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투자자들은 속이 탄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친 이후에도 한국은 끄떡없다는 정부 당국의 호언장담은 무참히 빗나가고 있다. 주가는 세 자릿수, 원-달러 환율은 네 자릿수를 보이는 역전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고수익 국민 재테크였던 펀드상품 중 상당수는 “반토막이 났다”는 투자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고, 투자자들이 두려운 한 자산운용사는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최근 개미들의 투자 손실을 “탐욕 때문”이라고 훈계한 자사 임원을 이튿날 직위해제하기도 했다. 앞으로 재앙이 닥칠지 모르니 최대한 현금을 확보해둬야 한다는 비관론과, 저점이니 장기 투자에 나서자는 낙관론 어느 쪽에 개미들은 표를 던져야 할까.
수십만 명의 누리꾼들이 가입한 인터넷 포털의 재테크 카페인 ‘펀드스쿨’ 회원 2명과 ‘맞벌이부부 10년 10억 모으기’(10in10)에서 ‘성공 재테크’란 이름의 공부모임을 함께하고 있는 3명을 지난 10월2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으로 초청했다. 간담회에 참가한 20대 후반~30대 초반 직장인들은 금융, 교육, 항공 등의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대화는 각자의 투자 포트폴리오와 최근의 수익률에 대한 한숨과 탄식으로 시작됐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미래에셋의 ‘인디펜던스’ ‘디스커버리’ ‘차이나 솔로몬’과 한국밸류자산운용의 ‘한국밸류10년 투자주식’ 등 3~5개 펀드에 가입해 있으며, 매달 월급의 3분의 1 정도를 집어넣고 있다고 소개했다. 투자 경력 1~4년인 이들은 한결같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펀드 투자 비중을 크게 늘린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사회=그동안 어떤 상품들에 투자해왔나요.
신승일(29·이하 신)=미래에셋 차이나 솔로몬은 지난해 10월에 지점을 찾아가서 30분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가입했습니다. 2주 안팎 상승하더니 곧바로 마이너스가 나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차이나 상장지수펀드’(ETF)에도 가입했는데, 얼마 전 단기 반등이 있을 때 약간 물타기(주가가 낮아질 때 더 많은 수량을 사들여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추는 것)를 했다가 오늘 수익률을 확인해보니 마이너스 47%였어요.
김태용(29·이하 김)=지난해 가을엔 펀드 안 하면 바보가 되는 분위기였어요. 펀드 하면 수익률 100%가 난다는데 적금에 넣으면 이자도 적고 세금까지 떼인다고들 말했습니다. 2007년 수익률을 보면 미래에셋의 잘나가는 상품은 수익률이 70%를 넘었거든요. 당시 농협도 차이나 펀드가 있었는데 수익률이 50%나 됐음에도 ‘못난이 펀드’라고 부를 정도였죠. 그때 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펀드에 가입했다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빚을 내서 투자한 거죠.
심수경(25·이하 심)=회사 동기가 펀드가 뭔지도 모르고 어머니에게 맡겼는데, 갑절로 돈이 불어났다고 자랑하더군요. 저는 회사에서 지급되는 달러 수당으로 외화 정기적금을 하고 있었는데, 올해 5월 만기가 돼 찾아갔더니 창구 직원이 ‘누가 요즘 적금 하나. 나도 펀드로 50% 수익 올렸다’며 펀드 투자를 권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간단한 설명만 듣고 바로 가입했죠.
최현석(30·이하 최)=올해 3월에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펀드에 가입했습니다. 러시아가 유가와 연결돼 무조건 향후 전망이 좋다, 중국은 올림픽 이후 경기가 침체될 우려가 있으니 러시아가 대세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죠.
이지은(25·이하 이)=제 경우엔 지난해 4월 메릴린치의 일본 펀드에 거치식으로 가입하면서 펀드 투자에 발을 디뎠어요. 지금 가지고 있는 펀드 대부분은 미래에셋 쪽이고요. 여기 계신 분들이 다 그렇지만 수익률이 마이너스 30~40%에 이르니깐 들여다보기도 싫을 정도예요. 그렇다고 지금 빼기도 힘들고요.
사회=미국발 금융위기가 불거진 이달 초 카페 분위기는 어땠나요.
이=그때 ‘리먼 사태’ 대신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이름을 따서 ‘리만 사태’라고 부르는 분들이 많았어요. 추석 연휴 직후부터 리먼브러더스에 이어 AIG와 씨티은행 파산 사태가 이어질 것이라는 글들이 막 올라오더라고요. 그때 얻은 정보가 이후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신=저는 외국인들이 만기가 돌아가는 채권을 죄 현금으로 바꿔 들고 나갈 거라는 ‘9월 위기설’은 믿지 않았어요. 100억달러가 안 되는 돈 때문에 한국이 흔들린다는 건 과장이죠. 저는 다른 분들에게 다음 아고라의 경제 토론방을 좀 찾아가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서민들이 공부를 해야 외국 투기자본에 당하지 않는다는 ‘미네르바’라는 논객의 글 덕분에 수만 명의 투자자들이 투자를 축소해 이번 금융위기 때 파국을 피했다고 봅니다.
