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말수가 적었다. 그 말은 어눌했다. 저 혼자 록 음악을 들었다. 드럼을 좋아했다. 절도범으로 몰리기까진 “경찰서를 쳐다본 적도 없다”. 소년은 편지를 썼다. “엄마 여기 들어와서 갑자기 드럼이 싫어졌습니다. 아마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였나 봅니다. …엄마, 나 없어도 고생하지 마요. 그리고 (군 복무 중인) 형 와서 나 있냐고 물으면 가출했다고 그래. 욕먹기 싫어서 그래요. 그럼… 자주 면회 한 번쯤은 와라. 나 외롭다.”
비뚝비뚝 편지의 발신지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우체국 사서함 3번’이다. 화성교도소다. 그곳이 왜 발신지가 되어야 하는지 소년은 알지 못한다. 편지엔 ‘무죄’를 울부짖는 문장이 길었다.
“엄마 제가 떳떳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안 한 건수가 있으면 아니다라(고 해야 하)는 것을 늦게 알았습니다. 제 인생이 완전히 꼬였습니다. 이거 알고 나서부터 머리가 아팠습니다. 마지막에 형사 아저씨가 수사할 때 화를 냈는데 제가 맞은 게 억울해서….”18살 김연우(가명). 소년의 엄마가 말했다. “(편지에서 보듯) 우리 연우는 남들보다 좀 뒤처지는 아이예요. 학교랑 집밖에 몰라요. 금이고 은이고 뭔지도 몰라요.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하니까…. 재판만 다가오면 밥을 한 끼도 못 먹었어요.”
김연우는 지난해 7월11일 경기 광명경찰서 수사진에 의해 구속됐다. 절도 혐의다. 17살이었다. 10월23일까지 옥살이를 했다. 보석으로 석방되기까지 100일이 넘는 기간이다.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 박성준 검사가 기소했다. 최초 공소사실은 간단하다. “피고인들은 2008년 7월24일부터 2009년 7월5일경까지 총 44회에 걸쳐 시가 합계 9023만6천원 상당의 재물을 몰래 가져가 상습으로 타인의 재물을 절취하였다.” 범죄일람표만 깨알 활자로 석 장이었다
절도액 6천만원 줄어든 공소사실 변경공범이 있었다. 동네 형 양상민(당시 19살·가명)이다. 상민은 지적장애인이다. 돈 뜯기는 일이 흔했다. 신분증도, 교통카드도 빼앗겼다. 얻어맞고 다녔다. 발달이 더딘 그는 병치레가 잦았다. 비염·천식·기침을 끼고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등·하굣길 아들 곁엔 늘 엄마가 있었다. 그러나 장애인 등록을 하진 않았다. “장애인으로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법당국은 상민도 100일 넘게 옥에서 살게 했다.
올 5월7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재판장 이정훈)은 양상민과 김연우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검사 서성목)은 항소했다. 지난 10월14일 수원지방법원 제6형사부(재판장 정일연, 판사 허익수·김옥희)는 항소를 기각했다. 검찰(검사 하동우)은 상고했다. 10월21일이다.
훔치지 않았다는 진영과 훔쳤다는 진영 사이는 멀어 보인다. “맞아서 허위로 자백했다”는 피고인 쪽과 “스스로 진술했다”는 수사진 사이는 더 멀다. 진실은 그 안에서 뒤척인다. 사건은 특히 ‘자백’에 의존하고 있다. 김연우와 양상민은 폭행과 강압에 의한 허위 자백이었다고 줄기차게 말한다. 위법적 수사와 인권유린이 있었다는 얘기다.
