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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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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은 실패부터 인정하라” “한나라당에 개혁을 맡길 수 있나”

등록 2006-12-14 00:00 수정 2020-05-03 04:24

당내 전략가로 꼽히는 열린우리당 이목희-한나라당 박형준 의원 대담…“역동적인 진보세력의 대통합” Vs “실체가 분명한 한나라당 대세론”

▣진행·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정리·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사진·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07년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열린우리당의 이목희 의원과 한나라당의 박형준 의원이 마주 앉았다. 두 의원은 초선이지만 당내에서 전략가로 꼽힌다. 굳이 이 끝장 토론의 주제를 찾자면 ‘우리가 집권한다’였다. 이는 ‘당신들은 안 된다’는 주장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서로의 장단점을 꿰뚫고 있는 두 의원은 점잖은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나 점잖음 속에서 날카로움이 번득였다. 박 의원은 “현재의 대세론은 이전과는 달리 실체가 분명하고 내년 대선까지 유효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 의원은 “지금은 어렵지만 대선 구도를 잘 짜고 여기에 지지자들의 창의력과 역동성이 더해진다면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권은 왜 실패했는가

사회:2007년 대선이 일찌감치 달아오르고 있다. 내년 대선의 의미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나.

박형준(이하 박):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현대사를 48년 체제, 63년 체제, 87년 체제로 규정한다. 각각 건국, 산업화, 민주화 시대에 해당한다. 노무현 정권이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과도적 정권으로서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했지만 이에 미치지 못했다. 다음 대선을 거치면서 민주화 체제를 넘어 선진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한반도 전체에서 다음 5년은 분단 이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 시기에 선진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대외적으로는 한반도 평화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대선은 새로운 2008년 체제의 주체 세력을 만들고, 선진화를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국가적 세력을 구축하는 대선이다.

이목희(이하 이): 97년 대선은 우리 관점에서 보면 수평적 정권교체냐 아니냐였다. 50년 가까이 기득권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2002년 대선에서는 정치개혁 열망이 분출했다. 내년은 민생개혁과 남북의 화해·협력·발전을 이룰 수 있느냐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세력으로 보면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냉전수구 세력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이다. 우리 역사가 진보와 개혁으로 전진할 수 있는가 아니면 보수로 후퇴하는가의 갈림길에 서 있다. 한나라당이 변화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극우적인 세력들이 모여 있지 않나.

박: 여당 스스로 노무현 정권이 실패했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나. 왜 실패했는지를 제대로 살펴야 한다.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행정의 정치로 승화하지 못했다. 결국 노 정권의 두 가지 과제였던 경제발전을 축으로 한 사회발전과 국민통합에 실패했다. 국민이 미래를 불안해하고 개혁 피로감에 젖어 있다. 뒤집어보면 내년 대선은 행동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세력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표출될 것이다.

이: 여당과 노무현 정권의 지지율이 낮은 책임은 우선 우리에게 있다. 박 의원이 말한 것처럼 국민을 대하는 태도와 화법이 잘못됐다.

서민과 중산층에 확실하게 다가서지 못했다. 중도개혁주의를 표방한 당인데 국민에게 약속한 만큼 개혁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 외부적 요인도 있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치와 정권이 탄생할 때부터 정권교체 투쟁을 벌이며 여론시장을 주도한 일부 정치언론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지만, 이런 요인들도 낮은 지지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박: 노 대통령이 내건 지역주의 타파, 양극화 해소, 서민경제 등 하나도 성공한 것이 없다. 국가경영 능력, 통합 능력의 결핍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 물론 야당도 책임이 있다. 한국 사회의 정치문화가 아직 교조주의 틀 속에 빠져 있고 상대를 적대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을 수구꼴통, 열린우리당을 친북좌파라고 공격하는 전투적 정치 문화를 넘어서야 한다. 일각에서 보수에게 정권을 맡기면 재앙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누가 실용적인 개혁을 하고 민생을 챙겨줄 수 있는가, 경제발전 동력을 채우고 누가 그것을 할 수 있는지를 갖고 캠페인을 해야 한다.

이: 우리 시대가 갖고 있는 과제를 정리하면 동반성장과 양극화 해소, 선진한국 등이 있다. 사실 양극화를 해소하자고 했지만 잘 못한 것은 사실이다. 국정을 운영해보니 보통 일이 아니더라. 두 번 우리에게 정권을 맡겼는데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송구스럽다.

