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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싱에서 배우자

오스트리아의 가난한 시골마을이었던 귀싱, 외지로 빠져나가는 ‘전기료’ 아끼려 시작한 에너지 자립 25년… 천연재료에서 얻은 에너지로 전기 자급자족은 물론 남은 전력 내다파는 재생에너지 연구의 중심 되기까지
등록 2013-03-30 18:59 수정 2020-05-03 04:27

척박하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릴 듯했다. 기차도 닿지 않고 고속도로도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남서쪽으로 차를 타고 2시간 가까이 쉼없이 달렸다. 오스트리아를 이루는 9개 주 가운데 가장 척박하다고 알려진 부르겐란트를 관통하고 나서야 귀싱에 닿을 수 있었다. 시내에만 4300여 명, 전체 시 관할 지역에는 2만6천여 명이 사는 귀싱은 우리나라의 읍 정도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면적은 서울보다 6.5배나 넓은 광활한 땅이다. 헝가리 국경을 약 10km 사이로 맞닿고 있는 이 작은 마을은 유럽 사람들에게 ‘재생에너지 연구의 심장부’로 불린다. 그러나 숲길이 한없이 펼쳐지는 귀싱에 들어서면서도 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쇠락해가던 농촌 마을의 운명은 수십 년 만에 뒤바뀌었다. 현재 귀싱에선 40여 개의 크고 작은 재생에너지 시설이 돌아가고 있다. 이 지역에 필요한 전기의 2배 이상을 생산하는 규모다. 시내 한복판에는 ‘유럽연합(EU) 재생에너지 연구센터’(EEE)가 들어서 있다.

손가락질로 시작한 사업
귀싱의 이웃 마을인 슈테름 시장 베른하르트 도이치가 스파게티면과 빵을 생산하는 업체 볼프의 바이오가스 시설 앞에서 발효를 끝내고 배출된 찌꺼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찌꺼기는 마을 주민들에게 농업용 비료로 사용하도록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한겨레 김성환 기자

귀싱의 이웃 마을인 슈테름 시장 베른하르트 도이치가 스파게티면과 빵을 생산하는 업체 볼프의 바이오가스 시설 앞에서 발효를 끝내고 배출된 찌꺼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찌꺼기는 마을 주민들에게 농업용 비료로 사용하도록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한겨레 김성환 기자

이 마을의 역사는 주변 환경만큼이나 척박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의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1차 세계대전(1914~18) 당시 이 일대에서만 10만 명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1921년까지 헝가리 땅이었던 이곳은 2차 세계대전(1939~45)을 겪으며 오스트리아 영토로 바뀌었다. 전쟁 뒤에는 냉전시대가 찾아오면서 ‘철의 장막’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었다. 국경을 넘나들며 생활하던 이 지역 사람들은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헝가리가 국경을 폐쇄하자 먼 도시로 나가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귀싱 주민 70%가 주중에는 빈 등 대도시에서 일을 하고 주말에만 고향에 돌아오는 생활을 했다. 이마저 견디기 힘든 젊은이들은 고향을 떠났다. 남은 주민들은 옥수수와 해바라기씨 기름, 나무를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쇠락해가던 농촌 마을의 운명은 수십 년 만에 뒤바뀌었다. 현재 귀싱에선 40여 개의 크고 작은 재생에너지 시설이 돌아가고 있다. 이 지역에 필요한 전기의 2배 이상을 생산하는 규모다. 남은 전기와 열은 내다팔아 돈을 번다. 재생에너지 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소 등 50여 개 기업체가 이 작은 마을에 들어와 있다. 시내 한복판에는 ‘유럽연합(EU) 재생에너지 연구센터’(EEE)가 들어서 있다.

귀싱의 변화는 1988년 두 공무원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귀싱에서 시장을 맡고 있던 페터 파다시와 시청 전기기술직 공무원 라인하르트 코흐가 아이디어를 낸 주인공이다. 부르겐란트를 떠돌며 교사로 일하던 파다시와 전직 국가대표 농구선수 활동을 하며 전세계를 돌았던 코흐는 ‘귀싱이 왜 이렇게 몰락했는가’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고민은 ‘우리 마을의 돈은 왜 자꾸 외지로 빠져나가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당시 2만여 명의 주민이 1년 동안 전기료로 약 3500만유로(약 56억원)를 쓴다는 점에 주목했다. 전력회사로 고스란히 빠져나가는 돈이었다. 이 돈을 묶어둬야겠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이들은 지역의 절반 가까이가 숲이고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일조량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2년 뒤 귀싱 의회에 “가까운 미래에 우리 지역의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만들자”고 제안해 안건을 통과시켰다. 언제까지 이루자는 목표도 없었고 구체적인 사업 계획도 없었다.

