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
“몰라, 알아서 뭐하게? 난 이름 없어. 그냥 남들이 재영 엄마라고 불러.” 당신의 몸만 한 고추 보따리를 이고 가는 아주머니한테 이름을 묻자 웃으며 대답한다. 강원 홍천군 동면 노천리에 사는 ‘재영 엄마’는 홍천 읍내에서 열리는 5일장에 고추를 이고 나왔다. 67살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 24근(12kg)이나 되는 고추를 머리에 이고 버스 정거장에서 방앗간까지 한 10분쯤 걸어가다 보면 목이 내려앉는 것같이 힘들지만 아직은 그래도 끄떡없다고 한다.
“지난가을에 다 팔았어야 하는디, 바빠서 못 팔았더니 고춧값이 영 시원찮구만.” 1근에 1만원씩 하던 것을 5천원씩 12만원에 팔고 나니 허탈하지만, 그래도 오전에 팔아치우고 돌아가는 차 시간을 맞출 수 있어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자식들은 모두 대도시로 떠나고 남편과 둘이서 지내는 아주머니에게 많은 돈은 필요 없지만, 어쩌다 한번 손자들이라도 오면 용돈 하라고 내놓는 재미가 쏠쏠하다. 헤어지며 다시 한번 이름을 물어도 여전히 이름이 없단다.
“아, 재영 엄마라고 불러. 그놈이 막내인데, 대학교에서 교수 하거든. 남들도 다 그렇게 불러.” 이름 석 자 대신 은근한 자식 자랑이 되돌아왔다.
홍천=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표정과 사연이 담긴 단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세상사의 단면을 포착하는 인물사진 마당 ‘당신’이 새로 연재됩니다. 이번호부터 ‘포토2’와 번갈아가며 격주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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