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딥시크의 누리집. 상단에 미국 오픈에이아이(AI)와 경쟁한다는 사실을 명시했다. 화면 갈무리.
“중국 청년 량원펑과 딥시크(DeepSeek)의 부상에 서양 기술계는 왜 두려움에 떨까? 140명도 안 되는 중국 정예팀이 ‘샤오미 플러스 소총’을 써서 미국이 ‘비행기와 대포’로 지켜온 기술적 우위를 무너뜨렸다.” “실리콘밸리는 불안해하고, 월스트리트는 당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5천억달러 규모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와 빅테크(거대 기술 기업)의 막대한 자본 지출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인 바이두에서 최근 ‘중국발 생성형 인공지능 열풍’을 몰고 온 기업 ‘딥시크’에 대해 검색하면 쏟아지는 기사들의 제목과 내용들이다. 새해를 맞을 때 폭죽을 쏘아올리는 중국의 풍습처럼, 딥시크는 2025년 1월 화려하게 등장해 중국인들이 축포를 터뜨리게 했다. 기쁨의 근원은 ‘미국을 이겼다’는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을 둘러싸고 지난 2년여 동안 팽팽해진 미중 패권전쟁의 긴장감이 2025년 초 폭발 지경으로 대중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을 막고 ‘챗지피티(ChatGPT) 열풍’을 일으킨 2022년 말 이후, 세계는 미국의 독주를 지켜보면서도 중국의 약진 가능성을 우려해왔다. 결국 2025년 2월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딥시크’는 애플 앱스토어의 다운로드 앱 1위 자리를 꿰찼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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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열풍은 1월20일, 딥시크가 ‘미국 빅테크 대비 10분의 1의 비용’을 앞세운 생성형 인공지능 모델 ‘딥시크 알(R)1’을 대중에 무료로 공개하면서 점화됐다. 그들은 지난 2년여 동안 세계 최정상의 지위를 누려온 미국의 인공지능 대표기업 오픈에이아이(AI)의 최신모델을 정확히 조준했다. 누리집(홈페이지)을 통해 “딥시크는 오픈AI의 오(o)1 모델과 경쟁하고 있다”며 미국 디즈니의 대표작 ‘겨울왕국’의 주제곡 제목이기도 한 ‘미지의 세계로’(Into the unknown)라는 문구를 적어두었다.
이로써 그동안 ‘미지’(Unknown)의 영역에 갇힌 듯했던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이 베일을 벗었다. 이미 2023년 기준으로 중국은 전세계 인공지능 논문 출판의 40%를 점유했는데 기업 중심인 미국과 달리 대부분 학계 주도였다. 국가 중심으로 막대한 데이터를 보유한 중국은 2024년 ‘AI 플러스’라는 정부 차원의 인공지능 산업 육성책을 내놓은 상황이었다. 2022년 10월부터 미국이 인공지능용 고성능 칩의 중국 수출을 봉쇄해왔기에 중국의 대응에 관심이 집중돼왔다.
딥시크는 이런 호기심을 한 방에 날리려는 듯 ‘알1’의 학습 데이터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개방형(오픈소스)으로 공개했다. 게다가 상세한 기술보고서까지 함께 내놔 자신들이 얼마나 낮은 비용으로 고성능 모델을 만들었는지를 만천하에 자랑했다. ‘오픈’이라는 이름과 달리 폐쇄형으로 학습 데이터부터 훈련 방법까지 모두 비밀에 부치는 오픈AI와 정반대의 행보였다.
기술보고서를 본 전세계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놀랍다는 반응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딥시크 쇼크’라 불릴 정도의 분위기가 조성됐다. 소모되는 컴퓨팅 파워를 줄인 아이디어나 ‘규모의 법칙’에 따른 사전학습이 아닌 강화학습을 통해 ‘아하 모멘트’(기계가 깨닫는 순간)를 이끌어낸 방법 등에서 ‘생각의 전환’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샘 올트먼조차 1월28일 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가성비를 고려할 때 인상적인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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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시크 알1’은 강화학습을 통해 추론 능력을 보유한 ‘사고형 인공지능’에 속한다. 딥시크는 기술보고서를 통해 ‘알1’이 미국 수학경시대회 테스트에서 오픈AI의 ‘오1’을 이겼다고 주장했다. 그간 오픈AI는 ‘오1’이 미국 수학 올림피아드 예선에서 미국 학생 상위 500위에 들고 물리·생물학·화학 벤치마크에서 인간 박사 수준을 넘어섰다고 자랑해왔다.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앞줄 오른쪽)이 2025년 1월20일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주재한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갈무리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미국의 봉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저성능 반도체를 활용해 저비용으로 고성능 인공지능 개발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딥시크는 ‘알1’을 학습시키는 데 사용한 ‘딥시크 브이(V)3’의 훈련 비용이 557만달러(80억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기술보고서를 보면 “1조 개의 토큰(인공지능이 인식하는 문자 단위)을 학습하는 데 2048개의 H800(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성능을 낮춘 반도체) 그래픽처리장치(GPU) 클러스터에서 3.7일이 걸린다. 사전 학습 단계는 2개월 이내에 완료되고 사후 학습 시간을 합치면 학습비용은 총 557만달러에 불과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알1’과 가장 비슷한 미국 메타의 오픈소스 모델 ‘라마(Llama) 3.1’의 경우 엔비디아의 고성능 인공지능 칩인 H100을 1만6천 개 써서 훈련했기에 수억달러 이상의 비용이 들었다.