954호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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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태워 에너지 만들고

가난한 작은 마을에서는 거대한 에너지 사업을 벌일 여력이 없었다. 파다시 시장은 가장 먼저 에너지 소비를 줄여 예산을 아끼고, 관내 인프라 설치 예산을 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1992년 맨 먼저 30여 가구가 사는 마을에 목재를 태워 지역난방을 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그러나 부르겐란트의 전력회사는 귀싱의 사업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고 대놓고 반대에 나섰다. 돈만 쏟아붓는 사업이 될 거라며 손가락질하는 주민도 많았다.

25년이 지난 귀싱의 성적표는 ‘합격점’이다. 현재 이 지역은 전기를 자급자족하고 있다. 남은 전기는 주변 지역에 내다판다. 1995년 빈공대 연구팀이 폐목재로 전기를 얻는 기술 연구를 귀싱에서 벌이고, 연구센터까지 들어서면서 사업이 활기를 찾은 덕이다. 현재 귀싱의 관심사는 100% 자급자족을 하지 못하는 열 분야 연구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다. 지역난방의 열을 냉방에 활용하고, 가스로 액체연료를 얻어 자동차에 쓰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열과 전기를 함께 쓸 수 있는 열병합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폐목재 설비에서 얻은 가스를 연료전지에 넣어 수소연료를 얻고, 나무를 태운 가스에서 순수한 메탄가스를 추출해 액체연료를 얻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 3월12일 찾은 ‘귀싱 바이오매스 발전소’에서는 이들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연구센터 길 건너에 세워진 이곳 입구에는 나뭇조각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모닥불 냄새가 휘감고 있는 이 발전소는 2011년 시 정부와 한 에너지 업체(OMV)가 900만유로(약 130억원)를 투자해 세웠다. “매일 60t의 목재를 태워 에너지를 얻고 있습니다. 나무를 태워 증기를 만들죠. 이때 나오는 증기도 부수적인 에너지 원료가 됩니다. 850℃까지 올라간 증기를 150℃로 낮춘 뒤 재처리해 찌꺼기를 모아 다시 태웁니다. 남은 1%의 재는 다시 퇴비로 사용하는 시스템입니다.” 발전소 시설을 안내한 베른하르트 도이치는 귀싱 옆 마을인 슈테름 시장이다. 이른바 ‘귀싱 모델’이 성공하면서 이 지역에 방문객이 늘어나자 귀싱 주변 18개 지역이 연합해 ‘생태에너지 클러스터’를 꾸려 재생에너지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귀싱의 재생에너지 사업은 옆 동네 시장도 참여하는 중요한 사업이 됐다.

이 발전소에서는 목재 2.5t을 태워 2MW의 전기와 4.5MW의 난방용 열을 얻는다. 최근 정상 궤도에 올랐다는 이 발전소가 남은 전기와 열을 팔아 얻는 수익은 한 해 약 250만유로(약 36억원)다. 10년이 지나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발전소 안에는 각지에서 온 연구원들의 연구시설이 있다. 최근엔 독일 울름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발전시설 기술을 판매했다.

주민들도 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자한다. 귀싱은 오스트리아에서도 태양광 시설이 가장 많은 곳인데, 태양광 발전기와 태양열 온수기를 설치한 집이 많다. 최근엔 건물을 신축할 때 태양에너지 시설 설치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도록 했다. 주민들이 투자한 태양광발전소도 있는데 매해 평균 투자금 대비 3%의 수익을 내고 있다.

