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명동에 있는 이니스프리 매장 모습. 이니스프리는 2023년 이 매장처럼 로고 변경 등 리브랜딩을 단행했지만, 매출은 크게 늘지 않아 시장에서 ‘리브랜딩 실패가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최근 경북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캐럴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쇼핑 인증샷을 올리고, 각국 정상 배우자들까지 앞다퉈 체험에 나서면서 ‘한국 화장품’의 인기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한때 ‘케이(K)-뷰티’를 맨 앞에서 이끌었던 브랜드 중 하나인 이니스프리 점주들은 쏟아지는 뉴스를 보며 “폐업조차 할 수 없는 처지”라며 눈물짓고 있다. 이니스프리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모레퍼시픽 자회사인 이니스프리는 ‘자연주의’ 콘셉트를 내세우며 2016년 국내외 매출 1조원을 돌파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제주산 청정 원료를 사용한 화장품을 합리적인 가격대로 선보인다는 전략이 먹히면서 한국을 넘어 중국 소비자에게까지 인기를 끌었다. 2017년 직영점(315개)과 가맹점(765개)을 합쳐 점포 수가 1080개에 이르며 화장품 로드숍 업계를 평정했다. 13년째 이니스프리 매장을 운영하는 ㄱ씨는 “본사 권유로 복수 매장을 운영하는 점주도 많았고 정말 신이 나서 장사를 했던 때”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사태는 화장품 업계의 판도는 물론 점주들의 삶을 바꿔놓았다. 코로나19로 유통경로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위주로 변화하면서 로드숍 중심의 이니스프리는 내리막을 탔다. 1천 개 넘던 매장 수는 2020년 656개, 2023년 338개, 2025년 147개로 급격히 줄었다. 점주 ㄴ씨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붙들고 밤낮으로 일했지만, 월세도 못 건지고 있다. 지난 4~5년간 매출이 1천만원 밑으로 떨어지면서 물품비(상품 구매 대금) 600만원, 월세 300만원, 전기요금 등 공과금을 제하면 마이너스라 더는 버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보공개서를 보면 가맹점 연평균 매출액은 2016년 대비 팬데믹 시기에 3분의 1 토막이 났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비슷한 수준이다.

한때 1400개가 넘었던 이니스프리 매장 상품 수는 300여 개까지 줄었다. 상자와 가림막으로 빈 매대를 가려놓은 이니스프리 매장 모습.
이니스프리 점주들은 코로나19 여파보다 본사가 보인 태도에 더욱 절망했다. 본사가 점주와 상생을 도모하기보단 온라인 매출 증대에만 골몰한다는 게 점주들의 주장이다. 온라인 할인율이 오프라인에 견줘 최소 20%에서 최대 50%까지 높은 탓에 소비자가 매장을 찾을 유인책이 없다는 설명이다. “쿠팡 등 온라인에는 본사가 점주들에게 공급하는 가격보다 싼 제품이 넘쳐나요. 공급가 4만700원(매장 판매가 5만1800원)짜리 퍼펙트 인텐시브 스킨케어 2종 세트가 쿠팡에서는 3만2130원에 팔립니다. 본사 공급가보다 낮은 온라인과 어떻게 경쟁할까요?”(점주 ㄹ씨)
본사는 “쿠팡은 직매입·할인 판매를 하기에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강변하지만, 온라인 위주의 정책은 본사가 직접 입점한 네이버 등은 물론 본사의 공식몰에서조차 마찬가지다. 점주 ㄹ씨는 “본사 온라인 공식몰에서도 매장 공급가 1만5400원짜리(매장 판매가 1만8200원) 레티놀 패드가 1만4천원에 팔리는 등 오프라인 매장보다 8~20% 이상 낮은 품목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소비자의 재구매를 유도하는 ‘증정품’(샘플)도 온·오프라인 차별이 심각하다. 온라인에서는 50㎖ 세럼을 사면 30㎖를 추가로 증정하면서 가맹점에는 매출에 따라 증정을 최대 5개 이하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점주 ㅁ씨는 “지인들이 부탁하는 상품을 본사 공식몰에서 사서 판매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진다. 샘플 15㎖ 1개에 보통 500~1천원인데, 점주는 자기 돈으로 사서 고객에게 얹어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고 호소했다.
