞뒤 맥락을 갖는 사실관계들 속에서 검증 의혹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 전 시장의 도덕성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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