공소장에 첨부된 범죄일람대로라면, 김연우는 훔치고 양상민은 망을 봤다. 범죄 대상은 대부분 경기 광명 시내 아파트였다. ㄹ아파트에선 방범창을 뜯고 침입했다. 다이아몬드 반지 등 670만원어치의 금품을 훔쳤다. ㅎ아파트에선 하룻새 같은 동 5가구를 털었다. 500만원 이상의 금품이 사라졌다. 연우는 열린 창문으로도 들어갔고 출입문도 뜯었다. 자전거도 훔쳤다. 광명시청운동장 등지에서 물품이 분실된 사건도 이들 짓이라고 공소장은 말했다. 연우가 훔치고 상민은 늘 망보았다.
상민 엄마는 말했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겁도 많은 아이가 아파트 44곳인가를 털어서 얼마요, 1억원요? 그만큼 훔쳤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여인은 아들 얘기만 하면 눈물이 고였다.
1, 2심 판결은 ‘말이 안 된다’는 쪽이다. 1심에선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검찰(검사 최지현)은 1심 재판 도중에 공소사실을 변경하기도 했다. 통신사실 조회 결과, 아파트에서 물건을 훔쳤다던 이가 같은 시각에 학교 등지에 있었다. 혐의 44건이 19건으로 줄었다. 피해액은 3370만원으로 줄었다. 올 1월이다. 옥살이를 하고 난 한참 뒤다.
2심의 무죄 선고 사유는 더 구체적이다. △피고인들이 25건의 범행 일시에 현장에 있지 않았음이 밝혀져 공소장 변경을 통해 이 부분의 공소가 취소된 점 △피고인들에게서 압수된 피해품이 없는 점 △피해품의 판로가 명확하지 않은 점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과 족적이 피고인들과는 무관한 점 등을 들어 “자백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자백에 의존한 수사·기소를 부정한 셈이다. 이는 수사상 결함을 그대로 겨냥한다. 검찰이 제출한 범죄일람에 적시된 피해 물품은 다양했다. 금목걸이, 진주반지, 카메라, PMP, 팔찌, 귀고리 세트, 신분증, 운전면허증, 휴대전화, 양주…. 하지만 검찰과 경찰이 직접 내보인 증거품은 전무하다. 피고인들의 변호인인 박준영 변호사는 “피해품이라며 검찰이 제시한 건 시계, 만보기, 라이터가 전부”라고 말했다. 양상민의 집에서 압수한 것이다. 피해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박 변호사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아이들이 (장물을) 행인에게 팔았다거나 집 근처 화분 안에 비닐봉지로 싸서 묻어놨다고 진술했다는데 그게 가능한가” 물었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상민과 연우의 신발을 모두 수거했다. 절도 피해 현장에서 지문과 족적이 다수 발견됐다고 절도발생보고서·현장보고서 등엔 기록돼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둘의 것과 일치하지 않았다. 경찰은 방충망 등을 뜯는 데 썼다는 공구를 ‘절단기’라 이르며 증거로 제출했다. 김연우의 집에서 압수됐다. 그의 엄마가 말했다. “빨간색 펜치예요, 제가 못 박을 때 쓰는. 압수수색한다며 아이를 수갑 채우고 포승줄에 묶어서 집으로 끌고 왔어요. 신발장 위에 있던 건데 펜치를 드는 시늉을 시키더니 사진을 찍었어요. 시간이 없으니 엄마 놀라지 않게 빨리 하라면서.”
위법 수사 가능성이 제기된다. 광명경찰서 수사진은 지난해 7월7일 이들을 긴급체포했다. 체포 당일 밤 부모들은 경찰서를 찾아갔으나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어느 부모도 아들의 조사 과정을 지켜보지 못했다. 어떤 보호자의 조력도 없이 수사를 받고, 유치장에 갇혔다. 연우는 상민에게 “죽고 싶다”고 말했고, 상민은 “너무 억울해서 울었다”.
연우 엄마는 체포된 지 사흘 만에 아들을 만났다. 경찰이 집을 압수수색한 덕분이다. 엄마 앞에서 포승줄·수갑에 묶인 아들은 경찰에 이끌려 집 안을 훑었다. 연우 엄마는 말하며 소스라쳤다. “경찰서에 찾아가도 담당 형사가 없다거나 하면서 계속 만나게 해주지 않다가, 갑자기 집에 들이닥친 겁니다. 입이 말라 말이 안 떨어졌어요. 쓰러질 뻔했어요.”