우리가 미진하고 부족하지만 한나라당에 정권을 맡겼을 때 닥칠 가공할 미래가 걱정이다. 사회·정치 개혁을 한나라당이 할 수 있을까?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전 총재가 당선됐다면 돈 안 드는 선거, 정치개혁을 할 수 있었을까?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금산법)을 통해 재벌을 개혁하려고 했지만 동의해주지 않는다. 사립학교법에도 협조하지 않는다. 우리의 복지예산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인데 세금을 줄이자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인데 북핵 국면에서 한나라당이 보여준 태도가 뭔가. 국지전을 감내해야 한다고 했다. 남북관계의 긴장이 높아지면 국가 신인도도 낮아지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우리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은 충분히 인정하고 반성하지만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우리가 해야 할 과제가 후퇴할 것이다.

경제·대북 정책의 승부수

박: 세금을 통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근본적인 방안이 되지 않지만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낸다는 데는 반대하지 않는다. 감세와 증세 논쟁구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부분을 감세하고 어떤 부분은 증세할 수 있다. 어떻게 효율적인 정부를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한나라당이 부자만을 위한 정당이라는 주장은 선동이다. 남북관계에서 대화와 설득은 중요하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핵 포기 없는 평화공동체는 어불성설이다. 방법론상의 차이가 있는데 국제공조에 의한 제재를 병행하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대화를 해야 한다.

이: 박 의원이 말한 내용이 한나라당의 당론이라면 좋겠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 국제공조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회원국으로서 준수하면 된다. 개성공단, 금강산 사업을 중단하고, 무력충돌 가능성이 높은 핵확산방지구상(PSI) 참여를 적극 주장하고 있지 않나.

사회: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 각종 현안에 대해 토론을 하면 끝이 없을 것 같다. 2007년 대선 얘기에 집중하자. 여론조사 결과 ‘이명박 대세론’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의 기조대로라면 한나라당 집권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닌가.

박: 집권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로 볼 때 조건이 있다. 우선 뛰어난 리더가 있느냐다. 한나라당에는 여러 사람이 있다. 차기 대통령은 국민의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건강한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고 복합적인 문제해결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 하나는 건강한 세력이다. 협소한 인재풀이 아닌 광범한 인재풀이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국민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2개밖에 없다. 한나라당과 그 연대세력을 선택할 것인가, 실패한 집권세력과 그 연대세력을 선택할 것인가. 한나라당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서 있다. 비전이 있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운영해낼 수 있는 국가경영 능력이 필요하다.

이: 현재의 지형을 보면 한나라당이 크게 유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왜 한나라당이 집권을 못했는지 생각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여전히 보수, 수구, 구태, 부패, 영남당 이미지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5·31 지방선거 이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나라당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고 답한 사람이 7%, 한나라당을 신뢰해서가 9.5%였다. 정부·여당이 잘하지 못했고 뚜렷한 후보가 없다 보니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중도층을 누가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 한나라당 후보들이 지지도가 높은 것은 사실인데, 그 후보들이 21세기 한국의 시대정신을 갖춘 분들인가. 개발독재시대에 필요했던 리더십이 사회 각계각층의 갈등과 대립을 조정해 통합으로 이끌어야 하는 시대에 어울릴까. 한나라당이 정말 변했다고 말하려면 국민이 잊어버리지 않는 세 개의 원죄, 군사독재, 영남지역주의, 광주학살 문제에 관해 국민에게 사죄하고 남아 있는 찌꺼기를 지워야 한다.

박: 아픈 대목을 지적했고 그런 과제가 있다. 한나라당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그 안의 공과,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모두 끌어안고 왔다. 그런데 선거는 간단하다. A가 싫어서 찍거나 B가 좋아서 찍거나이다. 현재의 집권세력이 싫어서 한나라당을 찍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은 사실이다. 여당 내의 정계 개편 논의는 이대로는 이기기 힘드니까 판을 새롭게 짜자는 것 아닌가. 그래서 국민이 싫어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정치적 패배를 감수하는 게 책임정치라는 측면에서도 맞다. 명분상 친노세력이 맞다고 본다. 지역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그런 식의 구도로 설정해서 가면 내년 대선도 극심한 지역주의 대결로 갈 위험이 커지고 여러 가지 부작용도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 분열 가능성 있나

사회: 현재 한나라당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국면이라는 점에서는 두 의원의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양당에 하나씩 묻겠다. 한나라당이 대선 후보 선출 과정을 거치면서 파열음 없이 대세론을 이어갈 수 있을까. 열린우리당은 변변한 경쟁 상대도 없이 내홍을 겪고 있는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까.

