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활동가 K는 언제나처럼 지하철을 타고 센터 사무실로 출근한다. 그가 다니는 센터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고 지하철로는 약 1시간 거리다. 오전 10시30분까지는 센터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활동보조인이 매일 아침 7시까지 집에 와야 한다. 그가 오면 일어나서 씻고 옷을 입는 등 출근 준비하기 바쁘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문밖을 나오자 두껍게 입은 외투 속으로 가을의 찬바람이 들어온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그의 휠체어 바퀴 걸음을 유혹한다.”
중증장애인 박정혁(38)씨는 11월12일 오후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어제 쓰다만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불편한 손 대신 입에 문 ‘마우스 스틱’으로 자판을 한자 한자 느리지만 정확히 눌러나가는 그의 얼굴에 진지함이 묻어났다. 그는 장애인의 시각으로 장애인 문제를 다루는 인터넷 매체 (hangeol.net)에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기자다. 은 장애인이 스스로 참여하는 문화사업을 펼치는 ‘장애인문화공간’이 운영을 준비 중인 매체인데, 기자가 부족해 아직 정식으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2살 때 뇌성마비에 걸려 두 손과 두 다리를 마음껏 움직일 수 없는 박씨는 특수학교에서 초등 4년 과정까지 교육을 받았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찾다 보니 글을 쓰게 됐다”는 박씨는 (좋은세상 펴냄, 2003)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장애인문화공간’이 지난 2005년 처음 마련한 ‘장애인 기자학교’에서 글쓰기와 사진 교육을 받았다.
“글 쓰는 속도는 느리지만 비장애인의 글에 뒤처지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고 말하는 박씨는 두 가지 꿈이 있다. 하나는 장애인의 왜곡된 이미지를 깨고 그들의 삶을 유쾌하게 그린 소설을 쓰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장애인 매체가 아닌 비장애인 매체에 글을 싣는 것이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좀더 익숙해지면 꼭 도전해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뤄지는 날이 오길 기원한다.
그 뜨거웠던 열정은
어느새 차갑게 식어만 가고
숨가쁘게 달리고만 있던
나를 문득 발견한다.
머리엔 땀방울 고여
콧등을 타고
빗방울 땅에 떨어지듯
속절없이 가는 세월.
문득, 상쾌한 바람이
코끝을 타고 머릿결에 흐른다.
어느덧 늙어버린 낙엽이
발끝에서 뒹군다.
머리맡에 하늘은
얄밉도록 푸르고
그 푸른 하늘에
새하얀 뭉게구름.
그렇게
가을이 시를 부른다.
-2008년 10월, 박정혁
사진·글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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