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 이후 ‘정치적 감각’뛰어난 인물로 물갈이된 여야의 정책연구소들
정책 연구개발은 뒷전, 현행 정당법 취지와 맞지 않아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지난 6월20일 열린우리당 부설 열린정책연구원장의 이·취임식이 열렸다. 지난해 8월부터 열린정책연구원장을 맡은 박명광 의원이 10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바통은 4선 중진의 임채정 의원에게 넘겨졌다. 바로 사흘 뒤 한나라당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윤건영 여의도연구소장은 취임한 지 불과 5개월여 만에 자리를 내놨다.
연구실이 비서실인가?
정치권은 지난해 3월 정치자금법을 개정해 국고 보조금의 30%를 정책연구소에 쓰도록 아예 못박아놨다. 현재 열린정책연구원에 36억원, 여의도연구소에 34억원의 나랏돈이 지원되고 있다. 정책 개발과 연구활동을 촉진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소의 디자이너 격인 소장이 자주 바뀌는데다 운영 원칙과 방향도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다.
박명광 열린정책연구원장과 윤건영 여의도연구소장이 밀려난 것은 똑같이 4·30 재보궐 선거 여파다. 한나라당에서 소동이 더 컸다. 여의도연구소에서 만든 ‘4·30 국회의원 재선거 지역별 심층분석’이란 문건이 언론에 유출되면서 한나라당의 사조직 동원 논란이 정치권에 불붙었다. 포화는 여의도연구소에 집중됐다. 연구소장단은 쫓겨나듯 사퇴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먼저 나서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혁신해야 한다” “정책 개발에만 치중하라”고 여의도연구소를 나무랐다. 선거 분석이 연구소 본연의 임무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대표가 직접 밝힌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은 대표 자신에게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 대표는 역대 1~2년의 소장 임기를 통해 안정적으로 운영돼온 여의도연구소의 ‘관례’를 깨고 지난해 8월 취임한 박세일 전 의원을 올 1월에 갑작스레 정책위의장으로 옮겨 배치했다. 그리고 다시 윤건영 소장 체제를 6개월 만에 바꿨다. 연구소가 본연의 임무에만 매달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들이다.
박 대표는 또 지난 5월 이회창 전 총재의 정치특보를 지낸 이병기씨를 연구소의 고문으로, 최구식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이진규씨를 연구소의 기획실장으로 임명했다. 당내에서는 이를 놓고 “대표가 연구소 구조를 본인의 대권 플랜을 위한 구조로 짜고 활용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4·30 심층분석 문건이 생성된 것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다는 지적이 많다. 당 지도부가 학자 출신으로 정치적 감각이 부족한 윤 의원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윤 소장과 이병기 고문의 사이가 틀어진 것도 여의도연구소가 정책 개발에 집중할 수 없는 안팎의 환경이다.
여의도연구소의 개혁 방안도 논란거리다. 김무성 사무총장은 “왜 연구소가 한나라당에서 독립돼야 하느냐, (연구소의) 독자적 운영 운운하는 당내 일부의 목소리는 크게 잘못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박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연구소 ‘혁신’ 방향이 당 정책위원회와의 연관성을 강화하는 방향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도연구소장과 정책위원장의 겸직설이 흘러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내 소장개혁파 등의 생각은 다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여의도연구소를 당으로부터 제대로 독립시키고 위상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철현 의원실의 김성현 보좌관은 “대표가 말하는 개혁과 우리의 개혁은 다르다. 연구소를 정책위와 붙이려는 것은 연구소를 비서실화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에버트·헤리티지재단을 꿈꾸지만…
열린우리당은 여의도연구소의 위상을 약화하려는 한나라당의 움직임과 정반대다. 열린정책연구원장은 비례대표 초선에서 초·중량급 중진의원으로 바뀌었다. 박명광 원장이 교체된 것은 열린우리당의 4·30 참패의 희생양인 탓이 크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선거에서 전략·전술 부재의 책임이 중앙당 전략기획실에서 중앙당 조직국으로 번지다가 만만한 정책연구원으로 튄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정책연구원이 최근 참여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면서 박명광 원장이 당 안팎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것도 한 원인이다. 특히 학자 출신으로 정치감각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4·30 패인과 맞물리면서 박명광 원장의 입지를 약화시켰다.
열린우리당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정책연구원이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기획을 맡아줬으면 하는 눈치다. 문희상 당의장이 “정책연구원은 당의 정체성과 중장기적 정책도 연구하지만, 상황에 따른 전략적 대응도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변화시키려는 정책연구소의 모습은 자칫 국고 지원의 취지와 맞지 않는 방향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 두 당은 정책연구소와 당과의 유기적 관계 보강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만큼 당으로부터 연구소의 독립성은 약화하는 것이다. 이는 “정책의 개발ㆍ연구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중앙당에 별도 법인으로 정책연구소를 설치ㆍ운영해야 한다”라고 규정한 현행 정당법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독일의 친사민당 성향의 에버트재단이나 미국의 공화당 성향의 헤리티지재단을 각각 꿈꾸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바람은 먼 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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