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베트남] 미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등록 2004-01-09 00:00 수정 2020-05-03 04:23

평화마라톤 참여하는 작가 박영한씨, 32년만에 쏭바강을 다시 간다

‘머나먼 쏭바강’이 흐르는 푸옌성 뚜이호아시에서 열리는 ‘한국-베트남 평화마라톤 대회’. 이번 행사에는 소설 의 작가 박영한(57)씨도 참여한다. 남의 나라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의 고뇌와 번민을 그린 이 작품은 한국 작가가 쓴 베트남전 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시기적으로도 베트남전 파병을 결정한 박정희 정권 아래서 출간된 유일한 소설작품이다. 32년 만의 베트남 방문을 앞두고 가슴이 설렌다는 그를 만났다.

광고

백마29연대 보도병, 전두환의 추억

뚜이호아는 백마부대 28연대가 주둔했던 지역이다. 그는 뚜이호아 밑에 있는 닌호아에 있었다(뚜이호아와 닌호아는 본래 모두 칸호아성 관할이었으나, 1980년대 후반 뚜이호아가 푸옌성으로 독립한다). 주월한국군사령부가 있던 나짱(나트랑)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닌호아는 백마부대 29연대가 있던 곳이다. 그는 1970년 9월부터 1972년 10월까지 25개월간, 백마부대 29연대 정훈과 보도병으로 근무했다. 보도병이 주로 하는 일은 전투에 참여했던 병사들이 보낸 수기를 다듬어 한국의 에 보내는 것이었다. 때로는 전투병들을 직접 따라다니기도 했다. 그는 뚜이호아에서 진행된 한-미-월 합동작전에 함께 참여할 기회가 한번 있었다고 한다. ‘쏭바강’을 스쳐간 것은 이때가 유일했던 셈이다.

비교적 오랫동안 복무한 덕에, 그는 세명의 연대장을 거쳤다. 그 중 한명이 전두환씨다. ‘대령 전두환’을 바로 밑에서 ‘모셨던’ 부관은 다름 아닌 ‘소령 장세동’이었다. “매우 폭군적이었지요. 심복들에게야 잘해줬겠지만, 눈밖에 나면 아주 모질게 대했습니다.” 전두환 연대장이 1년의 임기를 마치고 닌호아를 떠나던 날, 요란스럽던 헬기의 굉음과 연병장 위로 날아오르던 연막탄의 잔상은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다.

‘연대장 전두환’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일도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백마 박쥐부대 장병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그 연설문 초안은 때로 붉은 사인펜 투성이가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문학적인 표현, 미사여구가 들어간 문장을 대단히 싫어했습니다. 딱딱하게 군대식으로 써야만 흡족해했어요.” 보초시간에 술 먹고 뻗어 자다가 ‘연대장 전두환’에게 발각돼 나짱의 헌병대 사령부에서 15일간 영창을 산 것도, 가물가물한 추억의 일부분으로 남아 있다.

광고

“당시 대부분의 병사들은 아무런 죄의식이 없었습니다. 베트남전의 역사적 맥락에 대해 돌아볼 여지가 전혀 없었지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반전·반미 의식을 가질 수 없게끔 ‘베트콩은 국가의 적’이라는 의식이 확고히 내면화돼 있었으니까요.” 그는 그것이 조금 느슨해졌던 1977년, 을 단편으로나마 발표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뭐 정보가 있었어야죠. 악조건 속에서 쓰다보니 주로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어요.”

베트남을 꼼꼼히 취재해 볼 계획

으로 1978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박영한씨는 이후 로 동인문학상(1988)을, 으로 연암문학상(1989)을 수상했다. 1988년과 1989년에 각각 쓴 와 은 TV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은 1994년 SBS 창사기념 대하드라마로 제작돼 그해 한국방송대상을 받기도 했다. 2001년 3월부터 부산 동의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방학인 요즘 서울 교외에서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베트남 땅을 다시 밟는 느낌은 어떠할까. “자랑스러운 마음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앞서지요. 베트남의 산하와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꼼꼼히 취재해볼 계획입니다.”

광고

한국-베트남 평화마라톤대회에 참여하는 이들은, 그에게 좀더 자세한 문학과 전쟁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글·사진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