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한-미 커피 회담’ 아닐까. 빠르게 성장하는 커피산업의 현주소를 알아보고자 은 우리나라와 미국의 대표적인 커피 전문가들과 마주 앉았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커피산업을 이끌고 있는 미국에서 1990년대부터 커피 공정무역의 중요성을 알려온 릭 페이저 푸드포파머스(Food4farmers) 설립자와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에 스페셜티(Specialty)커피 시장을 이끌어온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SCAA) 회장을 지낸 릭 페이저는 ‘그린 마운틴 커피 로스터스’라는 커피업체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커피산업을 통해 사회적 빈곤 문제를 들여다본 책 (Brewing Change·커피 산지의 굶주림)를 쓴 전문가다. 한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K) 회장을 맡고 있는 김 대표는 강원도 강릉을 기반으로 한 커피 전문업체 테라로사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10월30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 모인 이들은 ‘커피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생각을 나눴다.
릭 페이저(이하 릭):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깡통에 포장이 된 커피를 많이 마셨다. 그 뒤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등장해 1990년대부터 매해 20% 정도 꾸준히 성장했다. 2005년 이후에는 연 15% 수준으로 상승률이 조금 완만해졌다. 스페셜티커피에 대한 대중의 취향이 점점 바뀌고 있어서 앞으로 전체 시장의 70%까지 점유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캡슐커피 시장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공정무역이 세상에 미칠 영향에 대해김용덕(이하 김): 한국은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커피시장 대부분을 프랜차이즈 업체가 차지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경우 매해 30% 가까이 성장하는데, 대부분 점포 확장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스페셜티커피를 좋아하고 있어, 5~10년 사이에는 프랜차이즈 업체보다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고 본다. 다만 지금 한국에서 커피 창업의 속도는 너무 빠르다. 강원도 강릉에만 커피전문점이 300개다.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적정 수를 찾아야 한다.
릭: (서울에 머물면서) 숙소 주변을 둘러봤다. 한 블록 정도 돌아봤는데, 커피전문점·레스토랑 등 전체 매장의 60% 정도가 어떤 종류로든 매장에서 커피를 팔고 있더라. 놀라웠다. 서울처럼 커피 매장이 많은 도시를 가본 적이 없다. 한국에 와서 보니 (커피시장이 발달한) 미국 시애틀의 커피산업이 작아 보일 정도였다.
김: 커피산업이 발전하면서 국내에서도 공정무역·유기농 커피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커피업계에서는 여전히 공정무역·유기농을 마케팅용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커피 산지나 생산자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돈을 더 내고 공정무역·유기농 제품을 소비하라는 식이다. 그러나 진실이 중요하다. 실제로 우리 업체도 3~4배 높은 값으로 커피를 사오지만 공정무역을 내세우지 않는다. 커피를 사오는 우리가 산지 사람들의 삶의 질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실제적인 도움을 어떻게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릭: 그 말에 동의한다. 공정무역·유기농 등 마케팅으로 보여주는 것보다는 실제 커피 농부들의 삶과 생산지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낼지 고민하는 게 맞다고 본다. 공정무역 인증 업체로서 이미지를 갖는 것보다, 공정무역으로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할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어떤 이들은 공정무역을 통해 적은 양의 커피를 사면서 ‘나는 공정무역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
‘소셜 프리미엄’ 지역 발전기금으로 쓰이도록릭은 커피의 공정무역이 성립하는 데 필요한 요소로 세 가지를 꼽았다. 우선, 커피를 재배하는 소농과 협동조합을 꾸려야 한다. 단순히 농촌을 조직화하는 것이 아니라, 재정적 투명성을 높여 커피를 만든 농민들이 얼마나 돈을 버는지 보여주고 이들에게 이익을 남기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공정무역으로 커피 매입의 ‘최저가격선’을 정해 국제적으로 커피 가격이 폭락해도 농민들이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 셋째, 커피로 벌어들인 수익을 이른바 ‘소셜 프리미엄’(Social Premium)이라는 지역 발전 기금으로 쓰도록 유도해야 한다. 커피 농부의 개인적 수입도 필요하지만 해당 지역의 의료시스템, 길 보수 등에 일정 비용이 쓰이도록 해야 비로소 공정무역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현재 한국 커피시장은 질적인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프랜차이즈가 잠식했던 빵집 영역에서 ‘윈도 베이커리’(동네 빵집)가 다시 부흥하듯, 커피 프랜차이즈도 빠른 속도로 없어질 수 있다. 세계적으로 커피시장은 원두커피가 70%, 인스턴트커피가 30% 수준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인스턴트커피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북미·유럽에서 유행하는 캡슐커피를 거쳐 집에서 스페셜티커피를 마시는 홈커피 시장으로의 전환이 10~20년 사이에 일어날 것이라 본다. 커피산업이 또 다른 혁명기를 맞는 것이다.
릭: 미국 커피시장은 이원화돼 있다. 캡슐커피와 스페셜티커피 시장으로 나뉘어 계속 성장할 것이다. 가장 대중적이고 편리한 것은 캡슐커피로 꾸준히 양적 성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인텔리겐치아·스텀프타운 등 스페셜티커피 전문점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업체들의 고급 커피를 맛본 소비자들이 다시 캡슐커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김: 한국 커피시장이 양적인 면에서 미국을 따라갈 수는 없다. 그래도 소비자의 입장에서 커피 산지 사람들에게 우리의 진심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나라 커피업계도 비싼 값에 커피를 들여오는 데 머물지 않고, 산지 농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면 다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산지에 가서 커피만 사지 말고, 우리가 금융 지원도 할 수 있다. 이런 것이 또 다른 변화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진심을 보여줘야 한다릭: 한국 문화에 대해 잘 모르지만, 요즘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미국·유럽·중국 등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어떤 나라에 좋은 게 있으면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세상이다. 커피산업도 마찬가지로, 산지 농민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배우려 한다면 긍정적 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리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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