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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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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지야에 철지난 냉전 망령

등록 2008-08-29 00:00 수정 2020-05-03 04:25

브레즈네프 독트린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부시 독트린…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도 ‘작은 냉전’ 의 기운이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가끔씩 역사를 되돌아볼 일이다. 꼭 40년 전인 1968년 8월20일 옛 소련과 그 ‘위성국가’로 채워진 바르샤바조약기구 동맹군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다. 그해 1월 체코 공산당 제1서기에 오른 알렉산드르 두브체크가 언론·결사의 자유를 확대하고, 중앙 계획경제를 완화하는 등 일련의 개혁정책을 취하면서 크렘린과 마찰을 빚은 게 화근이었다. 짧았던 ‘프라하의 봄’은 그렇게 짓밟혔고, 동유럽은 이후 숨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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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동맹’은 냉전의 등식으로

“적대세력이 사회주의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고 자본주의의 길로 나아가려 한다면, 이는 해당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전세계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이 맞닥뜨린 공통의 과제이자 우려사항이다.”

그해 11월13일 폴란드공산당 제5차 당대회에 참석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이렇게 외쳤다.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정당화하는 한편, 이후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탈선’에 소련이 개입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게다. 이른바 ‘브레즈네프 독트린’은 이렇게 태어났다.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등장과 함께 냉전의 경계선은 더욱 또렷해졌다. 동과 서로 갈린 지구촌의 숨막히는 무한대결은 한층 첨예해졌다. 소련이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명분도 여기서 찾아진다. 브레즈네프 독트린은 1980년대 말 동유럽에서 잇따라 번진 민주화 시위에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개입하지 않으면서 그 수명을 다했다. 브레즈네프 독트린은 냉전의 유물이 됐다.

냉전이 막을 내린 지 12년여가 흐른 뒤, 국제사회를 대결 구도로 가른 또 다른 독트린이 만들어졌다. 이른바 ‘부시 독트린’이다. 부시 독트린은 9·11 동시 테러의 참극과 함께 잉태됐다. 초기엔 ‘테러범을 보호하거나 테러 조직을 지원하는 나라는 테러리스트와 똑같이 취급하겠다’는 선에서 출발했다. 9·11 동시 테러 두 달여 만에 전격 단행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보복전쟁’은 부시 독트린의 첫 번째 발현이었다.

대테러 전쟁의 독트린은 이후 진화를 거듭했다. 이내 ‘미국에 안보위협이 되는 나라의 정권을 교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예방전쟁’으로까지 치달았다. 사담 후세인 정권을 겨냥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그 산물이다. 그러는 사이 ‘의지의 동맹’이 만들어졌고, ‘내 편이 아니면 적’이란 냉전의 등식이 되살아났다. 1990년 9월11일 ‘아버지 부시’는 미 의회 연설에서 소련의 몰락과 함께 만들어지고 있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강조했다. 2001년 9월11일 ‘아들 부시’는 세계를 옛 질서 아래로 되돌려놨다.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아 침공, 러시아의 반격, 그리고 잇따른 그루지야 점령 사태를 놓고 ‘제2의 냉전’이란 살풍경한 표현이 세계인의 입길에 오르기 시작했다. 대결의 한 축은 러시아, 다른 축은 미국과 나토 동맹국이다. 20세기에 만들어진 브레즈네프 독트린과 21세기에 만들어진 부시 독트린이 옛 소련 땅 그루지야에서 그렇게 기이하게 만났다. 미국의 전략정보 분석업체인 ‘스트랫포’(Stratfor)는 지난 8월18일 내놓은 정세보고서에 이렇게 썼다.

“탈냉전 시대의 신세계질서가 2008년 8월8일 러시아와 그루지야가 전쟁에 들어가면서 완전히 끝장 났다. 물론 이번 전쟁의 규모가 크다는 건 아니다. 신세계질서가 파국을 맞기 시작한 건 2001년 9월11일이라는 주장도 없지 않다. 하지만 지난 8월8일 러시아와 그루지야 두 주권국가가 미국이란 ‘제3국’의 의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전쟁을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로써 우리는 현실 세계의 ‘질서’를 생각할 시점이 됐다.… 지난 8월8일 러시아는 지구촌을 ‘현실 세계’로 안내한 게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일단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나토 26개 동맹국 외무장관들은 8월19일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긴급 회의를 열어 “그루지야를 포함해 나토에 참여하고자 하는 국가를 가로막기 위해 유럽 땅에서 새로운 경계선을 그을 순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BBC〉가 전했다. 옛 소비에트 국가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경고한 게다. 나토는 일상적으로 유지해온 러시아와의 고위급 접촉을 잠정 중단했다. 앞서 지난 8월14일 는 “러시아가 그루지야에서 공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으면, 미-러 관계는 영구적인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는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말을 전했다. 미국은 8월 들어 이미 두 차례나 예고돼 있던 러시아와의 합동 군사훈련을 취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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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방어협정에 우호적이 된 폴란드

