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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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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손해보고 이재용은 이익 봤는데 법원은 왜…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1심 무죄
합병 당시 시너지 효과 강조했지만 삼성물산 주가 하락
이재용 등 대주주 일가는 “최소 8549억원 상당의 경제적 이익”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이복현 금감원장 등도
이재용 수사에 참여해 ‘국민검사’ 등 호칭 얻어
등록 2024-02-07 18:20 수정 2024-02-15 18:32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4년 2월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4년 2월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2024년 2월5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을 비롯해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나간 유행어인 ‘술은 마시고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가 반복된 꼴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부정한 합병비율로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포함해 옛 삼성물산 일반 주주들이 손실을 봤는데, 그 손실을 준 사람이 없다는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누가 피해봤나?

 

경기도 일산에 사는 조은희씨는 아직도 삼성물산 주식을 보면 화가 치민다. 1999년 옛 삼성물산 주식 2천 주를 샀는데, 2015년 옛 제일모직과 1(옛 제일모직):0.35(옛 삼성물산) 비율로 합병하면서 주식은 700주로 줄었다. 삼성은 당시 ‘시너지 효과’를 강조하면서 합병의 정당성을 강조했지만, 조씨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은 아무런 이익을 내지 못했다. 삼성물산 주식을 산 25년 전에 비하면 주가가 오르긴 했지만, 9년 전 합병 당시와 비교하면 제자리 걸음이기 때문이다. 2015년 5월 삼성은 합병 추진을 발표하면서 “시너지 효과로 5년이 지난 2020년에는 매출 60조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밝혔지만, 2022년 43조1617억원으로 40조원을 겨우 넘겼고 2023년에는 전년보다 약 2조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주가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총이 끝난 뒤 20일 합병 삼성물산 주가는 17만5천원(종가 기준)이었다. 그로부터 약 9년이 흐른 2024년 2월6일 14만7500원으로 15.7% 하락했다.

‘장밋빛’ 전망과 함께 추진된 삼성물산 합병으로 손실을 본 이는 조씨만이 아니다.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 역시 부당한 합병비율로 손실을 크게 입었다. 당시 삼성 쪽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합병 발표 이전의 주가 흐름에 따라 산정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전문기관이나 국민연금이 바라본 합병 비율은 달랐다. 당시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주식을 포함해 29조5천억원의 자산을 갖고 있었던 반면 제일모직은 9조5천억원으로 3분의 1에 불과했다. 그러나 주가로만 합병비율을 산정하다 보니 오히려 제일모직이 3배 가까이 더 높게 평가받았다. 더욱이 합병 발표 시점을 두고서도 삼성물산이 호재를 발표하지 않는 등 주가를 누르면서 최저 시점에 나왔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1:0.95를, 한국기업지배구조원도 1:0.42를 제시하며 합병 반대를 권유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도 나중에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국정농단 특검)에 의해 밝혀졌지만 1:0.46이 타당하다고 봤다. 국정농단 특검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기준(1:0.46)으로 계산해 국민연금이 합병 이후 2017년 1월까지 8638억원을 손해봤다고 2017년 2월 이 회장 등을 기소하면서 밝혔다.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도 한국 정부(법무부)를 상대로 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 과정에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주 간 (잘못된) 가치 이전으로 인하여 5510억~6160억원 정도의 손실을 보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기에 엘리엇이 제기한 ISDS에서 중재판정부가 한국 정부가 약 1300억원(지연이자 등 포함)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정이 나오면서 세금으로 이를 지불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법무부가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기존 판정이 확정될 경우 피해액은 1조원을 넘어가게 된다. 대한민국 2천만 가구당 5만원 이상씩 돌아갈 수 있는 돈이다.

삼성물산 직원들은 2015년 7월17일 제일모직과 합병을 위한 주주총회를 앞두고 선물을 들고 주주들을 찾아가 찬성을 종용했다. 사진은 한 주주가 삼성물산 직원으로부터 받은 음료수 상자. 독자 제공

삼성물산 직원들은 2015년 7월17일 제일모직과 합병을 위한 주주총회를 앞두고 선물을 들고 주주들을 찾아가 찬성을 종용했다. 사진은 한 주주가 삼성물산 직원으로부터 받은 음료수 상자. 독자 제공


