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이젠 커피 ‘소비의 맛’을 따져볼 때

국내 커피시장 생두·원두 수입량 크게 늘고 고급 커피 수요도 증가…

판로 다양화·공정무역 정착 등 과제도 많아
등록 2014-11-08 17:00 수정 2020-05-03 04:27
갓 뽑아낸 커피와 커피 원두의 모습. 올해 1~9월 우리나라로 들어온 커피 생두·원두량이 199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할 정도로 커피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갓 뽑아낸 커피와 커피 원두의 모습. 올해 1~9월 우리나라로 들어온 커피 생두·원두량이 199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할 정도로 커피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한국 커피 애호가들이 브라질산 아라비카커피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가 지난 2월 내놓은 기사의 제목이다. 우리나라의 커피시장을 다룬 이 기사는 “한국의 커피 열풍이 일본보다 뜨겁고, 미국보다 3배 높은 값으로 브라질산 아라비카 생두를 수입하는 경우도 있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만큼 고급 커피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관심이 늘어난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외국에서 보기에도 국내 커피시장의 온도가 눈에 띄게 달아올랐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준다.

거리를 점령한 커피전문점

사실 커피시장의 성장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여러 분위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커피기구(ICO) 조사를 보면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2.17kg으로, 질병관리본부의 조사에서는 우리나라 사람이 커피를 평균 주 12.3회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리를 점령한 커피전문점만 봐도 그렇다. 유통업계에서 추산하는 중·소형 업체를 포함한 커피전문점 수만 약 1만5천 개다. 이른바 ‘커피 춘추전국시대’다.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커피 생두·원두의 수치를 보면 좀더 구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커피 생두·원두 수입량이 기존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관세청의 10월21일 기준 수출입 무역 통계 자료를 보면, 올해 1∼9월 생두와 원두 등 커피(조제품 제외) 수입 중량은 9만9372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만3693t)보다 18.7% 늘어났다. 수입 국가별로 보면 베트남(2만3686t)이 가장 많았고, 그 뒤를 브라질(1만7566t)과 콜롬비아(1만4043t), 온두라스(9219t), 페루(6782t) 등 중남미 국가가 이었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늘어난 수입국은 콜롬비아였다. 이 물량은 관세청이 집계를 시작한 1990년 이후 가장 많은 양을 기록했던 2011년 1∼9월(9만2040t)의 기록을 훨씬 앞지른다. 금액으로만 봐도 지난해 같은 기간(3억1520만달러)보다 21.2% 늘어난 약 3억8200만달러 규모다.

그러나 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커피시장이 단순히 양적 팽창만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남미 등 고급 커피인 아라비카종을 생산하는 국가로부터 커피 수입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점을 보면 그렇다. 커피는 일반적으로 종자에 따라 고급 커피용으로 쓰이는 ‘아라비카’와 인스턴트커피의 주요 재료가 되는 ‘로부스타’ 종자가 있다. 우리나라의 전체 커피 수입량 가운데 가장 많은 24%를 차지하는 베트남은 전체 커피 재배 면적의 95%에서 로부스타 커피를 생산한다. 수입량의 상당 부분이 인스턴트커피의 재료로 쓰이는 베트남산 생두·원두였지만,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에서의 수입량도 늘어났다는 점은 국내 커피시장 소비자의 고급 커피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는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느 것이다.

커피 생두·원두가 국내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다른 농작물과 마찬가지로 커피 생두·원두도 여러 단계를 거쳐 수입된다. 커피업계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커피 산지→중간상인→북미·유럽의 중개업자 등을 거치는 과정이 일반적이다. 그 밖에 공인된 커피협회를 통한 경매로 직수입해오기도 한다. 스타벅스·커피빈 등 국내 프랜차이즈 커피업체는 회사 차원에서 대규모로 생두·원두를 공급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를 제외한 국내의 커피 생두·원두 수입 시장은 최근 몇 년 사이 진출한 몇 개의 업체가 대행해 도매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점점 활발해지는 ‘생두 공동구매’

