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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개혁으로 색깔 내겠다

등록 2005-01-19 00:00 수정 2020-05-03 04:24

김근태 장관 ‘서열파괴 인사’로 강수… 부서 내부 낡은 관행 없애며 대선주자 이미지 노려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차관과 기획관리실장이 ‘조직을 급격하게 변화시키면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너무 당황한다’고 말해 이 정도로 인사를 했지만 나는 솔직히 성에 차지 않는다. 6개월 뒤 정확히 평가해 다시 인사를 하겠다. 여기에 머무르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

‘보통’ 평가에 충격

지난 1월11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보건복지부 국장급 간부 10여명을 불러놓고 강한 어조로 혁신과 분발을 촉구했다. ‘서열파괴 인사’에 대한 내부 불만과 동요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도 높은 개혁을 예고하는 ‘강수’를 둔 것이다. 김 장관은 이날 보건복지부 안에서 요직으로 꼽히는 국민연금보험국장, 국민연금심의관 등 주요 보직에 행정고시 26기 출신들을 전면 배치했다. 보건복지부 안에서 행정고시 22기 몫으로 분류됐던 자리인데, 단번에 4단계나 뛰어넘는 파격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김 장관은 통상 보직이 바뀌면 1년 정도 임기를 보장하는 관례에 얽매이지 않고 6개월 뒤 전면적인 재평가를 하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강경했다.

신임 과장들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도 강성 발언은 이어졌다. “그동안 별로 평가받지 못했던 국세청, 조달청 등이 거듭나고 있는데 우리는 도대체 뭐하는 것이냐. 일 안 하는 사람, 나태한 사람은 분발하라. 6개월 뒤 인사에서 다 반영하겠다.”

김 장관의 이런 모습에 대해 측근들조차 “다른 사람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 수준에서 온건하게 의사를 표명해온 김 장관의 지금까지의 모습과 180도 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김 장관이 참여정부 초반 검찰 개혁 수단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활용했던 ‘서열파괴 인사’를 뒤늦게 보건복지부에 적용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공무원에 대한 인사 조치’를 경고한 까닭은 무엇일까.

일단 보건복지부 내부의 낡은 관행이 공무원의 자발성으로 바뀔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했다는 게 중론이다.

김 장관은 지난해 7월1일 취임식에서 ‘인간을 위한 성장’ ‘따뜻한 성장’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하는 새로운 시스템 설계”를 부르짖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조직과 인사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나 수술은 가하지 않고, 간부들의 난상토론 등을 통한 자발적 변화에 주력했다. 국민적 관심사인 국민연금제도 개선과 관련해서도 보건복지부 관료들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변화하지 않았고, 지난해 12월24일 발표된 ‘2004년도 정부업무 평가’에서 정부기관들 가운데 중간 수준인 ‘보통’으로 평가됐다. 과거보다는 좀 향상된 성적이라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김 장관은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동안 하위권에 머물렀던 건교부, 조달청, 국세청 등이 자기 혁신을 통해 ‘우수’ 부서로 급상승했는데, 보건복지부는 겨우 몇 단계 상승에 안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데 분개했다는 것이다.

김 장관과 가까운 인사는 “보건복지부의 경우 한 부서에서 10여년 이상 근무하는 게 일반화돼 조직 내부의 경쟁이 거의 없고, 오히려 부서간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다. 인사 때마다 능력보다는 행시 기수 중심의 인사가 관행처럼 굳어져 특정 기수가 요직을 차지하는 일이 계속됐다”면서 “누군가 이를 깨줘야 한다고 판단한 김 장관이 작심하고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각축을 벌이는 잠재적 대권주자인 김 장관이 보건복지부 개혁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직접 평가받는 ‘정면 승부수’를 꺼내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 장관은 지난해 12월29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각계 전문가 150명을 상대로 한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여전히 정동영 장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등에 견줘 부진했다. 김 장관은 이런 대중성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지난해 한반도재단 등 외곽 조직 확대, 열린우리당 안 재야파와의 지속적인 호흡, 미국 하버드대 총장의 한국 비하 발언 공개 비판(2004년 7월11),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항의 서한 전달(2004년 8월15일), 국민연금 소신 발언(2004년 11월19일) 등 일련의 독자 행보를 거듭해왔다. 하지만 여권 안에서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한 ‘외도’로 비쳐졌고, “김 장관이 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레임덕을 부추기려 한다”는 의심까지 받는 등 역풍에 직면했다. 김 장관에게 보건복지부 개혁과 혁신을 통해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일을 통한 제 색깔 내기’를 통해 승부를 볼 수밖에 없는 객관적 조건들이 형성된 셈이다.

