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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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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 재벌이 상속받는 주식 할증평가도 없애나

2년 연속 세수 결손에도 ‘부자 감세 급발진’, 2025년 시행 예정 금투세 폐지·상속세 감세 시동… 야당도 상속세 공제 한도 상향 등 ‘자산가’ 돌봄 골몰
등록 2024-07-19 22:30 수정 2024-07-23 21:07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7월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및 역동 경제 로드맵 발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7월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및 역동 경제 로드맵 발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전임 정부의 ‘재정 만능주의’를 벗어나 건전 재정 기조로 전환했다고 자평하는 윤석열 정부의 나라 살림 적자 폭이 1년 전보다 더 커졌다. 법인세 등 국세 수입이 줄고 기초연금처럼 정부가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사회복지 예산은 늘어난 까닭이다. ‘세수 펑크’ 우려에도 정부는 재정 건전성과 감세라는,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매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대기업 재벌가와 자산가들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하는 상속세 완화에 시동을 걸었다.

세수 펑크에도 감세 드라이브

2024년 7월11일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월간 재정동향’을 보면, 2024년 1~5월 실질적인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74조4천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 폭은 전년도 같은 기간(52조5천억원) 보다 약 22조원 늘어났다. 2023년 기업들의 실적이 부진했을 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법인세율 인하 정책이 적용되면서 법인세 수입이 감소한 영향이 크다. 2023년 56조원대라는 역대 최대 세수 결손에 이어 2년 연속 세수 결손이 확실시된다. 세수 악화 우려에도 정부는 여전히 증세엔 선을 긋고 있다. 7월11일 글로벌금융학회의 정책심포지엄 및 학술대회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증세하면 단기적으로 세수는 들어올지 모르지만 안정적이지 않다”며 “재정지출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4년 7월11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글로벌금융학회 정책심포지엄 및 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4년 7월11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글로벌금융학회 정책심포지엄 및 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일관적인 경제정책 기조는 감세를 통한 경제 활성화다. 윤 정부는 출범 이후 법인세와 더불어, 주택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등 부동산 세제를 완화했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2025년부터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공공연하게 강조해왔다. 금투세는 주식이나 채권, 펀드 등 금융투자로 얻은 이익에 과세하는 것인데, 애초 시행 시점이 2023년이었지만 여야 합의로 2년 연기됐다. 또 정부·여당은 2025년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투자소득 과세를 유예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여기에다 상속세 감세까지 더하려 한다는 점이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024년 6월16일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외국에 비해 매우 높다”며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를 주장한 데 이어, 기재부도 7월3일 ‘역동 경제 로드맵’과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며 ‘최대주주 주식할증평가 폐지’를 공식화했다. 기업 가치를 제고해 증시를 부양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최대주주가 주식을 상속·증여할 때 적용되는 할증 과세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은 최대주주가 주식을 상속할 때 그 주식 가치의 20%를 할증한 뒤 상속가액을 산정해 상속세를 부과하도록 한다. 예컨대 한 기업의 최대주주 ㄱ씨가 가진 주식 1억원어치를 자녀가 상속하게 되면, 이 자녀는 1억원에 20%를 가산해 1억2천만원을 기준으로 삼아 상속세를 내야 한다. 1993년 도입된 이 조항은 최대주주의 주식엔 이른바 ‘경영권(지배권) 프리미엄’이 있어 이를 반영해 과세해야 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재벌 대기업에 수혜 집중

경영권 프리미엄은 기업 간 인수·합병 과정에서 지배주주가 보유한 지분을 거래할 때 얹게 되는 일종의 ‘웃돈’이다. 경영권을 장악한 지배주주의 주식 1주는 일반주주가 가진 1주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 지배주주는 경영진을 선택할 수 있고 보상과 배당, 투자를 결정하거나 자산을 매수하는 등 회사의 기본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이런 사적 이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최대주주의 주식 지분은 시장가격보다 높게 거래된다. 2019년 경제 전문 민간연구소인 경제개혁연구소가 2014∼2018년 지배주주의 지분 이전으로 최대주주가 바뀐 기업들을 분석한 결과, 경영권 프리미엄이 시장가격보다 평균 45% 이상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최대주주 할증평가는 지배주주가 사망해 자녀가 그 지분을 물려받을 때 생기는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포함해 과세한다. 일률적인 할증 평가가 ‘조세 평등주의와 실질과세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몇 차례 제기되기도 했지만, 헌법재판소는 그때마다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이 조항이 “공평한 조세부담을 통한 조세정의의 실현 요구, 징세의 효율성이라는 조세정책적·기술적 요구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쪽에선 최대주주 주식할증평가가 과하기 때문에 불공평하다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오히려 세율이 너무 낮기 때문에 ‘할인 과세’가 됐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최대주주 할증평가는 기업 규모와 최대주주가 보유한 지분율에 따라 할증률이 10~30%로 다르게 적용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중소기업엔 할증을 적용하지 않고, 중견·대기업 최대주주 보유 주식에 단일 20%를 할증하는 것으로 세법이 개정됐다. 이후 직전 3년의 평균 매출액이 5천억원 미만인 중견기업도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2024년 7월8일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2024년 7월8일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2024년 7월8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게 이렇게 질의했다. “경제개혁연구소 분석 자료에 의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은 48~68%로 확인된다. 한국이에스지(ESG)기준원 발표 자료에 의하더라도 평균 50% 내외에서 형성되고 있고, 이는 미국 등의 경영권 프리미엄보다 상대적으로 높다고 한다. 각종 연구 결과를 보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20%로 일률 가산하는 것은, 경제적 실질에 비춰 봤을 때 할증 아니라 할인 아닌가?” 여기에 최 부총리는 “만약 그 연구 결과가 맞는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데, 여러 상황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제도 자체가 너무 경직적이고 외국에도 법률에 이렇게 할증 평가를 하는 게 많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처럼 법에 일률적으로 20%를 명시한 나라가 드문 건 사실이지만, 다른 나라도 경영권 프리미엄의 실체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일본은 국세청 예규를 통해, 미국은 판례를 통해서 경영권 프리미엄을 인식한다”고 말했다.

