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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과 PD, 이게 얼마만이냐!

등록 2004-05-28 00:00 수정 2020-05-03 04:23

자주파와 평등파가 당의 진로 놓고 세대결 벌이는 민주노동당 전당대회 감상법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민주노동당이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경선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당원들 직선으로 대표와 최고위원 9명,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등 모두 12명을 뽑게 되는 이번 경선에 36명의 후보가 뛰고 있다. 5월24~27일 투표를 실시해 28일 개표결과를 공표하며 29일에 전당대회를 연다.

정책위의장 선거를 주목하라

은 지도부 경선 가운데 정책위의장 선거에 초점을 맞춰 ‘민주노동당 읽어내기’를 시도했다. 하필 정책위의장 경선을 택한 데는 나름의 까닭이 있다. 우선 대표 경선은 김혜경 당 부대표, 정윤광 전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 김용환 평당원 등 세 사람이 출마했는데 초반부터 특정 후보쪽으로 세가 쏠려 싱거웠다. 최고위원 선거는 여성 4명, 일반 3명, 노동 1명, 농민 1명을 부문별로 나눠뽑고 출마자도 많아, 독자들에게 쟁점을 간명하게 전달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반면에 정책위의장은 10명의 국회의원단에 대한 ‘정책 사령탑’ 구실을 하게 되는데다, 이번 경선에서의 정책대결 양상을 찾기도 상대적으로 쉬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의장 경선에는 주대환(50·마산합포지구당위원장), 허영구(48·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성두현(46·전 진보정당추진위 정책위원장)씨 등 3명의 평등파(범좌파 또는 범PD 계열 등으로 불리기도 함) 성향 후보가 뛰었다. 또 자주파(전국연합 또는 범NL 계열로 불리기도 함) 성향 후보로는 이용대(49·전 민중연대 공동집행위원장)씨 한 사람이 나섰다. 외견상 4파전이지만 크게 볼 때 민주노동당의 양대 정파인 평등파와 자주파(물론 자주파도 평등을 중시하되 상대적으로 민족자주의 가치를 강조함)간 경쟁구도가 정책위의장 경선에서도 나타난 셈이다.

경선 레이스는 이들 가운데서도 주대환·이용대 후보의 맞대결 양상으로 진행됐다. 나머지 두 후보가 판세에서 뒤졌다기보다는 적어도 외견상 주·이 두 후보를 중심으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다.

첫째로, 두 후보는 당의 조직노선을 놓고 뚜렷한 의견 차이를 보였다.

주 후보는 “당이 지금까지는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활동을 자주 하다 보니 정당인지 사회단체인지 잘 구별되지 않았다”며 “이제 국회의원도 배출한 만큼 민주노동당의 독자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민사회단체, 노조, 농민단체의 주장도 100% 대변하기보다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목이 없는지를 당 차원에서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노동계급 중심성’ 또는 ‘이념적 순수성’을 좀더 강조하는 1980년대 PD 운동권의 논리와 맞닿은 것으로 해석됐다.

반면에 이 후보는 “각계각층 시민사회단체와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며 “민주노동당은 특정한 계급계층만의 당이 아니라 전체 민중을 대변하는 당이 되어야 집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민주노동당의 당원을 늘려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기층 민중과의 연대를 강화해 민중 당원을 늘리되 중간층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노동계급도 중시하되, 지지기반의 외연을 넓히는 데 무게를 두는 것으로 읽혔다.

외국자본과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두 번째로, 계급 문제와 민족 문제 가운데 어느 쪽을 우선적 해결과제로 보느냐에 대한 시각차도 나타났다.

외국자본의 기업 인수·합병 시도에 맞서 재벌의 경영권 방어장치를 마련해줄 것이냐를 두고 주 후보는 “재벌 총수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어떤 조처를 해줄 필요는 없다”며 “정부가 몇년 전 대우자동차를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국 자본에 매각했던 터에 다시 보호조처를 하는 것도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자본에 국적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논쟁에서 주 후보는 ‘자본에는 국적 없음’ ‘노동자가 토종자본·외국자본을 가리고 말고 할 이유가 없음’ 쪽에 선 것이다.

반면에 이 후보는 “궁극적으로 재벌 해체로 가야 하며 부분적으로 해체가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며 “그러나 외국자본이 국가 기간산업까지 잠식하는 등 경제 침략을 막아내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계층간 평등 문제와 함께 자주적인 민족경제도 중시하는 뜻으로 해석됐다.