최근 몇 년 사이 고급 커피를 찾는 분위기는 이른바 ‘로스터리(Roastery) 커피전문점’의 등장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양한 생두를 확보해 매장에서 직접 볶고 추출해 스페셜티(Specialty) 커피나 싱글오리진 커피(단일 품종 원두만 사용한 커피) 등을 판매하는 매장을 말한다. 김아무개씨가 서울에서 운영하는 매장도 로스터리 커피전문점이다. 그는 커피 판매에 필요한 생두를 구입해 매장에서 직접 로스팅 작업을 한다. 주기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커피 생두는 엠아이커피, 코이너스인터내셔날, GSC인터내셔날 등 국내의 대표적 생두 수입업체 3곳을 통해 공급받는다. “주로 인터넷 결제를 통해 배달을 받는다. 산지별로 구입하기 때문에 여러 업체를 골라서 사기도 한다.” 국내의 대형 생두 수입업체들은 산지에서 직접 들여오거나, 북미·유럽의 생두 중개상을 통해 물량을 공급한다. 몇 년 전부터는 이런 주요 수입업체를 통해 구입한 생두를 소규모 로스터리 커피전문점에 공급해주는 중간업체도 생겼다. 그러나 커피 생두를 공급받을 수 있는 통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김씨는 “수입업체가 제시하는 가격을 보면 생두 대용량과 소용량의 단가가 차이가 난다. 그만큼 차이가 난다는 건, 중간업체가 가져가는 이윤이 많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네팔 신두팔촉 지역 주민들이 껍질을 벗겨낸 커피 생두를 골라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커피 제공

네팔 신두팔촉 지역 주민들이 껍질을 벗겨낸 커피 생두를 골라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커피 제공

이처럼 늘어나는 커피 생두 수요와 달리 수입 경로가 다양해지지 못하는 원인으로는 통관 작업의 어려움이 있다. 소규모 커피 사업자가 컨테이너 단위로 이뤄지는 통관 비용을 부담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커피업계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다양한 생두·원두 구입을 위한 ‘생두 공동구매’가 활발히 이뤄지기도 했다. 커피업계에서 이른바 ‘커피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국제 커피경매인 컵오브엑셀런스(COE)에서 진행하는 국제 입찰에 국내 커피업계 관계자가 여럿 참여해 입찰에 나서는 경우가 그렇다. 인터넷을 통해 진행되므로 여러 명이 운송·통관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입찰에 참가해 국내에 들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국내 커피시장에서 COE의 인지도가 높아져 높은 값으로 판매할 수도 있다.

커피 전문 업체인 커피플랜트의 복진현 대표도 몇 년 전부터 인터넷 등을 통해 COE 생두를 함께 구입하는 일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그는 “커피 산지를 개발해 농부들에게 노력한 대가를 돌려주고, 커피 소비국 입장에서도 좋은 생두를 산다는 취지에서 COE 입찰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이렇게 경매를 통해 직접 구매를 시작한 지가 몇 년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들여오는 커피 생두는 대부분 큰 사업자를 거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농가에 얼마만큼 이윤이 돌아가는지 등을 알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고급 커피 시장의 확대

이처럼 커피 생두·원두의 수입 경로가 다양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고급 커피인 스페셜티 시장에서는 걸음마 단계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최근 SPC·스타벅스 등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가 스페셜티 전용 커피전문점을 내는 등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전체 커피 수확량의 10% 이상에 해당하는 고급 커피를 말하는 스페셜티 커피의 생두가 우리나라에까지 공급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커피시장의 무게중심이 여전히 인스턴트커피 시장에 쏠려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북미·유럽·일본 등 커피시장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원두커피 시장의 비중이 인스턴트커피보다 높은 게 일반적이나, 우리나라는 80% 이상을 인스턴트커피 시장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고급 생두 수입이 급격하게 늘어날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는 “일본의 원두 수입량은 한 해 45만t이고, 우리나라는 약 12만t이다. 일본 인구(1억2천만 명)와 우리나라 인구(5천만 명)를 단순 비교하더라도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어떤 품질의 커피를 유지하느냐가 업계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향이 나는 커피 소비국이 될까

이처럼 커피 생두·원두의 수입 시장이 커지면 커피 소비의 방향에 대한 고민도 함께 자라날 수밖에 없다. 전세계적으로 미국 등 앞선 커피시장에서는 고급 커피 시장이 확대되면서 공정무역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공정무역 비영리단체인 아름다운커피의 서오주 상상마케팅팀장은 “공정무역은 기본적으로 소규모 농장들을 통해 수입하는 게 원칙이다. 단순히 커피 농장과 직접 거래하는 것을 공정무역이라고 부르긴 어렵다. 대부분의 생두 수입업체들은 가격 대비 품질에 예민할 수밖에 없어서 특정 지역의 커피를 지속적으로 거래하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대형 업체들은 대량 구매를 통해 최저 가격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급 아라비카 품종이 자라는 중남미 지역의 농장은 일본·미국 등의 자본이 투입된 대규모 기업형 농장인 경우가 많아, 이른바 제값을 주고 사오는 공정무역을 하려면 소규모 커피농업의 후발국가와 거래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도 존재한다.

국내 커피시장에 공정무역 등이 정착되려면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소규모 커피전문점의 대표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와 경합해야 하는 커피시장의 환경 속에서 원가가 높고 판매값도 올려야 하는 공정무역을 통해 들여온 커피를 팔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커피 생두·원두가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는 한국은 앞으로 어떤 향이 나는 커피 소비국이 될까.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