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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밀려나야 하나

정부 중산층 위한 ‘주거안정화’ 정책 내놓고 있지만 저소득층 주거 약자는 기댈 부분 없어 삶터의 박탈로 이어지고 있어
등록 2015-01-24 17:35 수정 2020-05-03 04:27
지난 1월10일 낮, 경기도 의정부의 도시형 생활주택에서 화재가 일어나 소방관들이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불은 인근 주택으로도 번져 1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지난 1월10일 낮, 경기도 의정부의 도시형 생활주택에서 화재가 일어나 소방관들이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불은 인근 주택으로도 번져 1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지난 1월10일 경기도 의정부의 도시형 생활주택에서 화재가 일어나 1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명박 정부 때 1~2인 가구 증가에 따른 도시 하층민들의 주거안정 대책이랍시고 건물 간격을 1m로 완화하는 등 각종 규제를 풀어준 게 불이 크게 번지는 원인이 됐다. 사흘 뒤인 1월13일 정부는 중산층의 주거 불안을 덜어주겠다며 새로운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래미안 뉴스테이’ 등 대형 건설사들이 임대아파트를 지은 뒤 월 80만원(서울 기준)에 8년간 장기 임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대형 건설사에는 택지·자금·세제 등 다양한 인센티브가 돌아간다. ‘주거 안정화’를 내세운 각종 정책이 주거 약자들의 삶을 어떻게 박탈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_편집자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지역계획학

에서 토마 피케티는 주요 선진국들의 ‘국민소득 대비 총자본(부)’ 비율이 20세기 중반을 거치면서 다소 낮아졌다가 지금은 19세기 수준(약 6~7)으로 다시 올라가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자본주의 초기에 경험했던 부의 심한 편중, 즉 높은 수준의 부의 불평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부의 구성에서 절반 가까이가 주택 등 부동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동산 자산이 오늘날 국민 부의 구성에서 절대적이라는 뜻이다. 19세기 부르주아 시민의 투표권은 보유한 재산 규모에 따라 차등화돼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보유한 자산(부)의 규모에 따라 개인의 삶의 기회와 질, 권리 행사 등이 달라지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도 자산에 기반한다고 해서 ‘자산기반 민주주의’(Property-based democracy)란 말이 생겨나고 있다.

‘자산’기반 민주주의의 시대

피케티의 ‘국민소득 대비 자본의 비율’(β)을 우리나라에 적용해 계산하면 현재의 선진국 값보다 더 높은 7.5가 나온다. 이 정도면 베타값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부의 불평등이 세계적 수준에 이른다는 얘기다. 부의 구성에서는 부동산 자산이 8할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지대추구적인 천민적 부가 절대적이다. 게다가 부동산 부의 계층 간 불평등이 빠르게 커지면서 지금은 불평등이 가장 심한 미국 수준에 근접해가고 있다. 이는 한국 특유의 왜곡된 부동산 시장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정부의 왜곡된 부동산 정책의 반복 시행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 부의 격차는 계층 격차 그 자체와 같다. 따라서 낮은 계층 사람(주거 약자)들이 겪는 주거 박탈은 사회적으로 겪는 박탈의 뿌리가 되고 있다. 보수정권의 편향된 부동산 정책의 남발로 이 현상은 근자에 들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서고 자가 보유율이 60%(전체 가구 중 60%가 집 보유)에 육박하면서, 집이 없는 나머지 40%는 매매 중심의 시장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고 있다. 주택을 공급해줘도 지불 능력이 없는 저소득 주거 약자들은 고가의 주택을 매입하지 못한 채 임차가구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임대 수요는 그렇게 해서 구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최근 주택시장 거래 10건 중 7~8건은 임대 거래다. 그럼에도 정부는 매매 활성화에 올인하는 정책을 줄곧 내놓고 있다. 세입자의 주거권을 보호하는 정책(예를 들어 전·월세 상한제 등)은 오만 가지 핑계를 대면서 늘 소극적으로 다뤄왔다. 그러다보니 매매 거래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면서 주택의 소유 집중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다주택자의 평균 보유 주택이 5채에 이를 정도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시세차익(자본수익)을 기대하지 못하기 때문에 집주인들은 임대수익으로 이를 대체하고자 한다.

