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에 대한 긍정과 부정은 종이 한장 차이 아닐까. 도로와 인도의 경계처럼 명확하지만 분명 맞닿아있다는 것을 우리는 틈나면 잊는다. 선조는 이를 ‘역지사지’라 하였다.
지난 7월14일 오후 서울광장 주변에 군집한 300여명이 갑자기 차도로 몰려나왔다. “원주민 쫓아내는 개발악법 철폐하라” “주민 재이주 대책 마련하라” 등의 구호가 장대비를 뚫고 있었다. 보수 성향의 목사들이었다. 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인 서경석(61) 목사가 이끌었다. 재개발지역 교회들이 턱없이 낮은 보상가에 쫓겨난다는 이유다.
하지만 서 목사는 도로점거 같은 불법시위를 부정하고 증오하던 이다. 지난해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때, 1인시위까지 벌여 “불법 시위를 공권력으로 제압하는 걸 마치 경찰이 잘못한 것처럼 보도하는 일부 언론의 태도는 대단히 잘못됐다. 제 아무리 옳더라도 불법 폭력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런 그가 도로와 인도의 경계를 허물고 ‘역지사지’를 하게 된 배경은 그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4월 서울시청 앞에서 700명이 집회를 했고 5월에 서울역 앞에서 300명이 집회를 했는데도 보도되지 않았다. 그래서 언론 보도의 벽을 넘으려면 시민 불복종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하룻밤이라도 유치장에 갇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9월에는 500명이, 10월에는 1천 명이 드러눕는 것이 목표다.”
목소리가 없는 자들의 목표는 도로가 아니다. 긍정받는 일이다. 귀 기울여주는 권력을 만나는 일이다. 도로만 침범하지 않으면 모든 원칙이 지켜지는 양, 법만 긍정하던 그도 결국 도로 위에 섰다. 경찰은 강제 해산에 나서 목사 5명을 집시법과 일반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연행했다.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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