2019년 경제개혁연구소 보고서 작성자 중 한 명인 최한수 경북대 교수도 정부의 폐지 방침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최 교수는 “모든 나라에서 (개인들의) 유산 상속이 이뤄지지만 한국 재벌 대기업처럼 지배주주의 자리를 몇 대에 걸쳐 가족이 상속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배주주의 자리가 아니라 단지 지분이 상속되는 것이고, 자녀들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으니 상속 과정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을 따질 이유가 없다”고 했다. 가족 지배를 벗어나 소유와 경영 분리가 보편적인 나라들과 한국 사정을 단순 비교할 순 없다는 것이다.

야당은 ‘중산층 세 부담 완화’ 나서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상속세 감세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은 ‘부자 감세 반대, 중산층 세 부담 완화 찬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민주당은 상속세율 완화와 최대주주 주식할증평가 폐지를 대기업과 상층 자산가를 위한 감세라고 보면서도, 상속 세제 개편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행 상속세 공제한도(배우자 최소 5억원·일괄 5억원)는 1997년 설정된 뒤 한 차례도 개편되지 않았다. 서울 아파트값이 평균 10억원을 넘고, 과세 대상자가 늘어난 만큼 상속세 공제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국세청의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상속세를 납부한 사람은 2019년 8357명에서 2023년 1만9944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민주당 조세개혁티에프(TF)에 속한 임광현 원내부대표는 중산층 세 부담 완화를 위해 상속세 일괄 공제액을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높이는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상속 건수를 놓고 보면 실제 상속세를 납부하는 사람의 비중은 크지 않다. 2023년 전체 피상속인 수(상속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는 29만2545명이었는데, 과세 대상이 된 1만9944명이 차지하는 비율은 6.8%에 불과하다. 각종 공제를 적용하면 전체 상속자의 93.2%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의미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원장을 역임한 김유찬 홍익대 교수는 “과거엔 10억원을 물려받는 게 굉장히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전체 상속인의 1~2%만 상속세를 냈지만, 지금은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며 “양극화가 심해지고, 상위계층이 보유한 자산의 가치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과거 100명 중 1~2명만 세금을 냈던 수준에 머물도록 공제한도를 늘려주자’는 건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세수 결손이 큰 상황에서 그걸 왜 포기하는지에 대한 명분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4년 7월10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하면서 금융투자소득세 시행 유예를 언급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즉각 “논의에 착수하자”고 호응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4년 7월10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하면서 금융투자소득세 시행 유예를 언급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즉각 “논의에 착수하자”고 호응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세법 개정안에 ‘서민’ 자리 있을까

기재부는 7월 말 발표할 세법 개정안을 두고 구체안에 대해 막바지 조율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대표 연임에 도전하며 차기 대권을 준비하는 이재명 전 대표는 연일 금투세·종부세에 대해 전향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7월10일 이 전 대표는 민주당 8·18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로 출마하며 금투세 시행 유예를 시사하고, 종부세에 대해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7월18일 당대표 후보자 토론회에서도 “종부세든 금투세든 논쟁의 대상이지 마치 신성불가침한 의제처럼 무조건 수호하자는 것은 옳지 않은 태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가 ‘있는 사람들한테 더 세금 뜯어내야지’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사실은 중산층과 서민을 죽이는 겁니다.” 2024년 1월10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말한 바 있다. 재계와 상층 자산가 등 부자, 중산층을 위한 세제를 대통령과 여야가 경쟁적으로 쏟아낸다. 서민을 위하겠다는 정당은 어디에 있을까?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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