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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호남에서도 깨지는가

등록 2006-05-12 00:00 수정 2020-05-03 04:24

4억원 사과상자와 공천 잡음 속에 “안됐다”에서 “못됐다”로 민심 반전… 아직은 후보 지지도에서 앞서지만 5·31선거 압승까지 기대하긴 힘들 듯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호남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열린우리당은 한두 달 전만 해도 광주·전남 지역에 대한 기대를 갖지 않았다. 정당지지도나 5·31 지방선거 예비후보자들의 지지도에서 대체로 민주당에 밀렸다. “열린우리당이 미운 만큼 민주당이 불쌍하다는 정서가 컸다.”(강기정 열린우리당 의원) 광주·전남은 민주당의 분명한 텃밭으로 비쳐졌다. 민주당이 광주·전남의 판세에서 8대 2로 앞선다는 분석이 많았다.

당 지지율, 열린우리당에 뒤집어지다

하지만 조금씩 변화가 감지됐다. 지난 4월20일 민주당 조재환 사무총장이 최락도 전 의원에게서 전북 김제시장 공천 청탁과 함께 4억원이 든 사과상자를 받은 것이 지역사회에 큰 파문을 불러왔다. 열린우리당의 분당 이후 ‘안됐다’는 동정심은 ‘못됐다’는 비도덕성에 대한 비판으로 희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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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끊이지 않는 공천 잡음은 불신을 가중시켰다. 법원까지 간 광주 북구청장 재공천 해프닝과 광주시 구의원 공천 탈락자가 시당위원장을 폭행한 것을 비롯해 공천 뒤 폭력사태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지난 3월에는 도의원 공천에서 탈락한 전 화순군의원이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는 엽기적인 행태를 보여 주민들을 경악게 했다. 공천 탈락자와 불복자의 탈당이 줄을 이었다.

강기정 의원은 “예전엔 민주당을 욕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지만 최근엔 아주 많아졌다. 다 사과상자와 엉터리 공천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상도에서 한나라당 간판만 달면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듯 광주·전남에서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인식이 공천 비리와 과열, 혼탁을 불러온 것이다.

변화는 여론조사에서도 읽힌다. 몇 달 새 민주당에 5~7% 뒤지던 열린우리당의 정당지지도가 최근 광주 지역에서 1~9% 앞섰다. 이은상 열린우리당 조직기획국 부국장은 “광주시 구청장 5곳 가운데 3곳, 전남 시장 및 군수 22곳 가운데 10곳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전남의 절반은 열린우리당 몫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아직까지 열린우리당의 후보 지지율이 당 지지율을 따라가지 못하는 편이다. 또 당 지지율의 변화에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호남에서 엎치락뒤치락한 경우가 있었지만 원래 두 정당 간에 지지율의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후보 지지도인데, 인물면에서 민주당이 특히 전남을 중심으로 앞서는 곳이 더 많다”고 말했다.

어쨌든 민주당 안에서조차 난관에 부딪혔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장상 민주당 선대위원장은 “전반적으로 승기를 잡고 있지만 두 가지로 타격을 입었다”며 “민주당이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하니 출마자들의 경쟁이 너무 뜨겁고, 조재환씨 사건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민주당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 인사들은 악재의 영향을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대세에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은 “바닥 민심은 여전히 민주당이 앞선다”며 “광주시장뿐 아니라 구청장 5곳에서 압승하고, 전남의 22개 기초단체장 가운데 많아야 기껏 8개나 내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민주당의 악재를 놓고 풀이가 다른 것은 이번 5·31 지방선거가 호남 지역에서 대선을 앞두고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유선호 열린우리당 의원은 “호남의 유권자들은 민주당으로 내년에 대선을 치를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정치의식이 높은 이들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략적 선택을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호남에서 열린우리당이 이기거나 최소한 반분하면 열린우리당 중심으로 통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점쳤다. 강기정 의원도 “호남에서 민주당 갖고 (대선에서) 뭣하겠냐는 정서가 많다”고 거들었다. 정권을 창출할 힘이 모자란 민주당 대신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선택할 것이라는 얘기다.

내년 대선, 유권자에게 또 다른 변수

물론 민주당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참여정부의 국정 지지도가 30%대에 불과하고 여권 후보들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를 맴도는 상황에서 열린우리당 중심으로 뭉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열린우리당도 호남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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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민주당은 방어하는 처지다. 악재도 악재지만 현실적으로 압승을 기대할 수 없다. 공천 비리와 파문이 표심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조마조마한 상황이다. 만에 하나 광주·전남에서 절반 이하의 수확을 거둔다면 정당의 생존 자체가 버거울 수 있다. 20억원이 넘는 밀린 당사 임대료를 내지 못할 형편일 만큼 물리적인 생존환경은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져 있다. 자칫 광주·전남의 ‘자민련’으로 추락할 수 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호남 지역에서의 주도권도 쥘 수 없다. 뜻하지 않게 정계 개편의 물살에 휩쓸려들어갈 수도 있다. 장상 위원장은 “이번이 민주당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호남민들이 ‘미워도 다시 한 번’ 민주당에 표를 던져주지 않겠냐”고 희망을 걸었다. 열린우리당보다 민주당이 더욱 절실한 것을 보여주는 말이다. 민주당엔 생존이 달렸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반사이익 부푼 꿈

지역활동 성과와 3인·4인 선거구제로 호남에서 정당득표율 20% 기대

민주당의 주춤거림은 호남 지역, 특히 광주에서 열린우리당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에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에 등을 돌린 표심의 일부가 대안으로 민주노동당을 찾으면서 적잖은 반사효과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은 광주에서 2002년보다 훨씬 나은 성적표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하정호(35) 민주노동당 광주시 선거대책본부장은 “처음에 민주당 공천 파동의 수혜자가 열린우리당이라고 생각했는데 민주노동당 쪽으로도 상당히 오는 것 같다. 나이 든 분들이 모여 ‘민주당은 더러워서 안 되겠다’고 얘기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사이익 외에도 민주노동당이 지난 4년 동안 지역에서 꾸준한 신뢰와 기반을 다진 것이 기대를 키웠다. 지난 5월1일 코리아리서치에서 발표한 광주의 당 지지율은 15.2%로 전국 평균(12.7%)보다 높게 나왔다. 울산과 인천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전국적으로 보면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과 원내 활동의 영향이 가장 크다. 지역적으로는 지난해 11월 쌀 협상 비준안의 국회 통과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이후 농민들의 반발이 농촌지역의 농민회를 중심으로 민주노동당 당원 가입으로 이어졌고, 최근 노동자가 많은 광산구에서 당원이 중심이 된 미군기지 이전 운동 등도 큰 호응을 얻었다.
몸집도 커졌다. 광주 지역 당원은 2002년보다 4배가 늘어난 3120명에 이른다. 한 선거구에서 득표 수에 따라 4명의 지방의원을 뽑는 4인 선거구가 세 곳, 3인 선거구가 아홉 곳에 이른다는 점도 군소정당인 민주노동당에 유리한 틀이다. 과거에 비해 여러 가지 나아진 조건 속에서 지방선거 후보자도 3배가 늘어난 33명이 나온다. 2002년 광역 비례의원으로 선출돼 시민단체 등에서 ‘의정활동 1위’ 평가를 받은 윤난실 시의원이 서구에 출마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등 많게는 10명의 광역시, 기초 시·군·구 의원의 당선을 점치고 있다. 정당득표율도 약 20%가 목표치다. 5·31을 계기로 광주가 호남의 ‘울산’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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