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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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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갈라져도 결방은 없다

라디오 연설에 강한 집착 가진 MB, 주제 결정에서 최종 첨삭까지 주도
등록 2009-03-26 17:26 수정 2020-05-03 04:25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월9일 라디오 정례 연설 를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기내에서 녹음했다. 일주일 동안 이어진 빡빡한 순방 일정 탓에 평소에도 약한 목이 쉬고 갈라지자 참모들은 “이번 한 번은 그냥 쉬는 게 어떻겠느냐”고 건의했지만, 이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라디오 연설은 국민과 한 약속”이라는 게 이유였다. 이 대통령은 지금까지 10차례 전파를 탄 라디오 정례 연설을 임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하고 싶어한다고 청와대 참모들은 입을 모은다. 대체 라디오 연설의 어떤 점이 이 대통령을 사로잡은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월8일 인도네시아 등 3개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라디오 연설을 녹음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월8일 인도네시아 등 3개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라디오 연설을 녹음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박형준·김두우 등 4명이 담당

박선규 청와대 언론2비서관은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을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의미 있는 창으로 인식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의 말은 언론의 필요에 따라 발췌되기 때문에 원래 중점적으로 하려 했던 말과 다른 내용이 강조돼 오해를 사기도 한다. 하지만 라디오 연설은 8분~8분30초 동안 여과 없이 대통령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연설문 작성 과정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주연’이다. 초반엔 정정길 대통령실장, 이동관 대변인 등도 연설문 작성 과정에 개입했지만, 이 대통령이 이를 복잡하게 여겨 박형준 홍보기획관, 정용화 연설기록비서관, 김두우 정무기획비서관, 박선규 언론2비서관 등 4명으로 연설문 작성 진용을 정리했다고 한다.

연설문 주제는 정용화 비서관과 박형준 홍보기획관이 상의해 몇 가지를 정한다. 최종적으로 주제를 결정하는 사람은 물론 이 대통령이다. 정용화 비서관은 이를 바탕으로 초고를 쓴다. 정 비서관은 대통령이 참석하는 모든 공식 행사에 배석하기 때문에, 이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을 누구 못지않게 잘 아는 이로 꼽힌다. 박형준 홍보기획관과 김두우 비서관, 박선규 비서관은 이 초고를 보면서 머리를 맞대고 ‘첨삭’을 한다. 이렇게 마련된 원고를 이 대통령은 받아 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더하거나 뺀다. 5차 연설 때 언급한 과일 장사를 하던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나 “하루에 열 번도 넘게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중학생 이야기, 국회 폭력 사태를 비판한 6차 연설 때 “회의실 문을 부수는 해머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때리고 제 머리와 가슴을 때리는 것같이 아팠다”고 한 발언 등은 모두 이 대통령이 구술해 연설에 포함된 내용이다. 즉, 라디오 연설문은 이 대통령의 머릿속 지도와 다름없다는 얘기다.

청와대 밖 평가는 여전히 싸늘

청와대는 “라디오 연설이 대통령의 생각과 현장·정책을 이어주는 고리 구실을 하고 있다. 대통령이 딱딱하고 엄격한 불도저 이미지가 강한데, 라디오 연설을 통해 대통령의 마음을 알게 됐다는 사람도 많다”고 연설의 효과를 평가했다. 청와대는 대학교수, 방송작가, 기업인, 기자 등 10여 명으로 구성된 비공식 자문그룹을 통해 연설에 대한 국민의 반응을 확인한다.

하지만 청와대 밖의 평가는 여전히 싸늘하다. 누리꾼들은 “말로만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연설문을 비꼬거나 “인터넷 시대에 라디오 연설이 웬 말이냐”며 비아냥댄다. 야당의 시각도 곱지 않다. 노영민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3월9일 논평에서 “라디오 연설이 10회째에 이르렀지만 야당의 반론권 행사는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김종철 진보신당 대변인은 “‘남 탓 대통령’ 이미지만 강화하는 연설이다. 정부 정책을 이해하지 못해 반대한다는데, 그런 연설은 국민이 정부를 더욱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한나라당 안에서도 “관심 없다.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온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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