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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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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달러 밑에 들어올래? 맞을래?

‘돈의 흐름과 균형’으로 본 미-중 경제분쟁…

트럼프가 꿈꾸는 새 질서는
등록 2019-10-09 04:03 수정 2020-05-07 04:33
6월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6월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중국의 무역 남용에 대한 인내는 끝났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유엔 연설, 9월24일 현지시각) 돈은 안전한 자산을 찾았다. 다우지수, 코스피, 원화 가치가 떨어지는 사이 미 국채 가격은 오르고(금리 하락), 엔화 값도 올랐다.

“중국과의 무역 합의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일찍 이뤄질 수 있다.”(트럼프, 9월25일) 돈은 하루 만에 다시 위험한 곳으로 흘렀다. 주식시장이 반등했지만 선진국 채권 가격은 내려갔다.

트럼프 한마디에 휘청이는 자본시장

중국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한마디에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고, 곧장 전세계 시장에 위험 선호와 안전 선호가 표정을 바꿔가며 우르르 반영되는 모습이 이제는 낯익다. 세계경제가 서로에게 물고 물린 채, “모래더미 같은 취약한 균형상태”(에스와르 S. 프라사드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달러트랩>)에 서 있다. 영향력은 광범위한데 균형은 위태롭고, 돈의 이동은 간편하니 그의 말 한마디, 표정을 살피는 자본시장의 예민함은 극에 달한다. 10월10일 미국과 중국은 다시 고위급 무역협상에 나선다.

이번 협상을 포함해 미-중 분쟁은 지금까지 주로 실물부문, 그러니까 미국의 무역 적자 축소에 집중돼왔다. 2019년 시장을 지배하는 불안의 심연을 보기 위해선 조금 더 들어갈 필요가 있다. ‘돈’의 흐름과 균형을 바탕으로 미-중 관계의 근본적 성격을 고민하는 일이다. “1980년대 이후 만들어온 세계경제 질서가 미국의 달러 통제 권한과 거대한 금융 권력을 중심으로 한 ‘금융·통화 권력’에 기반을 둬”(공민석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적 동학과 2007~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왔기 때문이다. 상품 이동을 넘어 돈의 움직임이 규정해온 세계 질서 속에 우리는 40여 년을 보내왔다. 번영과 고조되는 위기가 한 몸인 채, 그래도 어떻게든 이어져왔던 한 시대는 미-중 분쟁을 계기로 막 내릴까. 고민은 시작됐고 의견은 아직 분분하다.

세계 균형 속에 묶인 미국과 중국

“대통령과 폴 볼커는 미국 경제의 최대 문제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1979년 6월26일 <뉴욕타임스>)

40년 전 미국은 극도의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라는 낯선 벽(스태그플레이션)에 막혔다. 기업 이윤율이 하락하고 산업 생산이 위축되며 1960년대까지 미국을 자본주의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했던 실물경제에서의 압도적인 우위가 빛바랬다. 경기침체보다 큰 문제는 인플레이션이었다. 달러 가치가 급격히 떨어진다는 의미다. 1978년 말 200달러로 살 수 있던 금 1온스를 1979년 450달러까지 줘야 할 정도였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안전하게 쓸 수 있는 ‘기축통화 달러’에 대한 믿음도 희미해졌다. 산유국들이 석유 팔아 번 돈을 달러로 받기 싫어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은 ‘달러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미국은 1년 만에 10%대 초반이던 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올렸다. 미국 금리가 오르니, 세계 각국으로 흩어지던 달러가 방향을 틀어 다시 미국으로 쏠렸다. ‘볼커 전환’이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멕시코 같은 나라들은 갑자기 빠져나가는 달러 탓에 결국 외환위기(1982년)를 맞았고, 한국도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률(1980년)을 기록했다.

볼커 전환으로 다시 달러가 귀해졌지만 부작용이 컸다. 시장에 도는 달러가 줄어들어 미국 내 기업은 돈줄이 막혀 도산했고 다른 나라들은 외환위기를 맞았다. 미국은 응급처치를 마친 뒤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낮췄다. 대신 이와 함께 금융시장을 부양했다. 금융규제를 풀고, 다른 나라들에도 금융시장 개방을 강요했다. 풀린 달러는 이전처럼 외국으로 퍼지기만 하지 않고, 채권 구매와 투자로 미국 금융시장으로 되돌아왔다. 실물경제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어려워진 시대, 미국은 자국과 세계의 경제 상황을 봐가며 달러를 조절하는 한편, 금융시장을 주도하는 ‘금융·통화 권력’을 쥐었다.