기업에도 적용된 ‘귀싱 모델’

‘귀싱 모델’의 핵심은 태양과 나무, 농업 부산물(유채·옥수수 등)이다. 세 가지 원료로 전기와 열을 만든다. 바람이 적어 풍력발전은 힘들고, 수자원을 활용할 만한 하천도 없다. 이런 환경 때문에 귀싱은 다양한 종류의 에너지를 활용하는 ‘테스트 베드’(시험대)가 될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EEE가 있다. 이곳에서는 현재 39개의 다양한 전력 시범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나무로 가스와 액체연료를 만드는 연구도 한다. 빈공대, 그라츠공대, 그리고 독일 브라운호퍼연구소 등도 EEE와 공동연구를 진행한다. 르노·볼보·폴크스바겐·벤츠 등 유럽 자동차 업체와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도 재생에너지 연료 연구를 귀싱에서 진행하고 있다.

2011년 가동을 시작한 ‘귀싱 바이오매스 발전소’(위)와 1995년 귀싱에 세워진 연구기관인 ‘유럽연합(EU) 재생에너지 연구센터’(EEE)의 모습. 두 곳 모두 귀싱의 경제를 살리는 핵심적인 시설이다. 한겨레 김성환 기자

2011년 가동을 시작한 ‘귀싱 바이오매스 발전소’(위)와 1995년 귀싱에 세워진 연구기관인 ‘유럽연합(EU) 재생에너지 연구센터’(EEE)의 모습. 두 곳 모두 귀싱의 경제를 살리는 핵심적인 시설이다. 한겨레 김성환 기자

연구인력이 귀싱을 찾으면서 지역 경기도 되살아났다. 현재 EEE 건물 옆으로 50여 개의 기업체 건물이 늘어섰다. EEE가 재생에너지 교육과 전세계 지역을 대상으로 재생에너지 모델을 적용하는 컨설팅 사업, 그리고 에코투어리즘(생태관광) 사업을 진행하면서 누적 방문객 수가 3만 명을 넘어섰다. 작은 마을에 호텔도 들어섰다. 15년 전 방문객이 한 해 쓰고 가는 돈이 고작 1만8천유로(약 2500만원)였던 것이 지금은 30만유로(약 4억3천만원)로 훌쩍 뛰었다.

‘귀싱 모델’은 현지 기업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귀싱 시내 북쪽에는 1960년대부터 이곳에서 스파게티면과 빵을 생산해온 가족기업 ‘볼프’가 있다. 매해 6520t 규모의 면을 생산하는 이 업체는 2년 전부터 공장 설비에 필요한 전기를 재생에너지 시설에서 100% 얻고 있다. 210만유로(약 30억원)를 투자해 세운 바이오가스 처리시설에선 이 업체가 반죽 재료인 달걀을 얻기 위해 기르는 4만 마리의 닭에서 나온 배설물과 귀싱 지역의 음식물 쓰레기를 거둬들여 발효시킨 뒤 메탄가스를 만들어 전기를 얻어 공장을 돌리고, 남는 전기는 판매를 하고 있다. 시간당 750kW를 생산하는 이 발전시설에선 발효한 찌꺼기가 나오는데 이는 지역 농가에 무료로 비료로 나눠주고 있다. 게다가 이 업체는 이곳에서 생산한 제품 포장에 ‘이산화탄소 중립 생산품’이라는 표시를 해 ‘환경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얻는 데 활용하고 있다.

현재 귀싱의 수익 모델은 전기다. 재생에너지 투자를 시작한 1991년 귀싱에서는 연간 12만6500MW의 전기를 쓰고 이 중 귀싱의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몫이 65만유로(약 9억3천만원)였다. 그러나 2005년에는 전기 사용량 18만5500MW 가운데 1360만유로(약 195억원)가 귀싱의 재생에너지였다. 지역에 세워진 발전시설 덕에 돈이 대도시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 공동체 안에서 순환할 수 있었던 셈이다.

“아래로부터 시작해 가능”

현재 귀싱에서 재생에너지에 쓰이는 목재의 양은 매해 4만4천t이다. 무분별한 벌목이 자연 파괴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도이치 시장은 “목재를 좀더 활용해 다양한 에너지원을 얻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답했다. “현재 귀싱의 기술로는 나무 5kg으로 1ℓ의 자동차 연료를, 나무 3kg으로 1㎥의 천연가스를 생산하고 있다”는 그는 나무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돈이 없이 재생에너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지 않던 마을을 아름다운 곳으로 바꿨습니다. 위가 아닌 아래로부터 시작한 시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귀싱(오스트리아)=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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