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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서울 먹고 체할라…

등록 2002-08-22 00:00 수정 2020-05-03 04:22

정부와 매각협상 속전속결로 마무리… 정부 주식 보유·노조 반발 등 다양한 문제 산적

서울은행의 새 주인이 하나은행으로 거의 기울었다. ‘매물’로 나온 지 4년 만이다. 더구나 하나은행과 론스타가 더 좋은 조건을 계속 제시하며 인수경쟁을 벌인 과정은 지금까지의 은행 매각과는 분명히 다른 경험이다. 입찰을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마무리된 것도 현대투신·대한생명·하이닉스반도체 등의 지지부진한 협상과 비교가 된다. 막판에 가격까지 올렸으니 정부로서는 어깨가 으쓱해질 만한 결과다.

중복 점포 및 인력 문제 심각

그러나 서울은행과 하나은행 합병의 시너지 효과에 대해 시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위기다. 노조의 반발이나 법인세 특혜 시비, 불공정 입찰 시비, 주식의 현금화에 대한 시장의 부담 등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은행권 판도 변화와 추가 합병의 회오리도 예측하기 힘들다.

하나은행은 99년 충청은행, 2000년 보람은행을 인수한 바 있다. 이번에 서울은행까지 성사되면 3개 은행을 1∼2년에 하나씩 집어삼킨 셈이다. 하나은행은 여기에 하나증권·하나알리안츠투신운용·알리안츠프랑스생명보험·하나경제연구소 등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불과 몇년 만에 자산규모(86조원)가 꼴찌그룹에서 빅3로 뛰어올랐다.

김승유 행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추가 합병을 이미 선언해둔 상태다. 지금으로는 자산규모 27조원대인 제일은행이 합병 대상으로 유력하다. 우리은행을 훌쩍 뛰어넘는 것은 물론 국민은행을 견제할 만한 2위 은행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다. ㄷ증권 등 증권사 합병 시나리오도 흘러나오고, 내년 8월 방카슈랑스(은행 창구에서의 보험상품 판매)에 대비해 보험사와 공동으로 판매 자회사를 만드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하나은행은 이 자회사 체제를 곧 금융지주회사로 바꿔 명실상부한 금융종합그룹으로 키운다는 전략을 세워놓은 상태다. 김 행장도 금융지주회사 설립 가능성을 여러 차례 내비쳤고, 더구나 지난 7월부터는 금융지주회사 자회사끼리는 고객의 정보공유가 가능하고 자회사 편입도 수월해졌다.

하나은행의 이런 전략은 시너지 효과를 전제로 한다. 일단 단순 합산으로 치면 합병은행의 내년 당기순이익은 7천억∼8천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여기에 법인세 감면 효과가 2006년까지 유지되는 것도 주가에는 긍정적이다. 서울은행과의 합병은 서울은행쪽이 강점을 가진 소비자금융·신탁·카드 등에서 하나은행의 영업력 신장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영업의 핵인 지점이 두배 가까이 늘어나는 것도 ‘규모의 경제’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인원도 7천명을 넘어서고 점포 수도 600여개로 늘어난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오히려 우려의 목소리가 더 많다.

무엇보다 중복점포 및 인력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양쪽의 점포 가운데 3분의 1 이상인 114개가 반경 1km 안에 겹쳐 있다. 두 은행 팀장급의 연령 격차는 6∼7살이나 돼 화학적 융합은커녕 조직의 파벌화나 만성적인 대립을 불러올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전산 투자가 부진한 서울은행쪽에 투자해야 할 비용, 소액주주들의 주식매수 청구권 행사 등도 합병은행에는 모두 큰 비용 요인이다.

정부가 합병은행의 1대주주(25% 안팎)가 되는 것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정부 지분은 몇년 안에 시장에 나올 수밖에 없다. 일부를 블록세일 방식에 의해 알리안츠(11.8%)나 코오롱(5.8%)에 넘긴다고 해도 나머지만으로도 합병은행의 주가는 물론 시장이 휘청거릴 수 있다.



하나은행과 서울은행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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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서울은행




 총자산


 57조9900억원


 26조5천억원




 상반기 순이익


 2267억원


 1100억원




 지점


 301개


 294개




 인원


 3800명


 3800명




 BIS비율(01년 말)


 10.29


 9.22




 부실채권비율(01년 말)


 2.4%


 2.4%




 ROA(01년 말)


 0.80


 0.51




 ROE(01년 말)


 17.57


 15.60




 * ROA: 총자산순이익률, ROE: 자기자본순이익률, BIS비율: 국제결제은행기준 자기자본비율



“또 주식으로 받느냐”

두 은행의 영업방식도 많이 다르다. 같은 가계대출이라도 서울은행은 48%가 신용대출이지만 하나은행은 72%가 보증·담보대출이다. 반면 하나은행은 서울은행과 달리 기업에 대해서는 신용대출(63.2%)을 잘 해주고 있다. 또 합병은행의 자산규모가 세계 기준으로 171위에서 겨우 124위로 올라서는 것도 “대형 투자은행 창출”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의 자산 순위도 세계 70위에 불과하다. 서울은행의 한 임원은 “우물 안에서의 시장 지배력만 증가할 뿐 인력감축 이외에 그 어떤 시너지 효과를 전제하는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합병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일단 노조를 달래는 것부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은행 노조원들은 얼마 전 파업 찬반투표에서 무려 99.1%가 찬성했다. 예금보험공사가 서울은행에 인력감축을 요구하기로 한 것도 불에 기름을 부을 수 있는 사안이다.

입찰 불공정 시비가 제소 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이 그동안 서울은행 인수자로 하나은행을 염두에 둔 발언을 공공연히 한 것은 ‘하나은행 내정설’로까지 번졌고 “서울은행 매각의 목적이 은행 민영화인지 정부 주도의 대형은행 창출인지 모르겠다”는 비난을 사야 했다. 이 과정에 “법인세 감면분이 매각가격에 제대로 반영됐느냐”와 “법인세 감면 혜택을 위해 누적결손금이 많고 덩치도 작은 서울은행을 존속법인으로 하는 편법을 택했다”는 시빗거리도 등장했다.

정부가 공적자금 조기회수라는 원칙에서 벗어난 것을 국민에게 어떻게 설득하느냐도 과제다. 현금을 제시한 론스타와는 달리 하나은행이 제시한 합병은행의 주식은 당장 내다팔 수 없는데다 향후 주가도 예측하기 힘든 탓이다. 정부가 팔아야 할 주식이 제일·조흥·외환·제주·우리은행 등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또 주식이냐. 그 많은 주식을 언제 내다파느냐”는 지적이 불가피한 셈이다. 이런 물량 부담은 불만층을 서울은행 노조원에서 증시 참여자 모두로 확대시킬 수도 있다.

황순구 기자/ 한겨레 경제부 hs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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