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쪽빛은 길게 짙어졌고 산과 들 초록에 감빛이 돌기 시작한 걸 보니 어느새 가을이다.
옛사람 누군가는 벼의 누런 정도나 푸릇한 과일에 제 색이 도는 때를 보고 수확의 시기를 가늠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자연 속에서 늘 봐왔던 색을 생활 속으로 들여오는 것이 천연염색이다. 그래서 천연염색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나 들·풀·산에서 나는 재료로 다양한 색을 만든다. 나무껍질·흙·풀·꽃잎·돌가루 등을 물에 풀어 천연 매염제를 넣고 천을 담가 색이 밸 때까지 몇 번이고 우리고 말리기를 반복한다. 그러다보니 만들어지는 시간이 더디고 길다. 하지만 그렇게 나온 색들은 자연을 닮아 자연스럽고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염색장 김왕식(53)씨는 전라도 화순에 터를 잡아 20여 년째 천연염색을 해오고 있다. 전통적으로 전수돼온 자료도 거의 없고 천연염색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던 1990년대부터 옛 자료들에서 방식을 찾아내며 색을 만들어오고 있다. “화학염색은 석유에서 색소를 뽑아 만들어서 색 자체가 원색이라 색과 색이 튀고 서로 다퉈요. 서로 경쟁하고 살아남으려고 싸우는 것이 화학색의 원리예요. 반면 자연의 색은 조화로움에 있어서 다른 계통의 색을 같이 두어도 다 어울려요. 서로 상생하고 공존하는 원리가 들어 있거든요. 그래서 편안함을 얻게 돼요.” 그래서 천연염색은 자연을 만나는 일이라고 김왕식씨는 말한다. 한편 그의 옆엔 침선공예가인 부인 박영희(54)씨가 있다. 남편인 김왕식씨가 색을 낸 천으로 옷을 짓고 규방 물품을 만든다. 100% 천연염색을 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색은 탁한 기운이 없는 맑은 색이 된다고 한다.
도시의 인공적인 색과 인위적인 삶, 빠른 속도에 지쳐 있다면 올가을 파란 하늘도 올려다보고 자연을 닮은 색 한 점 바라보며 눈과 마음의 피로를 달래보는 건 어떨까 싶다.
화순(전남)=사진·글 정용일기자 yongil@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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