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적막하고 아득한 천년의 향기

아수라장처럼 혼란스러운 시대, 역사의 먼지처럼 희미한 흔적만 남은 폐사지에서 한 해 동안 쌓인 마음의 짐을 비우다
등록 2013-12-06 16:36 수정 2020-05-03 04:27

가을은 못내 미련을 떨며 떠나지 못하고 겨울은 차가운 바람과 눈을 앞세워 계절을 재촉하는 시간. 천년 전 영화는 사라지고 폐허가 된 절터의 흩어진 돌덩이와 부서진 탑, 불상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찾아나서는 일은 쫓기듯 한 해를 살아온 팍팍한 삶의 한 부분을 덜어내고 자신을 찾아가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화려했던 과거의 모습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켜켜이 쌓인 역사의 먼지처럼 희미한 흔적만이 남은 폐사지에서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 말처럼 발길에 차이는 작은 돌, 풀 한 포기, 스치는 바람에도 온전히 마음의 눈을 열어 잊고 있던 내면과 작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아수라장처럼 혼란스러운 요즈음 ‘나와 같다면 옳고 다르면 그른 것인가’라는 충남 보령 성주사 터에서 만나는 신라의 고승 낭혜화상(801~888)의 금어를 곱씹어보는 것도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이해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리라. 한 해 동안 쌓인 마음의 짐을 비우려거든 천년의 향기가 서린 폐사지로 떠날 일이다.

합천(경남), 남원(전북), 보령·당진(충남), 원주(강원)=사진·글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2번지에 위치한 성주사는 신라 말 구산선문 중 하나로, 한때 2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며 수도하는 전국 최고의 절로 손꼽혔던 곳이다. 백제 때 오합사라는
절로 지어져 신라 말 낭혜화상에 의해 크게 중창됐다. 임진왜란 이후 서서히 쇠락해 지금은 절터와 그 위에 남은 몇 가지의 유물들만이 이곳이 절이었음을 알려준다. 성주사 절터 가운
데 오층석탑과 세 기의 삼층석탑이 줄지어 서 있다. 보통 금당 앞에 한두 개의 탑이 서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네 개의 탑이 이렇게 세워져 있는 것은 특별한 배치다.
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2번지에 위치한 성주사는 신라 말 구산선문 중 하나로, 한때 2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며 수도하는 전국 최고의 절로 손꼽혔던 곳이다. 백제 때 오합사라는 절로 지어져 신라 말 낭혜화상에 의해 크게 중창됐다. 임진왜란 이후 서서히 쇠락해 지금은 절터와 그 위에 남은 몇 가지의 유물들만이 이곳이 절이었음을 알려준다. 성주사 절터 가운 데 오층석탑과 세 기의 삼층석탑이 줄지어 서 있다. 보통 금당 앞에 한두 개의 탑이 서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네 개의 탑이 이렇게 세워져 있는 것은 특별한 배치다. 

전북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만복사 터가 보물 제32호인 당간지주 뒤로 펼쳐져 있다.

전북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만복사 터가 보물 제32호인 당간지주 뒤로 펼쳐져 있다.

폐사지 기행을 하며 만나게 되는 풍경들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덤으로 얻는 행운이다.

폐사지 기행을 하며 만나게 되는 풍경들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덤으로 얻는 행운이다.

사적 제168호인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거돈사 터에 보물 제750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외로이 천년의 세월을 견디고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됐으나 창건 연대는 미상이며, 고려 초기
에 대찰의 면모를 이룩했다. 7500여 평의 절터에 있는 금당지에는 전면 6줄, 측면 5줄의 초석이 보존돼 있어 본래는 20여 칸의 대법당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사적 제168호인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거돈사 터에 보물 제750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외로이 천년의 세월을 견디고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됐으나 창건 연대는 미상이며, 고려 초기 에 대찰의 면모를 이룩했다. 7500여 평의 절터에 있는 금당지에는 전면 6줄, 측면 5줄의 초석이 보존돼 있어 본래는 20여 칸의 대법당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천지를 뒤덮을 듯이 쏟아지는 눈보라 속에서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했던 성철 스님의 말이 아니더라도 사람도 자연의 일부
임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천지를 뒤덮을 듯이 쏟아지는 눈보라 속에서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했던 성철 스님의 말이 아니더라도 사람도 자연의 일부 임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경남 합천 성주사 터에 남아 있는 귀부. 보물 제489호인 이 귀부는 동서로 한 쌍이 남아 있는데,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무렵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경남 합천 성주사 터에 남아 있는 귀부. 보물 제489호인 이 귀부는 동서로 한 쌍이 남아 있는데,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무렵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373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입상이 하얗게 내리는 눈을 맞고 있다. 얼굴은 타원형으로 훼손이 심하나 인자한 모습이다.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373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입상이 하얗게 내리는 눈을 맞고 있다. 얼굴은 타원형으로 훼손이 심하나 인자한 모습이다.

보물 제100호인 충남 당진의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가운데 본존은 머리에 커다란 사각형의 갓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신체의 비례상 어색하게 큰 편이다. 불상의 몸은 대형화됐
는데 인체의 조형성이 감소돼 네모난 기둥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몸과 어울리지 않게 팔과 손을 붙여 비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있으며, 왼손은 배에 붙여 엄
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다. 좌우에는 본존불을 모시는 보살상이 있는데, 오른쪽 보살은 허리까지 묻혀 있고 왼쪽 보살은 머리만 파괴됐을 뿐 형식은 본존불과 같다.

보물 제100호인 충남 당진의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가운데 본존은 머리에 커다란 사각형의 갓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신체의 비례상 어색하게 큰 편이다. 불상의 몸은 대형화됐 는데 인체의 조형성이 감소돼 네모난 기둥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몸과 어울리지 않게 팔과 손을 붙여 비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있으며, 왼손은 배에 붙여 엄 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다. 좌우에는 본존불을 모시는 보살상이 있는데, 오른쪽 보살은 허리까지 묻혀 있고 왼쪽 보살은 머리만 파괴됐을 뿐 형식은 본존불과 같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