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통일쌀 벼베기’에 참석한 시민들이 손수 벤 벼를 들고 환히 웃고 있다.
길은 막히고 끊겼다. 한반도 중앙을 관통하는 3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달리면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네거리에서 멈춘다. 그 너머는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이다. 그 안으로 금강산로와 평화로가 이어지며 북녘을 향한다. 길목에는 철원군청사 터, 강원도립철원의원, 철원공립보통학교 터, 얼음창고 등 허물어져가는 건물과 빛바랜 표지판만이 옛 도시의 영광과 아픔을 전하고 있다.
휴전선에서 2~3㎞가량 떨어진 평화로 끝자락에는 한반도 모양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주변 논둑 위로 한반도기가 펄럭이는 이곳은 철원읍 내포리 ‘통일쌀 경작지’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2002년 식량난을 겪던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해 통일쌀 보내기 운동을 시작했고, 2007년부터 통일쌀 경작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2025년에는 전국 8개 시도 30여 곳에서 통일모를 심었다.
가을 문턱에 들어선 2025년 9월28일, 노랗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 평화의 들판에서 ‘통일쌀 벼베기’ 행사가 열렸다. 철원군농민회와 전농 강원도연맹,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국경선평화학교 등의 단체에서 80여 명이 참여했다. 고려대 교환학생으로 온 독일 튀빙겐대학 학생들도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2024년에는 약 400평(1300㎡) 규모의 논에서 80㎏짜리 8가마 분량의 쌀을 수확했다. 북쪽 지원이 어려워지자, 2023년에는 거둔 쌀을 팔아 얻은 수익금을 일본 도쿄의 한 조선학교에 후원했다. 통일쌀 보내기는 이명박 정부 이후 어려움을 겪다 2010년 지원을 끝으로 중단됐다.
“심을 때는 무장 군인들의 삼엄한 경계와 확성기 기계음이 밤낮으로 울려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고 위재호 철원군농민회 회장은 인사말에서 전했다. 그는 “전쟁터가 됐을지도 모를 이곳에서 우리는 지난봄 평화의 씨앗을 뿌렸고, 이제 통일의 열매를 맺었다”며 “통일의 열망을 되새기며 벼를 베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궂은 날씨에도 참가자들은 흰색과 파란색, 노란색 등의 비옷을 입고 낫을 들었다. 장화 신은 발이 진흙에 빠져도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흥을 돋웠다. 장대비가 내려 30여 분 만에 벼베기를 마친 참석자들은 근처 국경선평화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농민들의 도움을 받아 새끼꼬기를 하고 간이 훌태를 이용해 벼훑기를 체험했다. 한국학을 전공하는 튀빙겐대학 학생 엘리아나 레이(20)는 “독일도 분단과 통일을 겪었기에 여기 사람들의 통일에 대한 희망이 더욱 공감된다”며 “처음 해본 새끼꼬기도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끝으로 참가자들은 “한반도 통일 기원합니다” “통일세상 평화세상, 민족통일 가족통일” “기후위기 극복, 탄소중립 달성” 등의 문구를 리본에 적었다. 직접 꼰 새끼줄에 리본을 매달고, 둥그렇게 모여 손잡고 ‘우리의 소원’을 부르며 2026년 봄 모내기 때 다시 만나길 약속했다.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안 평화로. 통일쌀 경작지를 알리는 커다란 한반도 모양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통일쌀 벼베기에 함께한 일부 참석자가 춤추며 흥을 돋우고 있다.

독일 튀빙겐대학 학생들이 직접 꼰 새끼줄을 잡아당겨보고 있다.

한 참석자가 훌태로 벼훑기를 하고 있다. 빗처럼 생긴 틈에 벼를 얇게 펴서 쭉 당기면 알곡이 떨어진다.

참석자들이 소망을 적은 리본을 꼰 새끼줄에 매달고 있다.

한 참석자가 진흙에 빠진 발을 빼고 있다. 논에서는 유기농법을 써서 우렁이도 보였다.
철원(강원)=사진·글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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