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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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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부진기? 승계 작업 적기!

다가온 대기업 임원 인사, 실적 악화로 자리 줄이고

문책성 인사 이어질 듯… 이 기회 틈타 경영권 강화에 나서기도
등록 2014-11-25 15:15 수정 2020-05-03 04:27

0.87%의 가능성을 몇 명이나 뚫을까.
12월 대기업 임원 인사 시즌이 다가왔다. 올겨울 임원들의 마음은 더 춥다. 기업들이 실적 부진을 이유로 임원 승진 규모뿐만 아니라 전체 임원진 수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는 30대 그룹 상장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임원으로 승진할 확률이 올해 0.87%(총수 일가 제외)에 불과하다고 최근 밝혔다. 지난해(0.92%)보다 ‘대기업에서 별 달기’는 더 어려워졌다.

세대교체, 실적 부진은 거들 뿐

별 달기는 어렵지만 국내에서 가장 많은 임원(2199명·상장사 기준)이 있는 삼성그룹이 12월 초께 인사를 단행한다. 이건희 회장이 지난 5월 갑자기 쓰러져 병상에 누운 뒤 첫 임원 인사다. 승진 인사 폭은 지난해보다 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하며 정보기술(IT)·모바일(IM) 부문에만 사장을 7명 뒀다. 신임 임원(상무) 승진자도 역대 최대인 161명에 달했다. 승진 연한을 채우기 전에 한 단계 오르는 발탁 승진도 많았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한겨레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한겨레

그러나 올해 삼성전자는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샤오미 등 중국 브랜드에 밀리면서 실적이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와 같은 ‘삼성전자 승진 잔치’는 기대하기 어렵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실적이 부진한 상태여서 이번에는 승진자가 대폭 나오기는 힘들지 않겠나 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조직도 슬림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가 기회라는 전망도 있다. 한 인사컨설팅 전문가는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 있는 지금이 이재용 부회장이 세대교체를 단행하기엔 적기다. 이건희 회장이 없을 때 단행하는 것보다 윗세대 임원들의 반발이 적을 수 있다”고 했다. 이건희 회장의 뜻인지, 이재용 부회장의 뜻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선 이재용 부회장이 친정체제를 구축하기가 더 쉽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도 경영진을 세대교체하는 데 마땅한 근거를 제공한다.

반면 한 재계 관계자는 “병상에 있는 이건희 회장을 대체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한데 총수 가족 내부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깔끔히 정리가 되었는지 의문이다. 내부에서 정리되지 않았다면 현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경영 실적이나 이사회 판단보다 총수 일가의 경영권 향방에 따라 사장단·임원 인사의 내용과 폭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을 제외한 주요 대기업들은 경영권 승계 문제와 상관없이 올해 실적에 따른 인사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롯데그룹과 포스코 등 일부 기업은 경기 악화에 대응해 임원 인사를 앞당겨 실시한다.

롯데는 보통 1월 말~2월 초에 했던 임원 인사를 올 12월께 실시할 계획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내년 경영 환경이 불투명하고 불확실해 빨리 인사를 한 뒤 신속하게 대응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임원은 퇴진, 황태자는 승진

포스코도 내년 1월1일부로 임원 인사를 준비 중이다. 올해 3월 권오준 회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정준양 전 회장의 임원진을 교체한 지 9개월여 만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그동안 3월에 인사를 하다보니 새해 들어서도 인사 때문에 뒤숭숭한 분위기가 있었다. 이번엔 새해 들어서자마자 일을 할 수 있도록 CEO가 기존 관례를 바꾸는 결단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에서는 권오준 회장이 업무 파악도 끝났고 포스코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예상보다 큰 임원 인사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미 큰 폭의 인사를 한 곳도 있다. 창사 이후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현대중공업은 지난 10월 임원의 31%를 줄이는 인사를 단행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은 9월15일 부임한 지 한 달 만에 전체 임원 262명 가운데 81명을 줄였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3분기까지 3조227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구조조정에 나서 전체 부서를 432개에서 406개로 줄이는 등 조직 통폐합을 했다. 현대중공업은 많은 임원들을 내보내는 가운데 대주주인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의 아들 정기선 수석부장을 상무로 승진 발령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LG그룹, SK그룹도 12월에 예정된 임원 인사를 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의 사장단 인사는 이미 올해 수시로 이뤄졌다. 올 2월 최한영 상용담당 부회장이 물러났고, 4월에는 설영흥 부회장이 사표를 썼다. 설영흥 부회장은 현대차 내 중국통이었다. 하반기에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수시 인사는 계속됐다. 10월 초에는 박승하 현대제철 부회장이 퇴진했고, 10월 말에는 이삼웅 기아차 사장이 노조 파업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보다 나이가 많은 임원들이 점차 은퇴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포 회장. 한겨레

왼쪽부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포 회장. 한겨레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임원 인사는 회사 사정에 따라 진행된다. 현재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이 한계에 봉착했나. 아니다. 대외 여건에 영향받는 정도이기 때문에 외부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는 쪽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차 주변에서는 재무부문과 해외판매 쪽 임원의 역량이 강화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매입 계약에 10조원 이상을 쓴 뒤 주가가 폭락한 것에 대해 현대차 임원진 가운데 책임질 이가 나올지도 관심거리다.

총수가 감옥에 있거나 석방된 기업들도 내부 조직을 추스르고 있다. 한화는 11월 금춘수 전 한화차이나 사장을 그룹의 사령탑인 경영기획실장으로 옮겼다. 금춘수 실장은 2007년부터 4년 동안 경영기획실장을 지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한화그룹은 “전반적인 조직 개편과 인적 쇄신 등 대대적인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기에 앞서 그룹 경영기획실장을 먼저 교체했다”고 밝혔다.

총수에 대한 충성심이 임원의 자격?

SK는 12월 중 임원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지난해 최태원 회장이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뒤 SK그룹은 최고의사결정체제인 수펙스추구협의회가 경영을 이끌고 있다. 그룹 총수인 이재현 회장이 복역 중인 CJ도 최근 계열사 사령탑을 바꿨다. 이미경 부회장이 영입한 박성훈 미래전략실 부사장과 노희영 CJ제일제당 부사장이 물러났다. 새로 양승석 전 현대차 사장이 CJ대한통운 부회장으로 영입됐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그동안 재벌기업의 임원 인사를 보면 총수에 대한 충성심보다 회사나 주주의 가치를 올렸는지를 더 중요한 기준으로 보는지 확신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불황기에 이런 기업의 모습이 바람직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총수 일가 가운데 3·4세 경영권 승계를 앞둔 재벌의 임원 인사를 유심히 지켜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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