인공지능 업계가 딥시크의 설명을 모두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22년 10월부터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고성능 반도체 수출길을 봉쇄했기에 딥시크가 H800만을 사용했다고 하지만 이미 확보해놓은 H100이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또 딥시크 모델들을 훈련하는 데 오픈AI의 생성형 인공지능 결괏값이 활용됐다는 의혹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천안문(톈안먼) 사태 등에 제대로 답을 못한다며 딥시크 답변의 ‘중국 편향’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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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딥시크의 등장은 이미 ‘제2의 스푸트니크 충격’으로 불리고 있는 상황이다. 구소련이 1957년에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하면서 미국의 우주 산업이 구소련보다 뒤처졌음을 확인시켰던 사건을 상기시킨다는 뜻이다. 이후 미-소 간 ‘우주 경쟁’이 격화된 상황을 되짚으면 ‘딥시크 쇼크’가 가져올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다.
중국의 부상은 이미 돈이 몰려 있어 작은 변동성에도 크게 반응하는 미국 인공지능 시장을 뒤흔들었다. ‘딥시크 알1’이 공개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인 1월27~31일 엔비디아의 주가가 15.8%까지 하락했다. 빅테크들조차 없어서 못 사던, 개당 수만달러에 달하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칩 없이도 인공지능 기술을 고도화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고개를 든 것이다.
딥시크는 중국 저장대 전자정보공학 석사 출신인 량원펑(40)이 2023년 5월 설립한 신생기업(스타트업)이다. 그는 대학 졸업 뒤인 2015년 ‘하이-플라이어’(High-Flyer)라는 헤지펀드를 설립한 뒤 인공지능 투자기법을 접목해 큰 성공을 거뒀다. 운용자산이 80억달러(11조6천억원)에 달해 중국 헤지펀드 업계의 대표주자가 된 그는 소규모로 운영해오던 인공지능 연구소를 2023년 독립회사로 세웠고, 그곳이 바로 딥시크다. 미국의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도 2019년 가상자산 기업인 월드코인을 설립했으니 ‘돈’과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대한 깊은 관심이라는 면에서 량원펑과 겹친다.
생성형 인공지능 챗봇을 대중에 무료로 공개함으로써 ‘열풍’을 일으킨 방식도 두 회사가 비슷하다. 2022년 11월 말 미국의 신생기업 오픈AI 역시 ‘챗지피티’의 베타버전을 웹상에 공개한 이후 2년여 동안 생성형 인공지능 열풍의 상징으로 군림해왔다. ‘헛소리’도 마구 해대는 서비스를 공개해버리는 일은 규모 있는 기업이 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챗지피티 돌풍’ 뒤 미국이 독주하던 지난 2년여 동안에는 그래도 인공지능 ‘부머’(Boomer·개발론자)와 ‘두머’(Doomer·파멸론자) 목소리가 함께 나왔다는 점이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경쟁력을 갖춰야만 살아남는다고 하는 ‘인공지능 진흥론자'에 ‘인공지능 규제·거품론자’들이 맞서면서 국제적으로 인공지능 윤리와 규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2025년 1월21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인공지능(AI) 투자 계획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 자리에 샘 올트먼 오픈에이아이(AI) 최고경영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오른쪽부터)이 참석해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듣고 있다. UPI 연합뉴스
하지만 ‘중국발 딥시크 쇼크’ 이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중국이 따라오는데 가만있을 수 없다’는 식의 국가 간 패권경쟁 양상이 강화되자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개발에 대한 ‘신중론’이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미국의 행보는 발 빠르다. 중국이 ‘딥시크 알1’을 내놓은 다음날이었던 1월21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오픈AI와 오라클, 일본 소프트뱅크와 연합해 인공지능 인프라에 4년에 걸쳐 5천억달러(725조원)를 쏟아붓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돈을 쏟아붓는 개발 계획’과 함께 인공지능 규제책은 종잇장처럼 날려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타게이트’를 발표하고 이틀 뒤인 1월23일 ‘바이든 행정부의 유해한 인공지능 정책을 철폐하고 미국의 세계적 인공지능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인공지능 개발·배포를 통제해 민간 부문의 혁신을 저해한 바이든의 인공지능 행정명령을 철회하고 인공지능 분야에서 미국의 우위를 유지·강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내용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열풍 초기인 2023년부터 ‘국가 간 패권경쟁과 국가단위의 동맹 출현’을 점쳤던 하정우 네이버 퓨쳐AI 센터장은 2월3일 한겨레21과 만나 “딥시크 열풍은 미국 주도 패권의 판을 깨버린 사건이며 생성형 인공지능은 더 이상 기술로만 볼 수 없고 향후 미국 진영과 중국 진영의 싸움이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기업들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카카오는 2월4일 방한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와 만난 뒤 “최고의 인공지능 기술 회사인 오픈AI와 한국 시장에서 인공지능 서비스 대중화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카카오는 딥시크의 사내 사용을 금지했다.
딥시크를 통해 전세계 개인정보가 중국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한 경계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무료 서비스를 통해 입력된 정보는 모두 딥시크의 서버로 보내진다. 딥시크는 약관을 통해 사용자의 ‘키보드 리듬’까지 수집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같은 정보는 ‘개인 식별화’에 사용될 수 있다. 이탈리아, 대만에 이어 오스트레일리아가 정부 기기에서 딥시크 사용을 금지했다. 토니 버크 오스트레일리아 내무부 장관은 2월4일 “딥시크는 용납할 수 없는 위험”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딥시크 사용 금지에 나섰다.
문제는 이렇게 정신없는 국가 간 패권전쟁 구도가 개개인의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이냐는 것이다. ‘상대를 이겨야 내가 사는’ 식의 논리가 팽배해지고 생성형 인공지능 산업에 끝없이 돈이 몰리면서 개인 사용자들의 권리와 인류를 위한 미래에 대한 논의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2025년 인공지능 패권전쟁 구도가 불안한 까닭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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