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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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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의 손끝에서 숙성된 술맛

세왕주조 진천 양조장 보글보글 술 내음에 용꿈이 아른아른
등록 2008-12-13 10:40 수정 2020-05-03 04:25

충북 진천군 세왕주조(옛 덕산양조)는 한국 근대 주조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일본 사람이 설계해 1929년에 짓기 시작한 양조장은 이듬해에 완공됐다. 이규행(47) 사장의 말에 따르면, 서향으로 난 정문과 그 앞의 측백나무가 한여름 열기를 막아 건물을 시원한 상태로 유지해준다고 한다. 백두산 전나무와 삼나무로 높게 올린 지붕은 환기에 이로우며, 건물 중간에 넓게 깐 톱밥 역시 같은 효과를 낸다. 측백나무는 해충도 방지한다. 나무의 진액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해충을 쫓아 건물의 나무가 썩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1935 龍夢製’(1935년 인근 용몽리에서 만들었다는 뜻)란 글자가 찍혀 있는 이곳 발효실 항아리에는 술이 보글보글 익어가고 있다. 늦었지만 2005년에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58호로 지정됐다.

세왕주조의 내·외부가 역사의 산실이어서 취재 내내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양조장은 2003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의 길이 열렸으니 이제는 다음 세대로 가업을 이어 영원한 술도가로 남아주었으면 한다. 직원이 방금 찐 술밥을 식히고 있다.

세왕주조의 내·외부가 역사의 산실이어서 취재 내내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양조장은 2003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의 길이 열렸으니 이제는 다음 세대로 가업을 이어 영원한 술도가로 남아주었으면 한다. 직원이 방금 찐 술밥을 식히고 있다.

이규행 사장은 애초에 충북 청주에서 건설업을 했다. 96년부터 아파트 분양에 고전하다가 3대째에 끊길 뻔한 가업을 잇기로 결심했다. 업으로 삼을 정도의 양조 전문가는 아니었다. 직원들은 누구보다 전문가였지만, ‘낙하산’ 사장에게 쉽게 기술을 알려주지 않았다. 밥 짓는 것부터 차근차근 배웠고 배달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전통주 자료들을 찾아내 자신만의 비법을 연구했다. 원료의 성질을 파악하고 배합에 따라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내고, 오직 손으로만 만들어내는 진짜 맛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2년이 지난 뒤 세왕주조의 대표술이 된 ‘천년주’가 탄생했다. 충북 진천 쌀에 인삼, 백복령, 구기자 등 12가지 약초와 누룩으로 빚었는데, 소비자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으며 진천군 문화상품으로 지정받았다. 할아버지 때부터 탁주와 약주를 빚어온 집안의 손재주가 그에게도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1930년에 지은 건물은 우진각 형태의 함석지붕을 올리고, 벽체는 수수깡으로 엮은 심에 진흙을 바른 뒤 양쪽에 왕겨를 채워넣은 다음 목제 비늘판벽으로 외장 처리했다.

1930년에 지은 건물은 우진각 형태의 함석지붕을 올리고, 벽체는 수수깡으로 엮은 심에 진흙을 바른 뒤 양쪽에 왕겨를 채워넣은 다음 목제 비늘판벽으로 외장 처리했다.

막걸리는 2002년에 시작했다. 서민의 술이고 싼 술이라 쉽게 생각했는데, 약주보다 더 애를 먹었다. 양조장에서는 맛이 괜찮았는데, 밖에 나가면 며칠 만에 상하기 일쑤였다. 효모균은 살아 있는 미생물이어서 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3년을 고생해 2005년부터 주당들에게 옛맛을 품은 막걸리로 인정받게 됐다. 세왕주조 막걸리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담백하고 시원할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옛맛이 난다고들 해요. 비법이 뭐냐고 묻는데, 특별한 게 있겠어요. 그냥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드니까 옛맛이 나겠죠.”

고두밥을 찧고 이틀간 종균실에서 배양한다. 배양한 것을 항아리에 담고, 덧밥(술밥)을 다음날 넣어준 뒤, 이틀 동안 숙성한다. 이 모든 것을 사람의 손으로 한다. 사람 손으로 균을 띄울 때 날씨에 따라 그 방법이 다른데, 이 미세한 감각을 기계는 흉내낼 수 없다.

우리 전통술은 발효실 술항아리에서 전분이 당으로, 당이 다시 알코올로 바뀌는 두 가지 과정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면서 특유의 술맛을 만들어낸다. 특히 쌀술은 항아리 속에서 발효되는데 거품이 층을 이루며 10cm 이상 부글부글 부풀어 오른다.

우리 전통술은 발효실 술항아리에서 전분이 당으로, 당이 다시 알코올로 바뀌는 두 가지 과정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면서 특유의 술맛을 만들어낸다. 특히 쌀술은 항아리 속에서 발효되는데 거품이 층을 이루며 10cm 이상 부글부글 부풀어 오른다.

세왕주조의 제품 수는 대형 주류회사 못지않다. 대통령상을 3번이나 받은 ‘생거진천 쌀막걸리’와 냉침법을 응용해 만든 ‘가시오가피주’ 등 35종이나 된다. 그만큼 이규행 사장이 재투자에 적극적이란 얘기다.

“우리 양조장을 나무로 표현하고 싶네요. 할아버지께서 나무를 심으셨고, 아버지는 뿌리를 내리셨어요. 우리는 줄기를 뻗게 했습니다. 앞으로 나무의 잎이 무성해져야겠죠? 100년, 200년이 흘러도 후손이 전통을 지킨 우리 양조장을 지켜나갔으면 합니다.”

약술을 만들 때는 발효 과정에서 각종 생약을 종류에 따라 시간차를 두고 넣는다.

약술을 만들 때는 발효 과정에서 각종 생약을 종류에 따라 시간차를 두고 넣는다.

세왕주조의 술독들은 대부분 70년 이상 나이를 먹은 것이다. 1935년 인근 용몽리에서 만든 항아리라는 글씨가 찍혀 있다.

세왕주조의 술독들은 대부분 70년 이상 나이를 먹은 것이다. 1935년 인근 용몽리에서 만든 항아리라는 글씨가 찍혀 있다.


양조장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듯, 양조장 사무실 벽에는 일제강점기 이후 각종 주조대회에서 받은 상장이 잔뜩 걸려 있다.

양조장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듯, 양조장 사무실 벽에는 일제강점기 이후 각종 주조대회에서 받은 상장이 잔뜩 걸려 있다.

진천=사진·글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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