이 힘은 왜 대단한가. 세계가 달러를 중심으로 묶이고 모두가 달러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상대적으로 부채나 인플레이션 걱정 없이 달러를 발행할 수 있다. 미국은 싼값에 물건을 수입하고 수출 주도 국가와 산유국들에 달러를 준다. 이들 나라는 받은 달러를 미국 재무부 채권을 사두거나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방법으로 미국에 돌려놓는다. 각 나라의 성장이 그 나라 금융시장에 반영되면 미국 투자은행들은 몰려가 수익을 챙긴다. 한동안 일본이나 서독 같은 선진 경제권, 산유국들이 미국 달러를 받고 돌려주는 역할을 맡았고, 2000년대부터 중국이 이런 균형을 유지하는 데 절대적인 구실을 했다.

세계, 특히 미국과 중국이 균형을 이뤘다. 미국은 소비를 맡고 중국은 생산을 맡는다. 미국은 빚을 졌고, 중국은 미국 국채를 사들이거나 달러를 보유했다. 채권국인 중국의 우위만도 아니었다. 미국(달러)의 성패는 달러 표시 자산을 잔뜩 쥐고 있는데다 미국으로 수출해야 하는 중국의 성패와 직결됐다. ‘금융공포의 균형’이 잡혔다.

물론 세계의 균형은 국내의 불균형과 구조적인 모순을 참아낸 결과다. 달러 자체가 미국의 최대 수출품이 되면서 금융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제조업이나 농업처럼 눈에 보이는 물건을 생산해내는 실물부문이 미국에서 쇠락했다. 자산을 가진 사람은 쉽게 돈을 불렸다. 노동이 가진 것의 전부인 사람은 일자리 불안에 놓였다. ‘신자유주의의 그늘’이라고 불린 현상이다. 미국인들은 소비했다. 번 돈이 아닌, 싸게 빌린 돈으로. 부채가 쌓였다. 발달한 금융기법을 따라 미국에서 빚은 다양한 금융상품(증권화)이 됐고 부채, 불평등 같은 위기는 더 커졌다. 그리고 무너졌다. 세계 금융위기다.

세계 금융위기에 대한 지난 10년 미국의 해법은 맥을 짚기 쉽지 않다. 한편에서는 저금리·양적완화로 돈을 더 풀며 금융의 팽창과 실물의 위기를 함께 고조하던 금융·통화 권력의 모순을 덜기는커녕 한층 심화했다. 다른 편에서는 ‘아시아·태평양으로의 회귀’ ‘수출 확대 전략’ 같은 정책으로, 실물부문에서 나타나는 중국에 대한 막대한 무역 적자를 줄여보고자 한다. 중국에 대한 압박이 일부 진행됐지만 기본적으로 중국을 상호의존 구도 속에서 보는 시각은 유지됐다. 무역 적자 규모는 금융위기(2008년) 때 3800억달러 수준까지 줄었다가 다시 6300억달러(2018년)까지 늘어난다. 특히 2018년 중국에 대한 무역 적자는 3800억달러 수준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트럼프는 지난 10년을 혹평하고 자극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중국 외교 정책 기조는 한마디로 ‘저자세 애걸’이라고 할 수 있다.”(도널드 트럼프, <트럼프, 강한 미국을 꿈꾸다>) 그렇게 트럼프가 등장했다. “중국은 우리의 적”이라는 구호와 함께.

트럼프가 꿈꾸는 세계는?

다시 2019년, 트럼프가 꿈꾸는 새로운 세계의 모습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 없다. 말과 행동에서 추정할 뿐이다. 추정에 따라 ‘이전의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릴 것’이라는 두려움과, ‘표현만 거칠 뿐 자국 피해를 조정하며 서서히 중국을 기존 질서에 완전히 편입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가 공존한다.

보호주의와 이를 위해 미국의 피해도 일정하게 감수하겠다는 듯한 태도는 ‘질서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두려움을 자극한다. 미-중 분쟁은 관세전쟁으로 본격화했다. 2018년 5월 중국산 제품 500억달러어치에 25% 관세를 부과한 것을 시작으로, 2019년 5월 2천억달러어치 상품에 25% 관세가 붙었다. 이전에도 미국은 필요에 따라 상대국에 대한 환율 절상 압박, 슈퍼 301조, 반덤핑 관세 등을 시행했지만 규모와 강도가 다르다. 미국의 절대적인 힘에 군말 없이 따랐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중국은 보복조처로 사태를 키운다. 미국 제품에 관세를 따라 붙여가고, 추가 관세 부과 엄포에 위안화 절하로 맞섰다. 그럴수록 관세 장벽은 높아졌다. 이 과정에서 손해 입을 미국 내 금융부문이나 기업들 반발에 대해서 트럼프 행정부는 강경한 태도로 맞받는다. “무역전쟁을 그만두라는 월가의 거물들은 중국의 간첩이다.”(피터 나바로 미국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

‘간첩’이라는 단어에서 읽을 수 있듯 안보 논리까지 더해진다. “중국은 기술 도둑질”을 하는 나라라는 주장은 자연스럽게 “군사 기밀을 빼갈 수 있다”(트럼프 대통령)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미국 국가 전략의 최우선인 안보 불안을 자극한다. 경제전쟁이 두 나라의 균형을 조정하는 선에서 그칠 수 있는 데 반해, 안보전쟁은 한쪽이 확실한 우위를 점할 때까지 자국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강도를 높일 수 있다.

