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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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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원의 ‘위로와 정성’, 통신망 타고 전달될까

선별과 보편 사이 꼬인 전 국민에게 ‘통신비’ 2만원 지원
등록 2020-09-19 01:49 수정 2020-09-20 01:14
2020년 9월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20년 9월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금 스마트폰 통신사 애플리케이션이나 요금 고지서에서 휴대전화 요금을 살펴보자. 정부가 추진하는 4차 추가경정(추경)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10월 고지서에 적힌 요금에서 2만원이 감면된다. 2만원 감면은 한 번만 진행되며, 한 달 요금이 2만원이 못 되면 2만원이 될 때까지 깎아준다. 여기서 따져볼 대목이 있다. 코로나19 발병 이후 이동전화 사용이 늘어나 국민의 통신비 부담이 커졌는지, 한정된 재원으로 4차 추경예산을 편성하는데 국민 4640만 명에게 통신비를 일괄 지원하는 것이 합당한지 등이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 보편이냐 선별이냐 논란을 빚은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방식이 통신비 2만원 지원을 놓고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코로나19로 인한 통신비 부담 확인 안 돼

9월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8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면서 7조8천억원 규모의 4차 추경예산 계획을 발표했다. 4차 추경예산안 가운데 절반(3조8천억원)은 사회적 거리 두기 등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해 편성됐다. 경영난으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노동자를 위한 고용유지지원금과 특수고용노동자·프리랜서 지원금을 위해서도 1조4천억원이 배정됐다.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됐던 1차 추경과 비교하면 적은 금액이지만, 피해를 본 이들에게 집중해 일정액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선별적 보편지원’이란 평가도 나온다.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이들을 선별 지원한다는 정부의 원칙에 다소 반하는 ‘보편지원’이 끼어들었다. 13살 이상 국민 전부를 대상으로 한 (이동)통신비 2만원 지원이다. ‘정보 격차 해소 지원’이라는 사업 이름이 달린 통신비 지원에 드는 예산은 9290억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통신비 지원 취지는 이렇다. “정부의 방역 조치에 협력해 다수 국민의 비대면 활동이 급증한 만큼 모든 국민에게 통신비를 일률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적은 액수이지만 13세 이상 국민 모두에게 통신비를 지원하겠다. 코로나로 인해 자유로운 대면 접촉과 경제활동이 어려운 국민 모두를 위한 정부의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다.”

비대면 활동이 급증함에 따라 이동통신 서비스 사용량이 늘었을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매달 1일 전전달의 이동통신 트래픽(통신망으로 유통되는 데이터 양)을 측정해 발표한다. 7월 한 달 1인당 트래픽을 보면 1만123MB로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1월(9041MB)보다 약 12% 증가했다. 표면적으론 늘어난 것이 확실해 보이지만, 이동통신 트래픽은 계속 증가 추세였다. 2019년 1월(6467MB)부터 7월(8025MB)까지 트래픽 증가율은 24%로, 코로나19 이후 증가율보다 더 높았다. 이는 이동통신사들의 휴대전화 요금제가 대부분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로 바뀐데다, 2019년 4월부터 5세대(G) 이동통신이 보급되면서 데이터를 많이 이용하는 ‘헤비 유저’가 등장했기 때문으로 업계는 분석한다.

자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가구에 도움 돼” vs “추가 소비 유발 안 해”

데이터 사용량 증가에 따라 통신비 부담이 늘어났는지도 통계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통계청 2020년 2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통신서비스 지출액은 11만4천원으로 1분기보다 1천원 늘었지만, 2019년 2분기보다는 2천원 줄었다. 통신사의 가입자 1인당 매출(ARPU) 역시 SK텔레콤의 경우 2020년 2분기는 3만158원으로 1분기(3만777원)보다 오히려 줄었고, 2019년 2분기(3만337원)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트래픽이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보기 어렵고, 가입자 대부분이 무제한 요금제를 선택해 당장 통신비 부담이 늘어났다고 보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게다가 이미 초·중·고 원격수업을 위한 통신비 지원이 4월부터 시행되고 있었다. 교육방송(EBS)을 비롯한 교육용 콘텐츠를 휴대전화로 이용할 경우 이동통신 3사가 데이터 이용료를 받지 않기로(제로레이팅)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통신비 지원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긴급재난지원금 보편지급 주장이 계속되는 상황을 인식해, ‘보편’적 ‘재난지원’의 효과적인 ‘전달 체계’로 통신비 감면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국민이 휴대전화를 한 대씩 갖고 있으니, 통신사의 과금체계를 재난지원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도 9월1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2만원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겠나.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전달 방법을 찾은 것이다. 통신비 절감액이 생기면 증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통신비 지원은 무의미하지 않다”고 말했다.

통신비 인하 운동을 벌여온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도 같은 견해를 보였다. “보편지원이 아닌 선별지원으로 정부 정책의 가닥이 잡힌 상황에서 1인당 2만원씩 통신비를 지원한다면 4인 가구에 8만원이 생긴다. 이는 외식을 두 번은 할 수 있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지역화폐나 상품권으로 주는 것보다 ‘승수효과’(어떤 경제 요인의 변화가 다른 경제 요인의 변화를 유발해 파급효과를 낳고 최종적으로 처음의 몇 배 증가 또는 감소로 나타나는 총효과)는 적겠지만 국민에게 해가 되는 정책도 아닌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반론이 거세다. 국가 재정으로 통신비를 지원하고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 국가경제에 승수효과를 유발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의 말을 들어보자. “한 달 가계소비가 220만원이고 30만원을 현금 지원한다고 했을 때, 소비가 250만원으로 늘어난다고 보기는 힘들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당시 주된 소비가 안경이나 자전거 등 내구재 소비로 나타났는데, 이는 미래의 소비를 앞당긴 것일 뿐 추가 소비를 유발한 것은 아니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은 단기간에 소득이 줄어든 가구에 대한 일종의 복지와 소득 보전 차원으로 봐야지 승수효과를 위한 것으로 보는 일 자체가 난센스다. 통신비 지원에 드는 9천억원이 절대 적은 돈이 아닌데 정책 목표가 뭔지 잘 판단해 결정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례적인 통신비 지원, 효과 있을까

여야는 9월22일 국회 본회의에서 4차 추경예산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최대 쟁점은 통신비 2만원 지원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민간기업인 통신사의 과금체계를 통해 ‘재난 지원’을 한다는 것, 13살 이상 국민 모두에게 휴대전화 요금 2만원을 국가 재정으로 깎아준다는 것은 여러모로 이례적이다. 정부의 9290억원짜리 ‘위로’와 ‘정성’은 국민에게 와닿을 수 있을까.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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