저소득층일수록 충격 큰 월세 폭탄

임대 수요가 매매 수요를 훨씬 앞지르면서 전셋집 부족으로 전세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수익률이 높은 월세로의 임대 형태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최근 부동산 시장의 흐름은 이렇게 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시장 흐름에서 불이익을 가장 크게 겪는 계층은 매매시장에서 배제돼 있으면서 관리되지 않는 임대차 시장에서 방치된 저소득 세입자다. 치솟는 임대료(전세·월세)는 소득 약자일수록 가처분소득 중에 주거비 비중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2013년 서울연구원의 한 조사에 의하면, 전세 가구가 순수 월세로 전환될 경우 소득 대비 임대료(RIR)는 평균 13.6에서 32.4로 약 2.4배 급등하고 있다. 2014년 2분기 월세전환율(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할 때 전세 대비 월세의 백분비)은 7.3%로 시장의 평균 예금금리 2.2%의 3.3배나 된다. 그 결과 서울 아파트 월세 세입자의 주거비용은 전세보다 연간 970만원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임대 형태가 전세에서 월세로 옮겨가면서 나타나는 주거비 증가는 결국 저소득 세입자 가구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실제 월세 가구의 평균소득을 보면 전세 가구의 절반에 불과하고, 소득 1~4분위 저소득층 가구의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은 일반 가구의 1.2배다.

소득 약자들이 매매에서 배제되는 것은 물론 임대에서도 주거비용이 낮은 전세에서 높은 월세로 이동하는 이 현상을 ‘주거의 비자발적 하향화’라 부른다. 왜곡된 부동산 시장과 공공정책이 만들어낸 비용이 돌고 돌아 결국 소득 약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월소득이 적은데다 주거비마저 오르면, 다른 부분의 소비가 어려워져 온전한 삶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들은 두 가지 선택을 한다. 고율의 대출로 부족한 수입을 보충하거나, 주거비가 저렴한 도시 외곽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어느 것이든 그들의 삶의 기회와 질이 상대적으로 박탈당하고 저하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각종 통계를 보면, 소득 분위가 낮은 계층일수록 가처분소득에서 금융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저소득층의 경우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중’이 50%에 육박한다면 고소득층은 이의 절반 정도(25%)다. 그래서 정부의 금리 인하 정책은 고소득층에게는 상환 부담을 낮추어주는 효과가 있지만, 저소득층에게는 돈을 더 쉽게 많이 빌리도록 하는 부채 증가의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높은 부채 부담과 주거비 부담에 동시에 직면한 저소득 주거 약자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저렴한 주거를 찾아 외곽으로 옮겨가고, 그중 일부 한계 계층의 사람(가구)들은 더 저렴한 주거시설(예를 들어 도시형 생활주택, 연립주택,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로 옮겨가는 것이다. 최근 의정부 도시형 생활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는 주택시장에서 밀려나 불완전한 주거시설에 사는 주거 약자들이 집단적으로 겪는 사회적 박탈이 낳은 또 다른 비극이다.

기업형 임대주택, 주거 박탈 문제 해결 못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주거 약자들이 겪는 주거 박탈은 왜곡된 시장에서의 배제와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 정책에서의 배제가 겹쳐 나타난 구조적 현상이다. 이는 결국 국가가 올바른 제도와 정책으로 풀어야 몫이지만, 한국의 보수주의(친시장적) 정부에는 쉽게 기대할 수 없을 듯하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기업형 임대주택 활성화 정책도 임대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각종 공공자원을 집중적으로 몰아주지만, 정작 그 혜택은 소득분위 상위 30% 계층과 임대사업자에게 집중되는 모순적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주거 약자들이 정부에 기댈 부분이 없다. 주택정책을 생산하는 정책 당국이 건설업자, 보수언론, 시장 전문가, 보수적 관료 등에 의해 포획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꾸지 않으면 저소득 약자들의 주거 박탈에서 삶의 박탈로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깊은 모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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