애초 ‘중국과 상부상조가 필요한가’에 대한 의구심도 싹튼다. 미국은 세계경제 위기에도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지켜냈다. 미국의 위기는 이미 세계화로 묶여버린 세계 모든 국가의 위기가 됐고, 이런 위기에 ‘그래도 미국이 가장 안전한 국가’라는 아이러니한 믿음이 커지며 미국 주가가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국채의 인기는 높다. 중국과 갈등이 격화돼도, 달러 표시 자산에 의존하는 대부분 나라가 미국의 이익 쪽에 서서 공조해주는 체계가 굳건하다.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은 “여기에 최근 미국이 마치 일본처럼 자체적으로 인플레이션 없는 통화 확장을 할 수 있다는 논의까지 부각되는 상황을 더해보면 중국과의 공조 필요성은 더 낮아지고, 냉전 시기처럼 중국이라는 세계 일부와 단절한 채 새로운 경제체계로 나아가려 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균형 무너지지 않을 거란 반론도

다만 중국과의 균형, 세계경제 질서의 관성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미-중 분쟁은 미국의 무역 적자 감축, 이를 위한 중국의 공정한 위안화 절상에 초점이 맞춰 있다. 다만 그 효과나 미국 경제의 실익을 생각할 때 무역수지 적자 문제는 “표면적인 이슈일 가능성이 크다”(김영익 서강대 교수)는 의견이 나온다.

1985년 플라자 합의 때 엔화 가치를 두 배 가까이 끌어올렸지만 대일본 무역 적자는 한동안 지속됐다. 볼커 전환 이후, 주요 화폐 대비 달러 가치(미국달러지수)는 장기간 떨어졌지만 미국 무역 적자는 늘어나기만 했다. “달러 가치를 낮춘다고 적자가 해소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맞지만 현실에 들어맞지 않았다. 고부가가치 기술 기업과 서비스, 금융을 중심으로 재편돼버린 미국 경제 구조를 고려하면 이제 와서 미국이 전통 제조업이나 농업의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크게 의미 있게 볼 것 같지도 않다.”(공민석) 무역 적자 해소 정책들은 뒤집어보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소비부문의 피해일 수 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 돈이 돌지 않으면, 금융부문이 침체하고 대부분 회사 가치가 주식가치로 평가받는 미국 상황에서 수많은 기업이 타격을 입는다. 무역전쟁의 명분이었던 미국 내 제조업은 미-중 갈등이 격화되며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 미국 제조업 구매 관리자 지수는 지난 9월(47.8) 세계 금융위기 때 수준까지 추락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미국이 지향하는 목표는 중국을 미국이 짜놓은 기존 세계 질서에 완벽히 편입시키되, 기술과 산업 고도화는 적절한 수준으로 통제하며 조정하는 것”(성태윤 연세대 교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같은 맥락에서 김영익 서강대 교수는 “미국이 결국 중국 금융시장 개방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기간 사안에 따라 중국과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가라앉길 반복하겠지만, 이전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집는 극단적인 처방이 미국에서 나오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중국 역시 지금 수준의 경제 발전 단계에서 세계 질서에서 고립돼 나 홀로 성장을 이어가기 어렵다. 더군다나 금융위기 이후 과잉투자로 인한 국내 부채 문제에 직면한 중국에 전면적인 전쟁은 아직 부담스럽다.

‘완벽한 합의’는 무엇인가

“부분적인 합의가 아니라 ‘완벽한 합의’를 원한다”(9월20일 트럼프 대통령)

‘완벽한 합의’는 무엇인가. 트럼프 대통령이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품고 있는 생각도 안갯속이지만, 개개인 각자가 선 자리에 따라 복잡한 셈법이 펼쳐진다. 미국과 중국의 노동자·농민에게 완벽한 합의는 어떤 투자자나 기업에는 재앙 같은 합의일 수 있고, 소비자를 위한 합의가 생산자에게 실망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이들을 둘러싼 각 나라는 채권국이냐 채무국이냐, 신흥국이냐 선진국이냐에 따라 ‘완벽한 합의’의 의미를 달리 정의하고, 그 안의 국민은 또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세계 질서를 꿈꾼다.

트럼프 대통령이 던지는 거시적인 파문은, 달러를 중심으로 국가와 세계의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미줄처럼 얽혀온 지난 세계경제 질서 안에서, 또한 미시적이다. 중국과 미국, 금융과 실물, 부채와 소비의 모순이 기묘하게 얽혀온 세계경제를 다루는, 트럼프의 더 기묘한 방식을, 알면서도 반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움직임만 매 순간 숨 가쁘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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