피해는 삼성물산 직원들도 입었다. 부당한 삼성물산 합병 비율 논란이 커지면서 합병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지자 2015년 6∼7월 삼성물산 직원들은 땡볕 더위 속에서 수박이나 주스, 케이크 등을 싸들고 주주들을 직접 찾아가 합병에 찬성해줄 것을 요청했다. 조씨에게도 삼성물산 홍아무개 차장이 음료수 한 상자를 건네며 찬성을 종용했다. 삼성물산 구성원의 노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지시로 박근혜 대통령 등에게 건네진 뇌물이 발휘한 힘까지 더해져 옛 삼성물산과 옛 제일모직이 합병에 성공했다. 당시 삼성물산 직원은 “회사가 제시한 비전을 믿고 주주 설득에 나섰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합병 성사 뒤 국정농단이 불거지자 재개발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당시 2016∼17년 서울 반포 재개발 등에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당시 삼성물산 임원은 한참이 지난 뒤 “재개발 사업에 참여할 경우 다른 건설사들과 경쟁하고 조합과 협의를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잡음이 나오면 이재용 부회장(당시)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인지 삼성물산 직원 수는 오히려 줄었다. 2015년 말 기준 건설부문 6653명을 비롯해 정규직이 1만575명에 달했다. 비정규직 1508명까지 더하면 1만2083명이었다. 2023년 9월 말 기준으론 건설부문 4552명으로 2천 명가량이 줄어드는 등 정규직원 수는 7871명으로 8년여 전에 비해 2700여명이 줄었다. 비정규직은 1602명으로 큰 변화는 없었다.

 

누가 덕을 봤나?

 

이재용 회장의 불법승계 의혹에 대한 1심 재판부는 “이재용의 경영권 강화 및 삼성그룹 승계만이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물산의 사업적 목적 또한 합병의 목적이라고 봄이 상당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의 판결을 따르더라도 합병의 목적에 포함된 승계가 이뤄졌고, 이재용 회장을 포함해 삼성 대주주 일가는 큰 이익을 챙겼다. 이 회장 등 대주주 일가는 2015년 합병 당시 옛 제일모직 42.19%와 옛 삼성물산 1.41%를 갖고 있었는데, 두 회사의 합병으로 인해 삼성물산의 대주주로 등극하면서 삼성그룹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금전적인 이익도 있었다. 국정농단 특검은 “삼성 측에서 제시한 합병비율로 합병이 성사됨에 따라 최소 8549억원 상당의 경제적 이익을 취득하고, 승계작업 계획에 따라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시켰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부장검사 시절인 2020년 9월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삼성그룹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부장검사 시절인 2020년 9월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삼성그룹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개혁연대는 2월5일 논평을 내어 “1심 법원의 판결은 전대미문의 ‘삼성 봐주기’ 판결로, 오로지 이재용과 삼성의 무죄를 위해 기본적인 사실조차 왜곡한 최악의 판결로 평가한다”며 “합병으로 이재용은 지배권 강화를 꾀할 수 있었던 반면 삼성물산 주주들은 손해를 본 기본적인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합병으로 최대 수혜를 본 장본인인 이재용이 무죄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이번 판결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으로 향후 재벌에 온정적인 사법부의 관행이 되살아나는게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도 이재용 회장을 수사한 덕을 본 이들이다.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은 국정농단 특검에 수사 검사로 참여했다. 이후 이재용 회장의 불법 승계 의혹에 따른 자본시장법 위반 등으로 기소하는 과정에도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을 맡으며 수사를 지켜봤다. 한 비대위원장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로 수사를 지휘하다 자리를 옮겼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020년 9월 이 회장을 기소한 검사였다. 당시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이 회장에 대한 ‘불기소·수사 중단’을 의결했지만, 검찰은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건으로서 사법적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고 기소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윤 대통령은 ‘국민검사’라는 호칭까지 얻었다.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에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법무부장관을 지냈고, 이복현 금감원장은 검사 출신으로 처음으로 금융당국 수장이 됐다.

무죄 판결에 대해 대통령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사법 절차가 정치로 말할 문제는 아니다. 제가 기소할 때 관여한 사건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선고 당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국제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나 삼성그룹의 위상에 비춰 이번 절차가 소위 사법 리스크를 일단락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이복현 금감원장은 과거 자신의 수사를 부정하는 등 검찰이 재벌 수사를 통해 출세했는데 이후 결과는 책임지지 않는 모습”이라며 “법원의 판결도 2024년 중요한 이슈가 된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꼽히는 ‘사법부의 허약함’을 고스란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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