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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쇼크’ 넘어 ‘스태그플레이션’ 기로

‘중동발 리스크’ 불안 심리 확산… 정부 위기관리능력 시험대
등록 2026-04-02 19:26 수정 2026-04-04 23:24
2026년 3월29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환전소 시세표에 원-달러 환율이 1502원으로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2026년 3월29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환전소 시세표에 원-달러 환율이 1502원으로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2026년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기습적인 이란 침공으로 시작된 중동 전쟁이 한 달 넘게 이어지며 한국 경제 전반에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충격은 복합적이다. ‘곧 끝난다’던 전쟁이 오락가락 발언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택들로 인해 탈출구를 찾지 못하며 유가·환율·심리가 모두 흔들리고 있다.

유가와 환율의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해도 최근 들어서는 ‘쓰레기봉투’ 등 실제 공급에 차질이 없는 일부 생활필수품의 사재기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10원이라도 싼 주유소 앞에는 자동차가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전쟁이 유가에, 유가가 환율에, 환율이 수출에, 기업 실적이 다시 주식에 영향을 미치며 경제 활력 전반이 불안 심리에 잠기는 것이다.

 

고유가·고환율·주가 하락 ‘삼중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하기 직전 6000선을 넘어섰던 코스피는 3월 초 이틀 사이 19%에 이르는 기록적 급락을 보였다. 침공 개시 뒤 첫 거래일인 3월3일 7% 넘게 하락한 데 이어, 다음날에는 12% 이상 떨어지며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이후 기술적 반등이 있었지만 현재도 가까스로 5100선 수준에 머물며 5000선을 심리적 저항선으로 버티는 중이다. 한국은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 전쟁의 파급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원유 수입은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무역 중심의 경제구조를 갖춘 이후에 유가는 그 자체가 한국 경제의 ‘원가’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자원을 수입해 제품을 수출하는 한국의 경제구조는 전쟁 같은 글로벌 이슈가 생기면 다른 나라보다 빨리 움츠러들고 늦게 회복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 들어 폭발적으로 성장한 증시 역시 전쟁이 발발하자 예견되던 구조적 위험을 노출했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 두 반도체 기업이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그 비중의 상당수를 외국인 기관 투자가 받치는 상황에서 글로벌 위기에 대비한 국외 자본의 위험회피가 시작된 뒤 시장 변동폭이 커지게 됐다. 전쟁 직전까지 두 반도체의 쌍끌이로 인공지능(AI) 서버와 데이터센터 수요가 늘며 절정의 ‘AI 반도체 랠리’ 국면을 보여주던 터였다. 반도체 주가 상승이 코스피 6000 시대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던 상황에서 예측하지 못한 전쟁 이슈가 발생하자 낙폭 조정이 커졌고, 지수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됐다. 전쟁 직전까지 이어진 가파른 상승이 조정폭을 키웠고, 구조를 볼 시간도 없이 ‘영혼’까지 끌어 사들였던 투자자들의 선택이 결과적 원인이 된 상황이다.

전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적 분명한 경로를 따른다. 언제나 국제유가 상승이 시작점이다. 전쟁 이후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75달러 수준에서 110달러 안팎까지 상승했다. 일각에선 150달러를 돌파하리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왔지만 잠시간의 휴전으로 그나마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유가 상승은 언제나 환율 상승을 동반한다. 원-달러 환율은 전쟁 직전 1300원대 초반에서 1500원에 가까운 수준까지 올라섰다. 이 두 요인이 결합하면 수입물가 상승과 수출 부진의 악순환이 따라붙는다. 원유뿐 아니라 곡물, 비철금속, 화학 원료 등 달러로 거래되는 대부분의 원자재가 공급과 유통 불안을 겪는다. 이 과정 초입에 들어선 듯한 분위기만 연출돼도, 생산비와 물류비 상승 책임이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에너지는 수입에, 성장은 수출에, 금융은 반도체에 기대는 한국 경제의 구조에서 전쟁은 이 세 요소에 모두 암운을 드리운다.

 

생수·라면·종량제 봉투 사재기 조짐

 

특히 전쟁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은 경제 심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수, 라면, 쓰레기 종량제 봉투 등 생필품을 미리 사둬야 한다는 확인되지 않은 입소문까지 도는 것이다. 정부와 유통업계는 사재기 상황에 이른 대부분 품목이 ‘실제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고 급히 진화에 나서지만 ‘대비 차원에서 사둬야 한다’는 예방적 소비 심리까지는 막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초기 특정 품목의 공급 차질과 마주했던 학습 경험이 이번 사재기 심리를 제어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그나마 정부의 대응 속도와 방향이 비교적 능동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대책회의가 꾸려졌고, 비서실장과 총리를 중심으로 5개 실무 대응단(거시경제·물가대응반, 에너지수급반, 금융안정반, 민생복지반, 해외상황관리반)이 전쟁 상황을 챙기고 있다. 3월31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26조2천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전쟁추경) 편성을 의결했다. 정부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소비자, 특히 소득 하위 70%의 부담으로 작동하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를 대비해 유류세 인하, 민간 차량 5부제 같은 에너지 절감 정책도 시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상징적 조치일 뿐, 실질적인 에너지 절감 효과는 제한적이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차량 5부제를 한다고 해도 산업과 물류 분야의 에너지 소비는 줄이기 어렵고, 오히려 과도해지면 경제 위축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한국 경제는 물론 글로벌 경기를 좌우할 문제는 지상전 개시와 호르무즈해협 봉쇄다. 미국이 이란과의 지상전에 뛰어들고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대해 계속 나 몰라라 하면 글로벌 경기 전체가 헤어나기 힘든 늪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31일(현지시각) 이란 전쟁을 2~3주 내에 종료하고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호르무즈해협 문제는 해협 이용국들이 알아서 하라고 발언했다.

 

종전 시점 안갯속, 커지는 불확실성

 

한국 경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돌파하고,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 백약이 무효한 통제 불능 상태에 진입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닥치고 성장’을 기조로 전진해온 한국 경제가 경제학적 관점에서 사실상 유일한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던 시기는 바로 1979년 ‘2차 오일쇼크’ 때다. 당시 유가가 급등하며 물가상승률이 20%에 육박했고, 실업이 급증하며 경제성장률은 1년 사이 7.6% 낙하했다. 곧 어쩔 수 없는 종전이 이뤄질 듯하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정치적 격변 이후 순항하던 이재명 정부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경제적 변동성 앞에 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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