상민 부모는 아들이 장애인이란 사실을 수사진에게 수차례 알렸다고 한다. 경찰은 “못 들었다”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박 변호사는 “상민이 장애인 등록은 안 돼 있었지만, 말만 해봐도 쉽게 안다”며 “그런데도 경찰이 (장애 사실을) 철저히 무시했다”고 말했다. 사건 후 진단을 신청한 상민은 ‘지적장애 2급’을 받았다. 취재진 또한 상민과 인터뷰했다. 경찰이 부러 무시했다면 야비하고, 몰랐다면 어리석다.
법무부 훈령에 따른 인권보호 수사준칙(37조)에는 “검사는 피의자가 미성년자이거나 신체적·정신적 장애 등의 사정으로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할 염려가 있는 경우에는 수사에 특별한 지장이 없고 피의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한 가족 등 피의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자의 참관을 허용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인정 안 하면 죽여버린다고 했다”형사소송법(244조)에도 △피의자가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전달할 능력이 미약한 경우 △피의자의 연령·성별·국적 등의 사정을 고려하여 그 심리적 안정의 도모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 신문 때 직권 또는 피의자·법정대리인의 신청에 따라 피의자와 신뢰 관계에 있는 자를 동석하게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장애인 등 특별히 보호를 요하는 자에 대한 특칙’이다.
검찰의 공소사실 변경은 최소한 25건의 피고인 자백이 애당초 거짓으로 꾸며지고 기소됐음을 말한다. 6천만원어치 절도가 거짓이었음을 말한다. 동네 절도 사건을 마구잡이로 엮은 것이다. 두 가지 의문을 던진다. 양상민과 김연우는 왜 자백했을까? 다른 19건은 사실일까? 2심 재판부는 ‘믿을 수 없는 자백’의 배경까지 설명하진 않는다. 관련하여 “피고인들은 경찰에서 강압 및 회유에 의하여 범행을 자백했기 때문에 이를 번복해도 소용없을 것이라 생각해 검찰에서도 범행을 자백했다고 진술하는 점”을 피고인의 진술을 신뢰할 수 없는 한 이유로 꼽은 게 전부다.
‘배경’은 아이들의 기억으로 구체화한다. 김연우는 드럼 학원을 다녀오자마자 집에서 붙잡혔다. 경찰은 곧장 수갑을 채웠다. 그는 미란다원칙에 따른 묵비권이나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는 물론, 체포 사유도 듣지 못했다고 말한다. 양상민도 마찬가지다.
김연우는 광명경찰서 철산지구대로 끌려와 혼자 조사를 받았다. 이후 양상민이 잡혀왔다. 김연우는 범행 추궁에 맞섰다. “계속 혐의를 부인하니까 한 경찰이 창고방 같은 데로 데리고 가 인정 안 하면 죽여버린다고 했다. 겁이 났다”고 김연우는 말했다. 혐의가 쌓이기 시작했다.
둘은 광명경찰서로 옮겨진다. 양상민은 조서 작성 과정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뺨·뒤통수를 결재판 등으로 맞았다.” 둘은 현장검증 때도 맞았다고 말했다. “안 했다고 하니까 뺨을 때렸다. 또 맞을까봐 계속 했다고 말했다.”(양상민) “가보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니까 제대로 (범행 재연을) 할 수가 없었다. 형사한테 수없이 맞았다.”(김연우)
경찰 쪽은 모두 부인했다. 초동수사를 담당한 지구대 표아무개 경관은 “CCTV상 용의자가 있었고, 이를 토대로 탐문하면서 김연우를 지목해준 또래가 있었다”며 “강압은 없었고 알아서 자백했다”고 말했다. 조서를 작성하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광명경찰서 이아무개 경관도 “조사 단계든 현장검증 때든 폭력 등의 강압수사는 없었다”고 말했다.