‘라이브 방송’(라방)도 점주들의 숨통을 죄는 요인이다. 본사는 매달 1~2회에서 많게는 5회까지 각종 채널을 통해 라방을 진행하는데, 무차별적인 할인, 적립금, 증정품을 뿌려댄다. 점주 ㅂ씨는 “최소한 라방 횟수와 일시를 공유하고 사전에 협의해달라고 본사에 아무리 얘기해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급기야 본사는 2023년 3월, 오프라인 화장품 편집숍 절대 강자인 씨제이(CJ) 올리브영 입점을 결정했다. “매출보단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기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점주들에겐 ‘사망 선고’와 같았다. 점주 ㄷ씨는 “애초 올리브영에 입점 상품은 30개 미만, 이니스프리 가맹점 공백 상권에만 입점, 마이숍 수수료율 25%에서 28%로 상향 등에 합의했지만, 지켜진 것은 마이숍 수수료율 3% 상향뿐이었다”고 했다. 마이숍 수수료는 매장을 통해 회원 가입한 고객이 본사 온라인 공식몰에서 상품을 구매해 매출이 발생할 경우, 이를 본사가 일정 부분 점주들과 나누는 형태다. 점주들은 “우리가 모아온 고객을 통해 발생한 수익으로 본사가 생색을 내는 것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2024년 12월 말, 본사는 점주협의회 대표들과 ‘상생협약서’를 작성했는데, 내용을 보면 ‘가맹점당 상생지원금 1천만원을 2024년 12월부터 10개월간 매월 100만원씩 지급한다’ ‘올리브영 등 멀티브랜드숍(MBS) 입점의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합의에 반하는 내용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점주 ㄱ씨는 “상생협약서에 대해 점주 전체의 의사를 묻는 공식적인 과정조차 없었다. 지금은 공백 상권뿐 아니라 모든 올리브영에 이니스프리 제품이 입점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점주 ㄴ씨는 “매장을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올리브영 2곳이 있다. 거기서 이니스프리 제품을 전용 패키지로 판매하는데, 누가 우리 매장에서 사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유통업계 최대 할인행사인 블랙프라이데이(11월6~19일)지만, 점주들은 망연자실한 상태다. 1400개 넘던 상품 종류가 이제 300여 개밖에 없어 매대 곳곳이 비어 있다. 본사가 수익성이 낮은 제품을 단종시키고 신상품 개발에 힘을 쏟지 않는 탓이다. 오프라인에선 11월6일에 시작한 블랙프라이데이지만, 온라인에서는 이미 1일부터 무차별 할인행사가 진행 중이다. “우리는 이니스프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본사가 쿠팡·올리브영 전용 상품처럼, 매장 전용 상품을 출시하고 온라인과 비슷한 할인율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이게 그렇게 큰 요구인가요?”(점주 ㅁ씨)
남아 있는 매장 가운데 30개 가까이가 2025년 안에 폐점을 고민 중이지만, 점주들은 폐점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형편이다. 권리금·인테리어비 등 매몰비용이 큰데다 본사가 재고품 환입조차 책임져주지 않는 탓이다. 점주 ㄹ씨는 “소비자가 기준 1천만원까지만 환입해준다고 한다. 빚에 빚을 내서 버텨왔는데, 본사는 적절한 폐점 지원책조차 내놓지 않는다”며 “알아서 고사되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면 뭐냐. 차라리 엘지생활건강(더페이스샵·네이처컬렉션)처럼 사업 철수를 선언하고 ‘질서 있는 폐점’에 나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이니스프리 본사 쪽은 오프라인 사업 철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본사 쪽은 “온·오프라인 할인율이 유사한 수준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단, 각 채널 프로모션 등 특정 시점에 할인율 차이가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며 “판촉 사은품도 동일하게 제공하고, 추가 필요시 가맹점에서 유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본사 쪽은 이어 “폐점시 점포 내 재고 전량을 환입하고, 계약기간 내 폐점해도 인테리어 및 설비 지원 위약금 전액을 면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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