세 번째로, 북한 문제를 둘러싼 견해 차이도 확인됐다.

주 후보는 북핵 문제의 책임 소재와 관련해 “북한과 미국, 모두가 잘못이라는 양비론을 취할 수밖에 없다”며 “북한이 경제를 살리기 위한 협상도구로 핵을 움켜쥐는 것이라면, 왜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실질적인 문제 해결의 장으로 나오지 않는지 안타깝다”고 북한의 의도에 불신을 표시했다.

반면에 이 후보는 “북핵 문제는 미국이 북한을 포위해 압박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양비론은 결국 미국을 편들어주는 결과를 낳고, 미국이 북한을 공격해 전쟁을 일으키도록 부추기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미국에 좀더 강한 경계심을 표시했다.

이런 논쟁 양상은 민주노동당이 서로 다른 이념 성향의 두 정파가 ‘한 지붕 두 가족’으로 동거하는 데 따른 필연적 결과로 보였다. 이번 전당대회 역시 평등파와 자주파라는 두 정파가 당의 진로를 놓고 다투는 총론적 세대결의 무대였다.

그러나 17대 총선 결과 제3당으로 도약함에 따라 높아진 기대에 다소 못 미치는 면모도 경선과정에서 나타났다.

구체적인 정책보다 원론 논쟁 한계

5월12일 열린 의장후보 토론회에서 주 후보는 이 후보에게 “민주노동당이 남한 체제는 가혹하게 비판하면서 왜 북한 인권 문제 등에는 관대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며 “조선노동당과 민주노동당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따져물었다. 이에 이 후보는 “민주노동당은 민주노동당이며 조선노동당은 조선노동당으로 서로 다르다”며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색깔공세를 펴고 나올 줄 몰랐다”고 반박했다.

주 후보는 “지역구 활동을 하다보면 민주노동당과 조선노동당의 관계가 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며 문제제기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그의 설명에선 “색깔 의심받기를 떨쳐버리기 위해 북한 때리기를 하는 게 아니냐?”라는 의문이 남았다.

정책사령탑을 뽑는 경선임에도, 평등과 자주라는 총론적 이념논쟁에 머무는 한계점도 드러났다. 이를테면 부유세나 무상교육·무상의료와 같이 총선 때 관심을 끌었던 대국민 공약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이냐에 관한 열띤 논쟁이 기대됐지만 실제 양상은 그렇지 못했다.

심지어 이용대 후보는 “지금까진 정보가 없어 구체적인 분야별 정책을 세우지 못했지만 이제 원내 진출에 성공했으니 우리 사회의 비리·기득권 구조에 관한 고급 정보를 얻게 됐다”며 “이에 기초해 깜짝 놀랄 혁신적 대책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선 즉시 의원단에 정책을 공급해야 할 정책사령탑 후보라고 보기엔 ‘순진’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당 기관지인 의 이광호 편집위원장은 “좀더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둘러싼 논쟁으로 발전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한 현실이 우리가 봐도 안타깝다”며 “아직 당의 역량이 부족한 탓이며, 기관지 차원에서도 세부적 정책대결을 유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낀다”고 자성했다.

제3당 도약 뒤 지도부를 전면 교체한다는 매우 큰 의미가 담겼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선은 신문·방송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총선 직후 각 언론사가 출입기자를 대거 증원해 당선자 소개, 독특한 정치문화 등 다양한 기사를 쏟아냈던 것과 비교해도 뜻밖이다. 이와 관련해 민노당 출입기자들은 “경선 판에 이슈를 선도할 스타가 없다. 논쟁도 딱딱하고 원론적이다. 기자로선 독자가 알기 쉽게전달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흥행 요소가 너무 적다”고 말했다.

권영길 대표, 노회찬 사무총장, 단병호·심상정 당선자 등 그동안 인지도를 쌓은 인사들이 당직·공직 겸직 금지 당규에 따라 발이 묶인 것도 관심에서 멀어진 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진정한 대중정당으로 발전하려면 몇몇 의원에게 의존하지 말아야…”라는 명분도 일리가 있지만, 현실과의 괴리감 역시 확인된 셈이다.

그래도 전당대회에 거는 당원들의 기대는 상당하다. 각 진영 지지자들이 중앙당 인터넷 당원게시판을 통해 열띤 논쟁을 벌이는 것도 다른 정당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어쨌든 민주노동당의 또 다른 실험과 고민이 이번 전당대회에 응축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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