이=우리 카페에는 유명한 낙관론자 논객이 한 명 있어요. 지수가 높을 때도 항상 매수를 권했고, 장이 나쁠 때도 조금만 기다리라는 식의 듣기 좋은 말만 올렸죠. 누리꾼들도 비관론을 펴면 무조건 싫어하고, 주가가 오른다고 하면 무턱대고 신뢰를 보내는 게 문제죠. 그래서 그 논객이 ‘교주’라는 별명까지 얻었더랬죠. 그런데 지수가 깨지면서 카페에서 퇴출되다시피 했어요. 나중엔 그가 증권사 직원이라는 소문이 돌더군요.
김=저는 솔직히 정치에 관심이 없거든요. 그런데 금융위기를 겪으며 정치와 경제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제발 강만수 장관이 섣부른 시장개입으로 ‘오럴 해저드’란 소리를 듣지 않도록 정책을 잘 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강 장관은 언제 교체되죠?
사회=투자자들이 펀드를 판 자산운용사나 은행들에 분노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이죠.
이=최근에 개미들을 가장 화나게 한 사람은 미래에셋의 한상춘 전 투자교육연구소 부소장이었던 것 같아요. 재미있는 패러디 사진들을 올리는 사이트에 곧장 ‘탐욕 갤(러리)’이라는 방이 생기더군요. 또 주식투자 관련 사진방의 이름은 요즘 ‘떡실신 갤’로 바뀌었고요.
김=탐욕이라니 참 화가 납니다. 내년 봄 결혼자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저와 여자친구가 함께 펀드를 들었거든요. 물론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리기를 기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담배 한 개피 덜 피우고 월급을 쪼개서 금융상품에 적금 붓듯 투자한 개미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짓이에요.
심=금융사에 투자 문의를 하면 무조건 좋다고만 하잖아요. 제가 지난 7월에 중국 주가가 떨어지기에 상담을 했더니 ‘올림픽도 있고, 중국은 최강국이 될 거다. 잠깐 주가가 빠진 지금이 투자 적기다’라고 주장하더군요. 그즈음 찾아간 은행 지점에서는 또 베트남에 지금 투자해야 한다고 막 부추기고요. 제발 개미들을 한쪽 방향으로 쏠리게 하는 식으로 유도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처음 펀드에 가입할 때 자동이체를 권유하잖아요. 기준가격·지수가 움직이는 범위를 보고 투자 금액을 조절해야 하는데 그런 설명을 안 해줘요. 지수가 오르면 이익을 환매해 현금화하라는 말도 없고요. 개미들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하락장인데도 펀드를 많이 정리했던 이유가 카페에 ‘오늘도 추불(추가불입) 2천만원 했다, 빚 내서 추불했다’는 글들이 계속 올라오는 걸 보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손실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데, 다들 ‘끝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달려드는 건 건강한 투자가 아니잖아요.
신=펀드 불완전 판매는 미래에셋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업계의 대표 격이라, 많이 판 게 죄라서 뭇매를 맞는 거지요. 다만 박현주 회장은 무책임하다는 생각은 들어요. 버크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은 미국 금융시장이 흔들릴 때 ‘지금이 살 때다, 나는 사고 있다’라고 선언하면서 시장을 안정시키잖아요. 한국자산운용사 1위면 1위답게 행동해야 합니다. 코스피 지수가 1600대일 때까지만 해도 언론에 자주 등장하던 분이 최근엔 자취를 싹 감췄으니….
최=저는 미래에셋을 심하게 비판하고 싶진 않지만, 인사이트펀드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초 처음 가입 금액 1천만원에 수수료도 엄청나게 높아 ‘부자들의 펀드’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고요. 박현주 회장이 직접 챙기는 ‘투자 철학과 노하우가 집적된’ 상품이라더니, 나중에 보니 결국 중국 몰빵 펀드였던 셈 아닙니까.
이=저는 언론과 증시 전문가들의 책임도 짚고 싶습니다. 올 초에 증시가 2300까지 간다고 떠들어대던 기자들과 애널리스트들은 다들 어디 갔나요. 가만 보면 언론과 전문가들은 매번 장이 더 오른다는 예상치만 내놓는 것 같아요. 바닥이라는 말만 믿고 대출을 받아 펀드에 들었다가 쪽박을 찬 개미들은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사회=앞으로 증시 전망을 어떻게 보는지요. 펀드를 환매할 건가요.
김=저는 정말 반등 시점이 한 번 와줘야 결혼을 할 수 있어요. 인제 빼도 박도 못하고 포기 상태지요. 6개월 안에 수익률이 회복되지 않으면 빚이라도 내야 할 처지예요.
신=저는 코스피 지수가 700 정도 떨어지면 우량주 위주로 직접투자를 하려고 합니다. 한때 70만원을 넘었던 포스코 주가가 요즘은 25만원대에서 움직이는데, 이런 주식을 한 3년쯤 가지고 버티면 큰 수익이 날 겁니다.
최=저도 장기로 갈 계획입니다. 예전엔 목표 수익률을 40%까지 잡았는데, 이젠 그게 무리라는 걸 확실히 배웠어요. 워런 버핏도 20%대 수익률이라고 하잖아요. 잠깐 쉬었다가 장기로 가야죠.
심=코스피는 800~900 정도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하고 있어요. 그래도 펀드는 계속해야죠. 저축하는 습관 같은 것이니까요.
이=투자 금액이 1천만원 이하라면 단기 반등 때라도 환매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이상이라면 물타기를 하거나 관망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고요. 다들 너무 질리셨을 테니 투자를 계속하는 게 좋다고 말할 순 없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사회·정리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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