박: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대목이 유력한 후보들의 분열, 한나라당발 정계 개편이다.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세 후보 모두 정치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다. 이 전 시장은 최고경영자(CEO) 이미지를, 박 전 대표는 애국지사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의 전통적 정치인 이미지와 다르다. 세 후보의 지지율을 합치면 60% 가까이 된다. 대선에서 50% 이상 지지도를 받으려면 중원·중도 이미지의 후보들을 갖고 있는 것이 강점이다. 한나라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이 후보들이 한나라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들이 분열하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 그것을 한나라당 후보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분열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현재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선출 제도는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가져올 수 있는 소지가 있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후보가 안 될 가능성도 있다. 박 의원이 열린우리당의 정계 개편 논의에 관해 지역주의를 말씀하셨는데 민주당만을 통합 대상으로 하면 그런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권 안과 밖의 대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현실정치 세력뿐만 아니라 현재 정치를 하지 않는 진보개혁 세력이 얼마만 한 양과 질로 가세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런 대통합을 지역주의라고 하기에는 지나치다. 개혁세력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후보가 될 만한 분이 나타날 것이고 그것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해볼 만한 경쟁이 될 수 있다.

박: 여당이 하려는 정계 개편은 다단계 전략이다. 일단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민의 시선을 모으는 고도의 상술이다. 지금 말씀하신 대로 당 밖의 세력을 모아가고, 후보를 오픈프라이머리로 뽑고 대선에 임박해 단일화하는 방식을 노리고 있지 않나. 옛 야당세력이 그런 부분에서 능수능란하기 때문에 한나라당 입장에선 낙관만 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다이내믹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응해서 한나라당도 정치적 다이내믹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사회: 여권이 추진하려는 정계 개편이 결국 반한나라당 혹은 비한나라당 세력의 결집 아닌가. 이전 두 차례의 대선에 비해 한나라당이 집권해서는 안 된다는 정서는 엷어졌고, 오히려 열린우리당 혹은 열린우리당의 대선 후보에 대한 비호감 정도가 더 커진 것 아닌가.

이: 우리 정치에서 정계 개편은 큰 선거 앞에서 항상 있었다. 한나라당은 소폭으로, 우리는 대폭으로 정계 개편을 할 것이다. 반한나라당 연합전선의 유효성에 대한 문제 제기에는 동의한다. 지금은 지형이 분명하지 않지만 분명히 보수세력과 개혁세력은 차이가 있다. 우선 집권여당으로서 할 일을 제대로 하면서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새로운 노선과 비전을 내걸면 전통적 지지구도가 회복될 것이다. 보수수구 세력인 한나라당과 중도개혁 세력의 경쟁구도를 잘 만들면 50만~70만 표 진다. 이런 불리한 구도에서 이기려면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지지자들의 창의력과 역동성, 자발적인 열정과 헌신이다. 그런 면에서는 개혁세력의 지지자들이 한나라당 지지세력보다 훨씬 더 넓게 발현돼왔다. 이것을 잘 결집하면 이길 수도 있다.

다시 문제는 콘텐츠다

박: 다음 대선에서도 지역구도는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시계열적으로 보면 희석돼가고 있다. 한나라당은 수도권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주축이 40대 화이트칼라층이다. 이들이 지닌 여론 확산력에 주목한다. 가장 좋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우리 사회 중심세력이다. 이들의 열망은 무엇인가. 교육·주택·노후복지 문제이다. 이 열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어떤 후보가 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민주평화 개혁세력이니 하는 과거의 담론으로 설득하기 힘들 것이다.

이: 콘텐츠가 중요해질 것이라는 진단에 동의한다. 후보자의 정치적 콘텐츠, 설득력, 호소력, 이미지를 따진다.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주택·교육·육아·의료 등 정책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사회: 과거 두 차례 대선 경험을 보면 초반 대세론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명박 대세론을 어떻게 보나.

박: 실체가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층을 분석하면 수도권, 40대, 화이트칼라가 높다. 그것이 확산력을 발휘해 지지도 격차가 더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이 전 시장을 지지하는 이유는 추진력과 경제 문제 해결능력이다. 내년 대선 때까지 쉽게 꺾일 열망은 아니다. 이를 채워줄 더 좋은 후보가 있으면 바뀌겠지만…. 앞으로 변화가 있을 테고 안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이 전 시장 하면 샐러리맨의 신화, 불도저식 건설, 청계천이 생각난다. 우리 국민 정서상 호소력이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지방선거를 통해 국민에게 강한 이미지를 줬다. 이 전 시장이 시대정신에 잘 맞는지, 국민적 동의를 잘 얻을 수 있는지 여부를 물으면 아직은 글쎄다. 여권에서는 기대할 만한 사람이 아직 없다. 아직 무대에 올라 평가받을 기회가 없었던 측면이 강하다. 현재 거론되는 분들도 귀중하지만 의외의 인물이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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