양상민과 김연우는 현장검증 때도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줄지어 엮인 채 동네를 누볐다. 모자도 쓰지 않았다. 상민 엄마는 분노했다. “확실히 조사도 안 한 채 수갑을 채우고, 보란 듯이 동네에서 죄인이 된 거 아닙니까.” 상민 가족은 집이 팔리자마자 옆 동네로 이사했다. 그해 9월이다. 경찰 쪽은 “모자를 줬지만 덥다고 아이들이 안 쓴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 무죄 사건 하나로 보아 넘기기 어렵다. 청소년 범죄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 경찰청에 정보공개청구 한 자료를 보면, 10대의 5대 강력범죄(살인·강도·성폭력·절도·폭력) 검거자 수는 2006년 6만5200명에서 2007년 7만7764명, 2008년 8만1391명, 2009년 9만1742명으로 뛰었다. 전년 대비 증가율이 2007년 19.3%, 2008년 4.7%, 2009년 12.7%로, 연령대별 상승폭이 가장 크다. 검거자 수가 가장 많은 40대의 증가율(2007년 4.8%, 2008년 1.2%, 2009년 0.8%) 추세도 압도한다.
실제 죄목별 10대 검거자 수를 보면, 살인은 32~40명으로 등락을 거듭했고, 폭력은 계속 증가했으나 증가율은 2007년 15.3%, 2008년 7.8%, 2009년 1.2%로 떨어졌다. 반면 절도와 강도 검거자는 크게 늘었다. 절도는 특히 2008년(3만9541명)에 비해 2009년 23.5% 증가(4만8815명)했고, 강도는 1904명에서 2540명으로 33.4% 늘었다.
10대 전과자(14~19살) 수도 늘고 있다. 2008년 1만5578명에서 2009년 1만6679명으로 전년 대비 7.1%가 늘었다. 전체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40대는 302만321명에서 306만3277명으로 1.4% 늘었다. 9.7%의 증가율을 보인 70대 전과자 다음으로 10대의 증가폭이 크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지난해 도입한 ‘성과주의’의 폐단은 곳곳에서 노출돼왔다. 통계치는 주요 피해 대상이 청소년일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한다. 박준영 변호사도 “양상민과 김연우는 경찰 성과주의의 피해자”라며 “청소년들은 압박, 스트레스, 불안을 견딜 능력이 낮아 거짓 자백에 더 취약하고, 경찰과 검사에게 심문받을 때 더 쉽게 순응한다”고 지적한다.
청소년 범죄자 안에 얼마나 많은 ‘무죄’가 숨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형사사건의 무죄율은 꾸준히 늘고 있다(823호 표지이야기 ‘누명 쓴 시민이 늘고 있다’ 참조). 하지만 대검찰청은 연령별 무죄 현황은 따로 파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민 엄마는 2심을 앞두고 판사에게 편지를 썼다. “상민이 지금까지 키워오면서 가슴에 항상 담고 살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그때 상민이 목숨까지 같이 (가져)간다 마음먹고 있습니다. …(경찰이) 뺨을 때리기까지 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겁이 많고 용기도 없고 정신연령도 유치원 수준밖에 안 되는 상민이가 너무 무서웠답니다. 죽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사회가 책임질 상처로 남아말없던 연우는 “광명이 싫고 한국이 싫다”며 “이제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화가 난다”고 말한다. 소년의 상처는 치유가 더디다. 옳든 그르든, 필시 사회적 비용을 치른다. 인권보호 수사준칙(54조)에서 △소년(만 20살 미만)에 대한 구속수사는 당사자의 심신이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고려하여 특히 신중해야 한다 △소년인 피의자가 체포·구속된 경우에는 다른 사건보다 우선하여 그 사건을 조사하는 등 신속한 수사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이유일 것이다.
검찰은 상고했다. 피고인 쪽에선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준비할 예정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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