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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원…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최저임금위원회 참관기 ②] 사용자위원들의 3차례 수정안이 30원, 35원, 70원…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인 정부가 다시 책임을 져야
등록 2015-07-15 13:23 수정 2020-05-03 04:28

2016년 최저임금 시급 6030원. 지난해보다 450원 ‘찔끔’ 올랐다. 회의를 퇴장한 상태에서 최저임금위원회 결정을 듣고 먼저 허탈했다. 우리가 순진했다는 생각에 열받았다. 최저임금이 바로 자기 임금이 되는 400만 명 넘는 저임금 노동자를 생각하니 미안했다.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을 주문했던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식언에 분통이 터졌다. 박근혜 정부가 또다시 노동자들을 배신했다. 최저임금 인상만큼은 그래도 기대가 없지 않았는데 여지없이 무너졌다. 자신을 대변할 조직이 없는, 정치적 무권리 상태에 놓인 저임금 노동자들을 정부가 묵살했다는 생각에 ‘세상에 공짜가 없구나’ 다시 한번 절감했다. 노동조합이나 단체의 조직을 요구하고, 땀 흘려 싸운 만큼 임금은 높아진다는 노사관계의 기본을 잊고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교섭에만 몰입한 내가 바보 같았다.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이 한 자릿수 인상안을 내놓은 것에 항의해, 노동계 위원 9명이 지난 7월8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류우종 기자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이 한 자릿수 인상안을 내놓은 것에 항의해, 노동계 위원 9명이 지난 7월8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류우종 기자

당사자의 목소리가 소통돼야

사용자위원들은 30원, 35원, 70원 순서로 3차례 수정안을 냈다. 인상액이 총 135원이다.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최저임금 노동자를 철저히 우롱하는 인상안이었다. 최저임금 적용 당사자인 저임금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단단하게 조직돼 있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당장 항의가 빗발쳤을 것이다. 투쟁 수위가 총파업 수준으로 급속히 높아졌을 테다. 고공농성과 점거투쟁이 병행됐을 거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사용자위원들에 대한 그림자 투쟁이 잇따랐을 것이다. 언론의 취재 열기가 정점으로 치달았을 테고, 뜨거운 쟁점이 된 최저임금 인상 수준에 대해 공중파 TV에서 공개토론을 앞다퉈 진행했을 것이다. 주요 신문방송은 일촉즉발 긴장이 감도는 세종시 최저임금위원회 앞에 상주했을 테고 노동자들을 비하하고 막말을 한 사용자위원은 평생 잊지 못할 험한 꼴을 당했을 수도 있다.

문득 떠오른 장면. 2007년 7월1일 기간제법(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이랜드 일반노조가 6월30일 홈에버 월드컵점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대형마트 현금계산원과 판매원으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기간제법의 허구와 폐해를 온몸으로 증언하면서 순식간에 전국 쟁점이 됐다. 민주노총이 수년 동안 그리도 애써왔지만 폭넓은 공감을 얻지 못한 비정규직 보호법의 문제점이 국민에게 낱낱이 알려졌다. 농성장에는 주요 공중파 방송사 카메라가 상주했고, 노조원들의 기상 시간부터 촬영에 들어가기도 했다. 당사자의 목소리만큼 가슴 저미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건 없다. 특히 비정규직과 청년, 여성 노동자들의 처지는 더욱 그렇다. 통계로 반영되지 못하는, 숫자 뒤에 숨은 눈물과 한숨이 날것으로 드러나는 것만큼 정치적인 건 없다.

다양한 당사자들의 절절한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소통되는 순간, 다른 국면이 열린다. 영세 자영업자의 고충과 어려움도 당연히 널리 공유돼야 마땅하다.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주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상충하는지, 최저임금 인상을 가로막는 요인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따져보아야 한다. 밀실회의로 지탄받아온 최저임금위원회 논의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는 이유다. 공동 ‘피해자’인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주가 대립하는 최저임금위원회 논의 구조도 큰 문제다. 대기업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경총이 최저임금 인상을 막기 위한 방패막이로 약자인 중소 상공인을 앞세운 꼴이기 때문이다.

8월5일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을 고시하기까지 이제 25일이 남았다. 양대 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이의를 제기해 마지막 시정 노력을 할 것이다. 실낱같지만 희망을 버리진 않는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소득격차 해소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1988년부터 지난해까지 최저임금 평균인상률이 9.8%다. 노태우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만 두 자릿수 인상을 했고, 김대중-김영삼-이명박-박근혜 정부 아래선 한 자릿수 인상에 그쳤다. 노동시장 양극화로 인한 한국사회의 임금격차는 역진불가 양상으로 증대돼왔다. 통계상으로도 지난 2000년 이후 단 한 해도 격차가 줄어들지 않았다. 노동조합 바깥에 있어 아무런 임금 협상력도 갖지 못한 미조직 비정규직과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처지를 떠올리면 암담하다. 최저임금제도가 그나마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책 수단이다.

비정규직·영세 자영업자가 함께 사는 길

따라서 최소한 두 자릿수 이상 인상률로 최저임금을 올려야 마땅하다. 저임금 노동자 삶의 질이 높아지는 건 물론이고, 내수를 진작해 경제를 살릴 수 있다. 소득격차가 줄어들면 사회통합 효과까지 낼 수 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사회적 의미는 크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가 함께 사는 길이기도 하다.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이 걷어차버린 ‘공익’을 정부가 되살려야 할 때다.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 1만원’이란 인상 요구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를 곱씹어봐야 한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제출한 최저임금안에 대해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가 발주한 연구보고서의 단신 노동자 실제 생계비가 155만원이다. 공공부문 최저임금 격인 시중 노임단가가 시급 8019원이다. 서울시, 성남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고 있는 생활임금 수준이 6500~7500원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한 자릿수 인상률이 터 잡을 명분은 없다.

450원 ‘찔끔’ 인상으로는 정부가 강조한 소득격차 해소는 불가능하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인 정부가 다시 책임을 질 때가 왔다. 최저임금의 족쇄를 올해는 풀어야 한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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