김 장관쪽도 이런 분석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핵심 측근 인사는 “보건복지부 장관에 취임한 지난 6개월 동안은 전임자들이 확정해놓은 2004년도 업무 보고서에 근거해 일을 수행하다 보니 김 장관의 진면목을 보일 기회가 없었다”면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제 색깔을 내고 움직일 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올 한해 보건복지부 관련 영역에서 공세적인 사업을 진행하고 그 성과로 정당하게 평가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부 전문가와 함께 사업 계획

김 장관은 이미 보건복지 관련 분야 개혁을 통한 위상 제고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김 장관은 보건복지 관련 학계·시민사회단체·기업 전문가 34명을 모아 ‘국민과의 계약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김미혜 교수(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김정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이상이 건강보험연구센터소장·고병희 교수(경희대 한의대) 등 보건의료, 사회복지,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망라됐다.

김 장관은 이들을 복지, 사회보험, 평가홍보, 혁신 등 4개 분과로 나눈 뒤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입안한 2005년 주요 사업 계획을 토론·평가해 수정 보완하는 과제를 맡겼다. 김 장관은 이들의 평가 결과를 토대로 올 한해 복지부의 역점 추진 과제를 최종 확정해 1월 말께 ‘대국민 보고대회’ 형식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사실상 외부 인사와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공동으로 2005년 한해 동안 보건복지부의 주요 업무와 사업계획을 수립한 뒤 국민들에게 공약하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김 장관의 측근은 “보건복지부가 과거보다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중간치에 불과하다”면서 “국민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청렴도, 개혁성을 주무장관으로 책임지고 달성하겠다는 대국민 다짐을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개혁을 통한 김 장관의 색깔 내기가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튀는 장관’으로 찍혀 입지가 더 좁아질지, 국민들에게 개혁성과 지도력을 인정받는 강력한 대권주자로 자리잡을 것인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김근태의 친구들’이 나선다

김근태 장관이 ‘일을 통한 제 색깔 내기’에 나선 가운데 온라인 공간에서 김근태 장관을 둘러싼 오해와 억측을 해소하고 김 장관의 약점인 대중성을 강화해 ‘김근태 대통령’을 만들겠다고 나선 네티즌들이 있어 관심을 끈다. ‘김근태의 친구들’이 바로 그들이다.
2004년 11월13일에 발족한 이 단체는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재 ‘홍보대사’ ‘여우’ ‘평론가’ ‘김작가’ ‘푯대를 찾아서’ 등의 필명을 사용하는 열성 네티즌 50여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는 수준이다. 간사는 필명 ‘작대기’인 이경선씨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37살의 사무직 여성이다.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회원으로 가입했지만, 아직 내로라 하는 유명인은 없다.
이경선씨는 “노사모와 정치권에는 김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레임덕을 부추긴다는 오해가 존재하고, 김 장관이 인터뷰나 온라인 편지 등을 통해 아무리 진정성을 설명해도 듣지 않은 채 ‘노무현과 대립적 존재’로 몰아세우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일단 이런 가슴 아픈 현실을 바꾸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1월8일 내부 토론을 통해 온라인 공간에서 김 장관 관련 데이터베이스 구축, 개혁성 홍보, 김 장관 홈페이지 개선 작업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하는 등 본격적인 지원활동에 나서는 모습이다.
‘김근태의 친구들’은 2002년 대선 당시 ‘노풍’을 점화시킨 노사모처럼 온라인 공간을 통해 김 장관 대세론을 형성하고, ‘김근태 돌풍’을 일으킬 전초기지로의 발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는 분위기다. 이씨는 “아직 체계화되지 못했지만 김 장관에 대한 마음만은 뜨거운 사람들”이라며 “노사모나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처럼 온라인 공간에서 사안별로 대응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조직을 만드는 게 희망”이라고 말했다.
최근 회원들 사이에서 인터넷 공간에 ‘맛있는 GT방송국’을 개국해 지지자들 사이에 전국적인 거미줄 네트워크를 만드는 방안이 제안되는 등 활동폭이 점차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 장관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들을 주요 지지 단체로 설정하고, 1월8일 이들이 주최한 신년 하례식에 부인 인재근씨와 함께 참여하는 등 나름의 정성과 관심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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