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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빈집에 숨을 불어넣다

미술계에 부는 재활용 프로젝트 바람… 폐공장, 빈집 등 방치된 공간 재해석하고 지역문제 개선 논의의 장 일궈
등록 2011-05-27 14:25 수정 2020-05-03 04:26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빈집에서 열린 <노네임하우스> 전. 1970년에 지어진 이 집은 지난 4월 중순에 철거 공사가 예정돼 있었다. 참여 작가 손채영, 신민경(성아리), 윤근영, 윤영완, 윤지원-실패예술학교(김홍빈, 고락준, 유상희, 윤지원, 이광진), 이현아, 차지량, 최혜련. 황석권 제공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빈집에서 열린 <노네임하우스> 전. 1970년에 지어진 이 집은 지난 4월 중순에 철거 공사가 예정돼 있었다. 참여 작가 손채영, 신민경(성아리), 윤근영, 윤영완, 윤지원-실패예술학교(김홍빈, 고락준, 유상희, 윤지원, 이광진), 이현아, 차지량, 최혜련. 황석권 제공

‘재활용’과 ‘재생’. 정부의 환경정책에만 관련된 용어가 아니다. 최근 미술계에서 자주 회자되는 말이다. 그리 어렵지 않은 사전적 의미를 가진 이 단어가 ‘미술’과 조우했을 때는 생경함이 가득해진다. 하지만 버려지고 생명력을 상실한 공간이 작가를 품고 새로운 창작의 수단과 작품 생산의 기지가 된 것은 미술계에서 더 이상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로 버려진 공간에 스스로 들어가기도 하겠지만, 작가가 이곳에 주목하는 것은 창작의 동력을 얻으려는 이유가 크다. 또한 이 단어들이 미술과 만난 것은 미술이 더 이상 ‘화이트 큐브’라 불리는 권위적인 전시장이나 번듯한 작업 공간에서 이뤄지는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는 인식이 힘을 얻은 덕이다.

낡은 흔적 발굴하고 의미 부여해

서울 문래동은 한때 산업발전의 전초기지로 지금은 서울에서 얼마 남지 않은 공단 지역이다. 도시와 산업구조의 변화로 공장이 하나둘 이전했고, 이곳은 재개발 계획을 수립해 주거 지역으로 변경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작가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대부분 높은 작업실 임대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껴보자는 요량이었으나, 이곳이 가지는 역사성에 주목하고 작업을 위해 온 이들도 있었다. 내려진 공장 셔터를 올리고 이곳에 둥지를 튼 작가가 모이자, 실험적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도 이내 들어섰다. 개발 논리에 밀려 지역의 의미가 송두리째 사라질 뻔한 이곳은 현재 일부 남아 있는 공장과 더불어 작가 작업실이 밀집한 곳으로 변모했다. 자칫 슬럼화가 우려됐던 공간이 작가의 작업실에서 만들어내는 기계음으로 재생된 경우다.

도심에서 벌어지는 ‘재생’ 프로젝트는 빈집을 활용한 경우가 많다. 지난해 6월 말 국립현대미술관 창동스튜디오가 화동 송원아트센터에서 진행한 ‘빈집전’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이곳의 리모델링 직전 작가 6명이 참여한 이 전시는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방치되다시피 했던 공간의 시간을 발굴하는 ‘장소 특정적’(Site-specific·특정 장소에서 본래의 의미 외에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작품을 설치했다. 그로써 죽음을 맞이해 전혀 기능하지 못했던 공간이 새로운 생산 거점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또 2010년부터 성북동 일대에서 열리는 ‘오래된 집전’은 작가가 직접 거주하고 전시까지 연 경우다. 부촌으로 알려진 이곳에서는 의외로 오래된 한옥을 적잖이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 떠나버린 한옥에 작가가 일정 기간 거주하며 작업을 하는데 그 결과물을 모아 전시한다. 작가의 온기를 받고 다시 생명을 얻은 한옥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미술관이 된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공간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도 작업 소재를 얻는 예술적 경험을 하게 한다. 빈 공간에 남아 있는 흔적을 찾아나서며 타인과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내적 성장의 동력을 얻는다.

지방자치단체가 벌이는 재생 프로젝트도 있다. 부산시가 2009년 문화예술지원 공모사업으로 진행한 산복도로 프로젝트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조성된 이곳의 오래된 빈집을 프로젝트 기간에 작가의 임시 작업실과 휴식처로 제공하고, 참여 작가는 이 동네에서 갖가지 공공미술 프로젝트(벽화, 버스정류장 뮤지엄, 간판 작업 등)를 진행했다. ‘도시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벌어지는 일방적 개발 논리를 잠시나마 비켜간 이 프로젝트는 존재감 없이 사라졌을(그래도 누구 하나 관심을 가져주지는 않겠으나) 이곳의 역사를 반추하게 한다. 그래서 이곳에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이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된 이유를 끄집어낸다.

대부분의 지자체 재생 프로젝트가 일회성의 한계를 지니는 데 비해, 각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대안공간이나 커뮤니티 공간은 프로젝트의 지속성을 견지한다. 이들은 지역민과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성해 재생 프로젝트의 목적을 ‘계몽’이 아닌 ‘소통’에 두고 있다. 인천의 대안공간 ‘스페이스 빔’, 안양 석수시장의 ‘스톤앤워터’, 안산 국경 없는 마을의 ‘리트머스’ 등은 지역민과 함께하는 미술 프로젝트와 지역문제를 개선하려는 여러 논의가 이뤄진다. 현장에서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이 바로 지역에 대한 이해다. 그래서일까? 지역 기반 커뮤니티 재생 활동가들은 대부분 재래시장의 장사를 접은 가게나 폐공장 등에 지역 연구와 이해의 거점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과 공간이 벌이는 소통 과정

그렇다면 최근 왜 이런 ‘재생’ ‘재활용’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행해지는 프로젝트가 많아졌을까? 우리의 공간과 소통에 대한 방법을 달리해보자는 의식이 널리 퍼졌음에 기인할 것이다. 개발독재 시대를 거치며 우리는 공간을 개인의 역사와 시간이 축적된 장소라기보다 항상 새로워야 할 것으로 보게 됐다. 낡고 허름함을 ‘제거’하고 그 위에 번쩍이고 늠름한 ‘새로움’을 얹어내는 일에 골몰했고, 그것을 발전으로 여겼다. 미술에서 재생 프로젝트는 ‘맹목적 발전’이라는 목적에 경도된 우리네 현실에 찍는 일종의 쉼표다. 일방적이고 무자비한 개발 드라이브에서 한 발자국 옆으로 비켜서 ‘낡고 허름한 것’이 가지는 ‘역사성’과 ‘기억’ 등을 되살려보자는 인식의 전환이다. 또한 더 세밀한 관찰을 목적으로 지역의 생활공간에 투신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공간이 벌이는 소통 과정을 중시하는 미술 행위라 하겠다.

황석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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