러시아 쪽의 기세도 만만찮다. 휴전과 철군에 합의했음에도 8월21일 오후 현재까지 선선히 그루지야 땅에서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AP통신〉은 “그루지야 곳곳에서 러시아군이 참호를 파거나 간이초소를 설치하는 등의 모습이 목격되면서 긴장감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통신은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의 말을 따 “러시아가 일부 도시에서 병력을 줄여나가곤 있지만, 전략적 요충지에 대한 장악은 더욱 강화하고 있다”며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는 게 분명함에도 철군 운운하는 것은 기만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대치 국면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냉전의 부활’ 조짐이 가장 두드러진 곳은 폴란드다. 독일 시사주간지 은 폴란드가 미국과 미사일방어협정을 체결한 8월20일 인터넷판에서 “폴란드에 냉전이 되살아났다”고 전했다. 미국은 오는 2011~2013년 요격용 미사일 10기를 폴란드에 배치해, 이웃 나라 체코에 마련하기로 한 미사일방어용 레이더와 연동해 중부유럽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날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누구도 폴란드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며 “그건 과거에나 가능했던 일”이라고 강조했다고 등이 전했다. 그런가?

‘철의 장막’이 사라진 지 19년, 나토 동맹국이 된 지도 벌써 11년째다. 이미 4년 전에 유럽연합에 정식 가입했다. 그럼에도 폴란드인들은 러시아에 대한 불안감을 여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개방의 물결과 함께 거리의 풍경은 서구를 닮아가고 있지만, ‘냉전의 그늘’은 바르샤바 거리에서 여전히 짙기만 하다. 그루지야 사태는 그런 분위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는 8월21일치에서 “그루지야 사태 이후 미사일방어협정에 대한 폴란드 여론이 판이하게 달라졌다”고 전했다. 미사일방어 참여에 비판적이던 여론이 그루지야 사태를 계기로 바뀌면서,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미사일방어에 참여해야 한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는 거다. 실제로 협정 체결 직후 폴란드 여론조사 전문업체 ‘Gfk 폴로니아’가 내놓은 조사 결과를 보면, 사상 처음으로 응답자의 과반이 넘는 58%가 미사일방어 참여에 찬성했다. 협상 개시 초기인 지난해 3월 실시한 같은 내용의 조사에서 찬성 응답은 전체의 30%에 그쳤다.

발트해 등에 엇비슷한 ‘분열상’ 가능성

역시 나토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선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친러파와 친미파로 갈려 벌써부터 ‘작은 냉전’이 시작된 모양새다. 은 8월20일치에서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말을 따 “러시아군의 그루지야 침공 사태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선 나토에 가입하는 게 유일한 길임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자국 내 군항을 활용하고 있는 러시아 흑해 함대가 그루지야 침공에 동원되자, 귀항을 막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는 오는 2017년까지 러시아 흑해 함대가 자국 군항에 정박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뼈대로 한 협정을 맺은 바 있다.

반면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2004년 말~2005년 초 미국 등이 측면지원한 ‘오렌지 혁명’을 이끌었던 율리아 티모셴코 총리는 전혀 다른 입장이다. 중국 의 8월20일치 키예프발 기사를 보면, 티모셴코 총리는 “우크라이나 당국과 러시아 흑해 함대 사이에 긴장국면이 조성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관련 당국은 적절한 행동으로 우크라이나가 무력 갈등에 휘말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는 유셴코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거다. 위기와 함께 불안감도 커져간다면 발트해 연안에서 코카서스까지, 바쿠에서 아르메니아까지 엇비슷한 ‘분열상’이 옛 소련권 곳곳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작금의 위기는 그루지야 정부의 남오세티야 침공으로 촉발됐다. 사카슈빌리 대통령의 개인적 오판인지,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저지른 일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해방’시키겠다거나 ‘수복’하겠다는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아왔다. 아랍 시사주간지 이 이번 사태를 ‘러시안 룰렛’에 빗대 ‘그루지얀 룰렛’이라 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기다렸다는 듯 앙갚음에 나선 러시아의 행태도 미덥지 않다. 올초 코소보 분리 독립 이후 러시아는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친러성향 주민들에게 러시아 여권을 추가 발급해주는 등 이들 지역의 ‘독립’을 부추기는 행태를 보여왔다. 계속되는 나토 확장과 자국 턱밑에 진을 치게 될 미사일방어망, 코소보 독립 등 일련의 움직임을 자국에 대한 서방의 목 죄기로 받아들였을 법도 하다. ‘반격’의 필요성을 느꼈을 게다. 이번 사태가 되레 러시아가 쳐놓은 ‘덫’에 그루지야 정부가 걸려든 것이란 주장의 근거다.

‘자비’ 또는 ‘위로’의 미사일함

로버트 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8월21일 “미 해군 함정 2척과 해안경비대 경비선 1척이 그루지야로 향하기 위해 터키 정부의 승인을 받아 보스포루스 해협을 거쳐 흑해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미 해군 당국은 이들 함정에 각각 ‘자비’와 ‘위로’란 이름을 붙였다. 인도 지원 물자 전달이 목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조처다. 하지만 는 이날 미군 유럽사령부(EUCOM)의 발표 내용을 따 “그루지야로 향하고 있는 미 해군 함정 2척 가운데 1척은 유도미사일을 장착한 구축함 USS 맥파울호”라고 전했다. 흑해를 자국의 ‘연못’쯤으로 여기는 러시아는 이번 사태 초기 그루지야 연안에 대한 해상 봉쇄에 나서기도 했다. 냉전의 철 지난 망령이 지구촌을 배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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